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이별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온다
오늘도 조식으로 시작하는 아침.
수요일까지 초대 주간이라 아직 스테이두루에 돌아온 멤버가 많이 없는 모양인지,
홀로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웃음이 이쁜 지현님과 룸메 지혜가 차례대로 내려왔다.
지현님은 이번 한달살기 멤버는 아니지만
저번 기수에 순천에서 한달살기를 하셨던 분으로,
이번에 스테이두루 사장님 일을 돕고
다양한 활동을 하기 위해 순천을 찾으셨다고 한다.
호균님과는 같이 한달살이를 진행한 덕분에
낙안읍성을 갈 때 같이 가기도 했고
같이 밥을 먹기도 해서 이미 친해진 사이.
퉁퉁 부은 얼굴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곤
지현님에게 내일 진행 될 "문화의 밤"은 잘 준비되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지현님은 푸틴이라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스가 필요한데
통관에서 막혀서 시간 안에 못 구할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며 못내 속상한 듯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뭘 먹어도 함께라 괜찮을 거라며 말씀을 드렸다.
아침을 먹고는 방으로 돌아와
오늘은 뭘 하며 보낼까 고민하다가 까무룩 잠에 들었다.
주말 동안 쉼 없이 움직이기도 했고,
날씨도 우중충한 탓에
저만치 밀어두었던 잠이라는 이불이 아주 달게 느껴진 탓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숙소에 있는 건 안 될 일 이지.
이번 주엔 한 달살기가 끝나는 걸.
나는 얼른 정신을 차려 씻고는 숙소 밖으로 나왔다.
오늘의 목적지는 '카페 아삐에노'
주택을 개조한 카페로
1주차부터 와야지, 와야지 생각만 하고 있다가 드디어 오게 된 거였다.
커피 메뉴도, 디저트 메뉴도 다양했지만
내가 고른 건 역시나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점심을 대신 해줄 잠봉뵈르 소금빵.
주택을 개조한 카페는 구조가 독특했다.
1층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홀이 나오고,
반층 아래쯤 내려가면 카운터가 나온다.
1층에도 테이블이 여러 개 있었지만
나는 비교적 조용하고 바깥을 잘 볼 수 있는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계단은 오래된 느낌을 그대로 살리려고 한 것인지
감각적인 인테리어에 비해 예스러운 느낌이 들었고,
곳곳에 있는 거울은
나같이 거울샷을 좋아하는 고객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않아 나온 아메리카노와 소금빵.
아메리카노는 고소한 원두를 좋아하는 내 입맛에 딱 맞았고
소금빵도 촉촉하고 부드러운 빵의 질감과 짭조름한 잠봉뵈르가 한 데 어우러져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오늘은 여유롭게 책도 읽고 싶어
최근에 구매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들고 왔다.
내게 좋아하는 작가를 물으면
한국 작가로는 한강, 공지영, 신경숙을 뽑고
그 외 작가로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뽑는다.
사실 내게 작가를 좋아하는 기준을 뽑는다면
철저히 작품 위주이기 때문에
'작가' 그 자체를 좋아한다기 보단
그 작가가 세상에 내놓은 작품을 좋아하는 것에 가깝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 중에는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
1Q84
기사단장 죽이기
해변의 카프카 등
다양한 작품을 좋아하여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뽑게 되었다.
한적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다는 것.
평생 이렇게 살아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은 여유로운 삶.
책을 읽기도 하고 브런치 글을 쓰기도 하며 홀로 시간을 보내는데,
룸메 지혜에게서 카톡이 왔다.
밖에 비가 쏟아지는데 우산이 없으면 데리러 오겠다는 것이었다.
17시까지 있을 예정인데
혹 그때까지 비가 오면 부탁하겠다는 말을 하곤
홀로 히죽히죽 웃었다.
누군가 날 걱정해준다는 게 좋아서.
(하지만 다행히도, 한 차례 지나가는 소나기였던 모양인지 저녁 무렵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카페에 앉아 있기만 해서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어느덧 시간이 18시에 가까워져있었다.
나란 여자, 끼니를 굶지 않는 여자.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나이트 가든 투어를 할 때 먹었던 김밥이 무척 맛있었던 기억이 있어 지도로 검색을 했더니
카페와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 걷기 시작했다.
비가 한 차례 온 탓인지
피부로 닿는 공기가 한층 선선해진 것이 느껴졌다.
여름이 제 자리를 가을에게 내어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기 김밥은 밥이 많지 않아 재료 맛이 잘 느껴진다는 게 포인트이다.
저번에 이어 오늘도 참치 김밥을 주문했는데,
참치가 듬뿍 들어있어 존재감을 뽐낸다는 면에서 몹시 만족스럽다.
저번에는 김밥과 사이다를 주문했는데
오늘은 혼자 왔으니 국물이 먹고 싶을 것 같아
라면과 함께 주문했다.
아주 만족스러운 한끼를 먹고 나선 길.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한 여름이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공기가 선선해진 것이 느껴졌다.
꼭 이런다.
여름일 땐 선선한 가을이 그토록 그립더니
가을이 되면 한 해가 이미 저물고 있다는 생각에
떠나버린 여름이 벌써 그리워진다.
후회란 건 늘 그렇다.
있을 땐 모르다가 이미 저만치 멀어지고 나서야 좋은 점만 보이는 모양이다.
노트북과 책을 숙소에 내려놓고,
옷까지 운동복으로 편하게 갈아입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늘 같은 기분으로는 숙소에 있는 것이 좋지 않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무작정 걷기 시작한 길 위에서
순천의 사소한 거리들이 마음으로 스며들었다.
이번 주면 끝날 순천 한달살기를 벌써, 미리, 그리워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어쩐지 쓸쓸해지는 코 끝을,
벌써 그리워지는 순천에 대한 마음을,
잘 달래며 씩씩하게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은 주말에 집에 왔다 갔으면 그런 마음이 덜할 텐데,
언니가 타지에서 멀리 있다보니
훅 끼쳐 온 가을을 마음으로 느끼는 모양이라고 나를 달래주었다.
이럴 땐 전화를 걸 동생이 있다는 사실이,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아도 날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안심이 된다.
한참을 걷고 돌아와 방에서 글을 쓰는데,
외출을 하고 온 룸메가 돌아왔다.
룸메는 내 기분이 울적해보이는 걸 알아차리고는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국화차를 내려주었다.
성큼 다가온 가을 앞에서 나는 또 내내 두려워 할 것이다.
그건 내 오랜 습관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을 거란 생각이 마음 한 켠에서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나를 이해해주는 동생도 있고,
아무 생각 없이 푹 자라며 숙면에 도움 되는 국화차를 주는 룸메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