11. 추억의 밀도에 따라 시간은 빨라지니까
주말에 동생들과 고양이들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월요일 오전, 집에 있다가 순천으로 넘어왔다.
버스에서 내린 직후에는 비가 한바탕 쏟아질 듯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는데 점차 맑아지는 듯 파란 구름도 한뭉텅이가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말 동안 308호가 다 비어있어
수건을 못 빨아서 오늘은 세탁기를 돌리려고 했는데 비가 오는 건 아니겠지...?
불안했지만 오늘 빨지 않으면 계속 미루게 될 것 같아
순천에 도착하자마자 수건을 세탁하고,
일주일 동안 가득해진 쓰레기통을 얼른 비웠다.
순천에 오자마자 부지런을 떤 이유는,
오늘의 일정을 소화하러 가기 위함이었다.
오늘의 일정은 14시부터 시작되었다.
선암사를 갔다가 순천만습지를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희주님이 본인이 아는 비밀 아지트를 알려주시겠다 하여 중간에 샛길로 빠졌다.
높지 않은 산 사이에 자그마한 강이 있고,
두 척의 배와 바쁜 날갯짓을 하다
잠깐 쉬고 있는 새까지.
한 폭의 그림 안에 들어와있는 것 같아
돗자리를 깔아놓고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선암사로 가야만 한다.
저번 주에 왔을 때 비가 와
선암사는 못 보고 야생차 체험만 하고 내려갔는데,
저번에 못 다한 선암사에 관련된 설명을 해주시기로 하셨기 때문.
더워할 우리를 위해 물까지 준비해주신
모세환 대표님과 함께 다시 선암사에 오르기 시작.
"와인은 좋아하지만 코르크는 어떤 걸로 만들어지는지 모르죠?"
대표님의 말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놀랐다.
와인을 그렇게 많이 마셔놓고 코르크는 어떤 나무로 만들어지는지
전혀 궁금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무 껍질을 눌러보라며,
코르크처럼 푹신푹신하다고 말씀해주셔서 손으로 나무 껍질을 눌러보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선암사에 오르면
'선암사' 라는 공간만 눈으로 확인하는 게 전부일텐데
많은 것을 알려주시는 모대표님 덕분에
선암사의 종교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 문화유산적 가치를 한 번에 들을 수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와서 그런지
계곡에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선암사에는 승선교와 강선루가 있는데,
자연을 해치치 않는 위치에
자연과 어울러진 형태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라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순천 선암사 강선루(降仙樓)는 다른 사찰과 달리 문루 기능이 큰 2층 누각이다. 강선루는 좁은 지류가 흐르는 다리 위에 지은 문루여서 다른 누각과 구조가 많이 다르다. 강선루 1층은 정면 1칸 측면 1칸이고, 2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맑고 깊은 계곡 옆의 강선루와 보물로 지정된 무지개다리 승선교가 같이 있어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선암사(仙巖寺), 강선루(降仙樓), 승선교(昇仙橋)’ 모두 신선과 연관된 이름이다. 온통 신선들의 놀이터다.
출처 : https://ncms.nculture.org/pavilion/story/2425
계곡 옆에 서서 승선교와 강선루에 대한 설명을 한참 듣다가 발걸음을 옮겨 더 올라가니
온통 초록인 숲에서 우아하게 피어있는 대롱나무가 눈에 띄었다.
희주님은 저번 달에도 왔는데
이렇게 분명하고 선명하게 피어있는 대롱나무는 처음본다며 우리 보고 운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게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 말 한 마디에 행복해졌다.
어느새 먹구름은 저만치 멀어져버렸고
푸른 빛을 찾은 하늘 아래에서
오래되어 색이 발한 고택과 분홍의 대롱나무의 대조가 눈에 띄었다.
설명을 들으며 올라가다가
중간에서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먹어주고.
선암사가 왜 문화유산적 가치가 높은지에 대한 설명을 듣자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요즘 순천에 와 느끼는 감각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많이 느끼는 감각이 있다면
그건 어떤 것을 보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번 달 해인사에 3박 4일 동안 자원봉사를 갔을 때가 떠올랐다.
해인사는 절이 크고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는데 선암사는 사람과 더불어 가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사람과 더불어가는 절, 자연과 어울러진 풍경.
문화유산으로 선정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순천만습지.
10년 전에 내일로 여행으로 순천에 왔을 때
홀로 순천만습지를 온 적이 있었다.
그날도 무척 더운 여름날이었는데,
이게 도대체 왜 유명하지? 생각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다 돌아갔더랬다.
다시 오자 감회가 색달랐다.
바람이 갈대밭을 스치며 만들어내는 속삭임 속에서,
순천만의 초록빛 물결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수천 개의 생명이 함께 부르는 합창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습지는 마치 하늘이 땅에 내려앉은 듯 광활했다.
그 위로 백로 한 마리가 날갯짓 한 번에 온 세상의 고요를 깨뜨리며 지나갔고,
나는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리고 동시에 이 거대한 생명의 그물망 안에서
얼마나 소중한 한 점인지를 동시에 느꼈다.
발아래 펄 속에서는 작은 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저들에게도 오늘이라는 하루가 있고,
내일에 대한 본능적 기대가 있을 것이다.
갈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처럼,
모든 생명체가 저마다의 빛을 품고 살아가고 있었다.
왜가리를 이토록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었는데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다 멈추자
뭘 보냐는 듯한 시선을 우리에게로 던졌다.
여유로운 시간을 방해한 것만 같아서
우리는 얼른 발걸음을 옮겼다.
희주님이 순천만습지에 오면
용산전망대는 꼭 가봐야 한다고 하여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겼다.
순천만습지는 작은 생물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조성하느라 해가 지고 나면 인공적으로 밝히는 불빛이 하나도 없기에
해가 지기 전 전망대까지 오르려면 발걸음을 서둘러야만 했다.
시시각각 하늘은 노을로 물들어가고 있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순천만습지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용산전망대까지는 약 20분 거리.
높지 않다는 생각에 야심차게 오르기 시작했지만
땀이 주룩주룩 흐르기 시작했다.
아카이빙과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자 어느새 코앞에 닿은 전망대.
순천만습지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순천은 가을에 가장 여행자들이 많은데,
그때 오면 전망대에 오르려는 관광객들로 인해
왁자지껄하다고 한다.
갈대가 초록을 벗었을 때 다시 한 번 오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고즈넉한 분위기는 아닐 거라 생각하니
조용한 분위기의 순천만습지를 보고 있는 이 순간이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순천만습지 관람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가려던 참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광활한 습지에서 길을 잃고 당황해하던 외국인 관광객 한 명이 우리와 함께 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이름은 라이오넬.
나이는 스물 네살로 한국을 여행중이라고 했다.
라이오넬 포함 총 9명이 이동한 곳은 '막걸리 타령'
희주님이 첫째주부터 함께 오고 싶어했던 곳이었는데
휴일에 걸리는 바람에 내내 못 오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올 수 있었다.
도토리전, 단호박전 같은 '전' 종류는 물론
갑오징어 회무침, 서대회무침 등 회무침도 팔고 있었다.
희주님은 이모님께서 추천해주신 메뉴를 먹어야 한다며 '서대회무침'을 주문했고
그 이후로 꼬막전, 해물파전, 돼지고기짜글이, 낙지볶음 등 다양한 메뉴를 주문하여 배부르게 먹었다.
'막걸리 타령'에 왔으니 막걸리는 마셔줘야지.
우리는 막걸리를 여러 번 주문했고,
이모님께서는 그때마다 멋진 퍼포먼스와 함께 막걸리를 내주셨다.
거의 빈속으로 내내 걸었기 때문인 걸까.
안주는 맛있고 막걸리는 달아 술이 쭉쭉 들어갔다.
다양한 안주를 앞에 두고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순천에서의 한 달 살기가 벌써 절반을 넘어섰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흘러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다음 주면 벌써 끝이라고,
프로그램이 끝나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자며
벌써부터 끝이 다가온 사람들처럼
이별을 아쉬워했다.
우리는 마치 대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침묵의 007빵을 하고, 손병호 게임을 했다.
별것 아닌 일에 웃었고, 별것 아닌 것 같은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진지해졌다.
술자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과 공감이었다.
라이오넬은 한국어를 못 알아들었지만,
작년에 한 달 살기를 했던 지현님이 캐나다 출신이라
중간에서 열심히 통역을 해주었다.
덕분에 한국의 술게임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룰도 제대로 모르는 게임을 하며 많이 웃었고,
우리는 그가 느끼고 겪은 순천이 다정한 환대의 도시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