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우리 또 오자, 날 좋을 때.
1. 다음에 또 오자, 날 좋은 날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막내가 먹고 싶어했던
꼬막정식을 먹으러 온 식당.
우리의 첫번째 목적지가 '순천만습지'였기에
습지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골라왔다.
식당은 넓었고, 자리는 많았으나
이른 점심에 방문해서 그런지 손님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
조용히 식사를 할 수 있는 곳 최고.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려진 한상.
낙지호롱이, 통꼬막, 떡갈비, 양념게장, 간장게장 등
나열하기 입 아플 정도로 다양한 반찬이 나왔다.
이 중에서 '통꼬막'이라고 꼬막을 쪄서 나온 게 있었는데
까먹기 힘들어하고 있으니 주방으로 가져가 먹기 좋게 만들어서 다시 내주셨다.
이런 정성이 나를 감동 받게 해...
이건 코다리찜인데,
발라먹기 어려울 수 있다며 직접 발라주셨다.
덕분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모든 음식이 맛있고 직원분들이 친절한데다가
진한 매실차까지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순천만 전라도 밥상" 추천합니다
(광고 및 협찬 아님)
밥을 맛있게 먹고 온 곳은 '순천만습지'
비가 올 것처럼 하늘이 잔뜩 얼굴을 구긴 날씨였는데,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아
잠시만 있다가 돌아가기로 했다.
순천만습지는 주차 기본 요금이 시간에 상관 없이 1일에 3,000원이라
잠깐만 보고 갈 사람들은 30분 이내 출차하는 걸 추천한다.
순천만습지 주차장은 매표소 앞에 위치해 있으며,
주차요금은 소형차 3,000원, 대형차 5,000원, 이륜차 500원.
주차요금은 1일 기준으로 적용되며, 이용시간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부과
(하지만 순천만습지는 몹시 넓어
30분 이내에 출차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
순천만습지는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 사이로
짱뚱어와 칠게 같은 작은 생명들이 등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해 질 무렵이면 이 모든 생명체들을 위한 고요한 시간이 찾아오는데,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한 점의 불빛도 허용하지 않은 채,
온전한 어둠 속에서 자연만의 시간이 흘러간다.
순천만습지는 생물들을 위해 금연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니
흡연자분들은 순천만습지에서만큼은 인내해주시길...
순천 마스코트는 흑두루미와 짱뚱어인데,
해당 동물들을 캐릭터로 만들어서 활용한 게 무척이나 귀여웠다.
순천만습지를 짧게 둘러본 우리가 온 곳은 '브루웍스'
저번에 둘째가 순천에 왔을 때 이미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셋째는 처음이기 때문에
브루웍스의 시그니처 메뉴인 '카카오라떼'를 주문했다.
카카오라떼는 단맛보단 카카오의 묵직한 쓴맛이 잘 느껴지는 편이지만
한번쯤 먹어보기 좋다.
브루웍스에 앉아있는 동안에는 둘째의 도움을 받아 아카이빙에 추가할
사진을 추가하고 디자인 하는 작업을 했는데,
글쓰는 걸 좋아하고 즐기는 나와 달리
사진이나 영상 쪽에 관심이 많은 동생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브루웍스에서 한참 작업을 하는데
비가 막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더 많이 오기 전에 낙안읍성을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부랴부랴 길을 나섰다.
차에 우산이 있어 비 오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빗줄기가 꽤 거세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낙안읍성을 제대로 못 둘러볼 것 같다는 걱정이 드는 것도 잠시.
넘어지면 쉬어가라는 말을 좋아하는 우리는
한가한 낙안읍성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잠깐 수면 시간을 가졌다.
차창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있으면 자장가가 따로 없어서
금방 잠에 들게 되거든요.
한 20분 잤을까.
거센 빗줄기가 많이 잦아들어
낙안읍성을 둘러봐도 좋을 것 같다는 판단으로 바깥의 상황을 살폈다.
우리의 운전자인 막내는
눈이 피곤해 좀 더 자겠다며 차에 남았고
둘째와 나는 우산을 쓰고 낙안읍성으로 향했다.
낙안읍성 안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전이나 비빔밥, 회무침 등 다양한 음식을 파는 음식점 거리가 있었지만
비가 오는 탓인지, 너무 늦게 온 탓인지 1곳 빼곤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둘째와 나는 조금 더 돌아보고 모주를 마시러 오자며 길을 나섰지만
한바퀴 돌아보고 왔을 땐 이미 마감된 이후라 음식을 먹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귀여운 고양이 두 마리를 만났으니까.
동생에게 집에서 고양이 간식을 챙겨달라고 부탁했었는데,
비 때문에 가져오지 못해서 아쉬웠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고양이들은 영양상태가 좋아 보였다.
꼬리도 길고 털에 윤기가 흘러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낙안읍성은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들이 많아 더욱 의미가 있는 곳인데,
마당에 걸어둔 빨래감이나 축담 위에 올려둔 몇 개의 신발 등이 생활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야트막한 산들이 감싸안아 분지를 만드는 자리에 돌담이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 역사 드라마의 촬영장을 찾은 것은 아닌지 잠시 착각하지만 이곳은 분명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마을이다. 수백 년을 거스르는 시간여행을 한다면 조상들은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 낙안읍성민속마을은 과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현재의 마을이다. 조선 중기 만들어진 석성 내부로 행정구역상 세 개의 마을 100여 가구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마한시대부터 이곳은 삶의 터전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낙안읍성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 1. 15., 최정규, 박성원, 정민용, 박정현)
동생은 비소식을 몰라 샌들을 신고 온 탓에
양말이 점점 젖고 있어서 더 돌아볼 수는 없었지만
시간이 멈춘 듯 예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낙안읍성에 매력을 가지는 듯했고,
다음에 날씨가 좋을 때 다시 오자며 약속했다.
어느덧 동생들이 집으로 돌아갈 시간.
순천에서 집까지는 두 시간이 족히 걸리기 때문에
내일 출근 해야 하는 동생들은 늦기 전에 출발해야만 했다.
저녁을 고민하던 우리가 온 곳은 '청춘창고'
청춘창고에는 여러 식당이 있는데,
그 중에서 '휘게 파스타'라는 곳에서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까르보나라와 새우 필라프, 감자튀김, 샐러드로 구성된 메뉴는
두 사람이 먹기에 적당한 양이었다.
왜 '두 사람'이 먹기에 적당한 양을 시켰냐면,
나는 휘게 파스타 가게 바로 옆에 있는 샌드위치를 주문했기 때문.
샌드위치 전문가게 '프룻팜'
점심을 많이 먹고 많이 걷지 않은 탓에
배가 그다지 고프지 않은 탓에
동생들은 양식을 먹고
나는 '바질 통모짜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아기자기한 인테리가 돋보였던 프룻팜.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세요. 반드시 행복해집니다" 라는 문장이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모짜렐라가 듬뿍 들어가있던 샌드위치는 맛있었지만
야채가 많아 한입에 베어물긴 힘들었다.
(야채를 남겼다는 사실을 이렇게 합리화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저녁을 먹은 후 동생들은 나를 숙소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떠났고
나는 홀로 순천에 남아 동생이 찍어준 사진을 살펴보았다.
나에 대한 애정이 여실히 드러나는 사진들.
동생들이 떠난 후 오늘 만보를 채우지 못했다는 사실에
휴대폰과 지갑을 챙겨들고 산책 겸 밖으로 나왔다.
돌아오는 금요일에 순천 한달살이가 끝이 난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막연히 걱정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돌아오고 있다.
한달살기를 시작할 때는 그저 좋은 추억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돌아갈 때가 되니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할까? 뭘 하면서 살아야 할까.
그 무엇도 변한 것 없고, 정답을 내린 것도 없는데
그저 한 달이라는 시간만 훌쩍 흘러 내 옆을 지나간 것만 같아
시간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무더운 날씨에
아직 여름이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나 보다 생각했는데
비가 한 차례 내린 순천은 가을이 성큼 다가온 듯 선선해져있었고,
코끝에서 느껴지는 가을 향기에
나는 익숙한 병을 앓는 것처럼 불안함에 몸을 떨었다.
가을이 되면 습관처럼 앓는 불안이라는 병.
앞으로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는 일.
어쩌면 주말동안 사랑하는 동생들이랑 함께 있다가
홀로가 되니 그저 공허한 마음이 드는 것일 수도 있다고 나를 달래면서도
순천 한달살기 이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나는 어떻게 살아야만 할지
고민이 점점 깊어지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