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혼자인 나, 함께인 나
오늘도 조식으로 시작하는 아침.
제육볶음과 계란찜, 물김치, 깍두기 등 정갈한 반찬과 북엇국까지.
타지살이를 하면 살이 빠질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데
스테이두루에 묵으면서 아침을 잘 챙겨 먹어 건강한 돼지가 되어가고 있다.
퇴사 후 상주 캠프, 해인사 자원봉사, 치앙마이까지.
일주일에 한 번은 집에서 떠나 다른 지역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어 기쁘고 뜻깊었지만
늘 노심초사하며 시간을 보냈던 탓인지
왼쪽 손가락에 수포가 자글자글하게 잡혔고,
잠을 설쳐 다크서클이 내내 짙어져있었다.
당연히 순천에 와서도 잠을 잘 못 자면서 지낼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룸메들과 성향이 잘 맞아 숙면을 취하고,
건강한 밥을 잘챙겨 먹어 건강해진 듯 수포가 잠잠해졌다.
오늘부터는 초대 주간이 시작된다.
소중한 이들을 초대하여 순천에서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 건데,
나는 9/5(금)부터 9/10(수)까지 초대할 수 있지만
나는 주말 동안 동생들을 초대할 계획을 세워두었기 때문에 오늘은 자유시간.
오늘도 화창한 날씨.
아침을 먹고 방에서 한참 글을 쓰다가
이렇게 있지 말고 뭐라도 하자 싶어 나온 김에
뚜레쥬르에 들러 샌드위치와 커피로 점심을 때웠다.
순천에 와서 수많은 걸 보고 듣고 느꼈지만
그 중에서 또 하나 느낀 것이 있다면
내가 뭉게구름을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회사에 다닐 땐
출근길에 떠오르는 해를 보고
점심 산책을 하며 잠시 해를 보고
퇴근길엔 이미 해가 져있는 바람에
구름을 자주 볼 기회가 없었다.
내 시간을 내가 오롯이 쓰기 시작하니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며 시간을 보낼 때 가장 행복한지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스테이두루에서 좋아하는 공간.
1층에 창밖을 볼 수 있는 곳과
옥상에서 보는 풍경.
바로 옆 건물 옥상에 있는 초록 공간과
세탁기 옆에 있는 푸른 식물들까지.
가끔 통화하거나 세탁 하기 위해 옥상에 오곤 하는데
그때마다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점심을 먹고 숙소로 다시 돌아오니
룸메들을 포함하여 멤버들은 이미 다 떠난 건지 스테이두루가 조용하다.
산책 겸 다이소에 갈까
도서관에 가볼까 생각만 하다가
결국 선택한 건 방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아카이빙 내용을 정리하는 일.
아카이빙 제출 마감일은 다음 주 수요일로,
성과 발표회 전에 아카이빙을 마무리해야 했다.
인터뷰는 이미 끝냈고,
내용을 부랴부랴 정리하여 결과물로 만들어냈다.
목표는 금요일에 1차 초안을 끝내는 것이었는데,
집중해서 하다 보니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아카이빙에 추가하면 좋을 내용이 없을까?
고민하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친구는 내 아카이빙 결과물을 보더니
순천에서 오래 산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을 인터뷰 해서 추가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를 주었다.
호균님, 희주님, 주은 대표님까지 모두
프로그램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호의적으로 시간을 내주셨지만
좀 더 라이트한 내용으로 인터뷰를 해서 넣는다면
확실히 다양한 시각의 내용을 담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벌써 들떴다.
무슨 내용으로 말을 걸어야
가볍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하며
몇 가지 질문을 생각해두었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첫번째 타깃은 터미널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 기사님들.
밖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기사님 중 한 명을 선택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기회를 엿보는데
아무리 기회를 엿보아도 도무지 용기가 나질 않았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고민만 하다
결국 택시를 타서 간단한 인터뷰를 하기로 결정.
목표는 '웃장'
5일, 10일에 시장이 열린다 하여
구경 삼아 가보고 싶었고,
웃장까지 가는 길을 택시로 가보기로 한 것.
택시에 타서 기사님께
순천에서 꼭 먹어야 하는 음식에 대해 물었고
기사님은 꼬막이 유명한데
꼬막은 가을에 먹어야 제맛이라고 설명해주셨다.
그 다음 질문으로는 웃장에서 국밥이 유명한 곳을 여쭤보았고,
웃장은 국밥이 워낙 유명해서
어딜 들어가도 맛있을 거라 말씀하셨다.
준비한 질문은 많았지만 기사님께서
대화가 끝나마자 라디오를 크게 트셔서 대화가 하기 싫으신가? 생각이 들어
더 묻지 못하고 있는데,
순천에서는 2인 이상 국밥을 먹으면 맛보기 수육을 주니
혼자 가면 손해라는 말씀을 짧게 덧붙이셨다.
"네, 저는 혼자라서 손해네요."
하고 장난스럽게 말씀하셨더니
다음엔 친구랑 가보라며 대답해주셨다.
기사님께서 차를 세워주시며 '저쪽부터 다 웃장이에요' 하셔서 내리자 보이는 '웃장 표지판'
'웃으며 장보는 길'로 표기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웃장'이 '아랫장'과 대응되는 위아래 방향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아랫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 곳이 순천 구도심의 남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북쪽을 '위', 남쪽을 '아래'로 인식하면서 아랫장으로 부르게 된 것. 원래 명칭도 '순천남부시장'이었으나 일반적으론 현 명칭인 '아랫장'으로 불리었으며 2009년에 조례를 통해 공식적으로도 '아랫장'으로 바뀌었다. 마찬가지로 구도심의 북쪽에서 0일, 5일에 열리는 '웃장'도 본래는 '순천 북부시장'이지만 '웃장'으로 불리고 있다.
출처 : 나무위키
단호박도 팔고, 쪽파씨도 팔고.
다양한 과일도 파는 시장의 거리...를 생각했지만
내가 시장에 도착한 시간은 17시가 넘어가고 있는 무렵.
시장은 이미 닫을 준비를 하고 있는지
손님은 물론이고 상인도 이미 자리를 뜬 것인지
거리가 조용했다.
웃장에는 국밥거리가 따로 있을 정도로
국밥이 유명한데
때마침 뜨끈한 국물을 먹고 싶었으므로
눈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박가네 국밥'이라는 곳이었고,
"2인 이상 수육을 함께 드립니다" 라는 문구가 있는 걸 보니
혼자 가면 손해라던 기사님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두번째 타깃은... 식당 사장님께 짧은 인터뷰를 하는 것이었으나
말을 걸려고 할 때마다 손님이 오는 바람에
조용하던 식당이 이내 시끌벅적해졌고,
그런 분위기에서 말을 거는 게 이상할 거라는 판단에
나는 결국 맛있게 식사만 했다.. ^-ㅠ
국밥은 맛있었고,
피순대가 알차게 들어가있어 뜨끈한 한끼를 먹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늘 그렇듯 걸어 오기.
하루에 만보를 걷는 게 목표인데
목표는 목표일 뿐이라 추구하는 이상향일 뿐이고,
잘 지켜지진 않는다.
마음 먹고 걷겠다고 나서면 만보는 금방 걸을 수 있긴 하지만
생각보다 마음 먹고 걸을 만한 시간이 없다.
(사실 핑계다.)
하지만 하루에 만보를 걷겠다고 생각한 마음 덕분에
택시나 버스에 오르지 않고 부지런히 걸을 수 있었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다양하고 예쁜 광경들을 많이 볼 수 있어 기뻤다.
숙소로 들어와서 한 일은 세탁기 돌리기.
평일 동안 썼던 수건과 티셔츠, 양말, 속옷 등을 모아
세탁기에 돌려놓고 건조기까지 야무지게 돌렸건만
시간은 아직도 20시.
오늘 밤이 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막걸리 한 병을 사들고 홀짝거리며 마시고 있는데
밖에서 술을 마시고 온 친구들이
수육이 맛있어서 싸왔다며 함께 먹자고 했다.
아직 속에 음식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하진 않지.
우리는 1층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고,
모자랄 것 같아서 여러 종류의 막걸리를 더 사와서 마셔댔다.
무엇에 대해 이야기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수다를 떨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을 때,
직장을 구해 평일엔 서울에 있던 친구가 돌아와서 우리와 함께했다.
우리는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랫동안 헤어져서 만나지 못할 것처럼
아쉬운 마음에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막걸리를 계속해서 마셔댔다.
그게 숙취로 이어질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