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순천이라서, 지금이라서, 함께라서 다행이야
오늘도 조식으로 시작하는 아침.
초대주간을 위해 다들 떠나버리고 남은 건
나, 지우, 수민이.
막걸리를 마셨던 멤버들이었다.
우리는 새벽까지 막걸리를 마셔서
배가 고프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조식을 먹겠다고 투표를 했기 때문에
퉁퉁 부은 얼굴로 1층에 내려와 앉았다.
오늘 하루 뭐 할 거냐는 이야기를 짧게 나누었으나
오래 이야기를 나눌 컨디션은 아니었기에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치곤 얼른 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온 뒤에 생각했다.
오늘... 하루 많이 힘들겠는데.
깨지 않는 숙취에 머리를 부여잡고
"술을 많이 마셔 숙취가 심하니 천천히 오라"고 카톡을 보내놓고
까무룩 잠에 들었는데 노크 소리에 깨보니 동생들이 도착해있었다.
"왔니.. 고생했다.."
하고 말했더니 동생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다가
못내 서운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함께 즐겁게 시간 보낼 생각으로 기대하며 왔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니
당연히 서운할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얼른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수만 대충하고 모자를 눌러쓰고
여기까지 오느라 배고팠을 동생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향했다.
내 짐을 야무지게 챙겨든 동생들.
늘 고맙고 사랑하는 존재들.
오늘의 점심은 산정골.
해장이 필요할 것 같은 언니를 위해 둘째가 열심히 찾아낸 현지인 맛집.
순두부, 뼈해장국 등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었다.
토요일 오전, 이른 점심이라 그런지
손님이 많지 않아 좋았다.
국물이 먹고 싶었던 나와 둘째가 ‘우거지국밥'을 시켰는데 사장님께서 난처한 얼굴로
"우리 집은 순두부나 뼈찜이 더 맛있는데, 그걸 드시지" 하셨다.
메뉴를 까다롭게 고른 것도 아니어서
우리 둘 다 "순두부"로 메뉴를 바꾸겠다고 말씀드렸다.
오래지나지 않아 나온 메뉴들.
우거지국밥을 주문했으면 후회할지도 모르는 비쥬얼이었다.
뚝배기가 꽤 큰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순두부와 해물이 가득 담겨있었다.
담긴 해물의 종류로는 홍합이나 가리비, 전복, 오징어 등이었는데, 맵지 않고 적당히 칼칼해서 속이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반찬으로는 깍두기, 배추김치, 오이무침, 파래무침과 양파, 쌈장이 소박하게 차려졌다.
갓 무친 오이무침은 아삭하고 신선했고, 파래무침은 새콤한 맛으로 입맛을 확실히 돋워주었다
초대 주간으로 받은 상품권 3만원과 함께 결제.
결제하며 사장님께
"우거지 국밥 먹었으면 후회할 뻔 했어요. 순두부가 너무 맛있었어요!" 하고 너스레를 떨자
순두부도 맛있지만 뼈찜도 맛있으니 다음엔 뼈찜을 먹어보라며 웃어주셨다.
원래도 순두부를 좋아하는 둘째 동생 '순이'는
다음 주 언니가 퇴실할 때에도 먹으러 와야겠다며 입맛을 다셨다.
오늘도 화창한 날.
절기상으로는 입추도 지나고, 처서도 지나서
가을 냄새가 물씬 나야 하건만
여름은 아직 가을에 자리를 내어주기 싫다는 듯이
꼿꼿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덕에 순천만정원에 간 우리는 땀을 비오듯이 흘려야만 했다.
날은 몹시 더웠고, 습했다.
오래 걷지도 않았는데
해가 어찌나 뜨거운지 땀이 주르륵 흐를 정도였으니까.
동생들은 오래 전에 다녀갔던 순천만정원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곳곳을 둘러보고 싶어했지만
여름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고,
여름의 으름장을 견디지 못한 우리는 얼른 실내를 찾아 들어가야만 했다.
우리가 찾아 들어간 곳은 '우드베어'가 반겨주는 시크릿 어드벤처.
3,000원을 추가 결제하고 들어가야 하지만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어 한 번쯤 체험할 만하다.
특히 4D 체험을 할 수 있는데,
어른인 나도 재밌게 할 수 있었으니
어린 아이와 같이 방문할 예정이라면
한번쯤 꼭 들러보는 걸 추천한다.
시크릿 어드벤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왔지만
날씨는 여전히 '몹시 더움'
그 덕에 윤곽이 선명한 뭉게구름을 실컷 볼 수 있어 기뻤지만
오래 돌아다닐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우리는 옷이 땀에 젖을 정도로 더워하다가
순천만정원 근처에 있는 숙소에 들어갔다가
해가 진 뒤에 나오자고 결론을 내곤 얼른 숙소로 도망쳤다.
순천만정원 출구를 못 찾겠으면 커다란 루피를 찾으면 된다.
물론 9월 14일까지만.
(이 글이 올라갈 무렵엔 루피가 철수한 이후겠네..)
우리의 숙소는 순천만정원 근처에 있는 '호텔 리오'
침대가 3개 있는 곳이라 고르게 된 숙소이다.
순천만정원과 차로는 1분, 도보로는 13분? 정도의 거리로
오랫동안 순천만정원을 돌아보고 싶은 분들은
꽤나 만족할 수 있을 거리상 이점을 갖고 있다.
방은 전반적으로 깨끗했으나 욕실에 지우지 못한 곰팡이가 세월의 흔적인양 자리잡고 있으니 이 부분에 예민한 분들은 주의가 필요할 듯하다.
동생들은 숙소에서 땀을 식히고
나는 막걸리의 기운을 물리친 뒤 다시 온 순천만정원.
해가 질 때가 되자 더위가 약간 가셔 돌아다니기 훨씬 수월했다.
아, 참고로 순천만정원은 1회에 한하여 재입장이 가능하다.
재입장을 하려는 분들은 퇴장 전 도장?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쉴랑게 패스권'이 있어 입장료가 무료라 제대로 확인해보진 못했다.
재입장을 하려는 분들은 확인 후 퇴장하시길.
스카이큐브를 타고 싶어서 부지런히 길을 찾아 향했지만 18시에 입장이 마감되어 우리는 타지 못했다.
숙소에서의 휴식 시간이 길어진 탓이었는데,
그 누구도 볼멘소리를 하지 않고
오히려 잘 됐다며 편의점에서 물과 간식을 사 먹으며 쉬어갔다.
우리 삼남매는 종종 여행을 함께 다니는데,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우리끼리 꼭 지키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그건 바로 "불평불만하지 않기"
이러면 이런대로, 저러면 저런대로 여행지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해치지 않기 위해
우리끼리 꼭 지키는 약속이다.
그 약속 덕분에 우리는 셋 중 한 명이 피곤해보이면
화내지 않고 다 같이 쉬는 시간을 가지고,
누가 먹고 싶다고 하는 게 있다면 꼭 함께 해주며,
방문한 식당에 음식이 별로였더라도
내색하지 않고 다음에는 안 와도 될 것 같다고 돌려서 표현하곤 한다.
불평불만하지 않기, 이 한 가지만 지켜도
함께 하는 여행이 훨씬 만족스러워진다.
스카이큐브를 타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낮에 돌아보지 못한 정원을 구석구석 돌아보았다.
해가 져서 돌아다니기 훨씬 수월했고
낮에는 느끼지 못했을 밤만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 기쁜 시간이었다.
저녁으로는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은 의견을 반영해
숙소에서 배달을 시키기로 했다.
메뉴는 풍미통닭의 마늘통닭과
후토루의 네 가지 메뉴.
셋이서 먹기엔 많은 양이었지만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하며 먹다 보니 게눈 감추듯 해치울 수 있었다.
저녁을 먹으며 초대해놓고 숙취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미안하다고 말했고,
동생들은 오히려 순천에 초대해줘서 고맙다며
예전과 달라진 순천만정원을 보며 즐거웠다고 말해주었다.
우리가 오늘 함께, 순천에 여행을 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