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한달살기 in 장천 (19)

19. 마음이 아쉬울수록 시간은 매정하다

by 이양고

1. 시간이 아주 그냥 후루룩 뚝딱



고구마와 파김치, 스크램블, 약간의 흰밥.


오늘도 조식으로 시작하는 아침..!이었으나

일정이 9시부터 시작되어 5분 만에 입안에 스크램블을 잔뜩 욱여놓고 서둘러 나갔다.




오늘의 첫번째 일정은 '모후실에서 만난차' 방문하기.

㈜모후실에서만난차는 다류식품을 제조하는 회사입니다. 전라남도 순천에 본사를 두고 차(녹차,홍차,보리순차,꾸지뽕잎차)와 꽃차(매화차,목련꽃차, 메리골드꽃차 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모후실에서만난차는 대 내·외적 박람회 등지에서 제품을 홍보 하고 있으며, 2015년 농촌융복합산업 사업자 인증(6차산업)인증을 받았습니다.

출처 : https://www.yeongdo.go.kr/tour/01475/01477/01478.web?idx=2733&amode=view


모후실에서 만난 차는 순천에 있는 차 전문 회사로,

티를 좋아하는 룸메 지혜가 방문하고 싶다고 해서 따라 나선 참이었다.


모후실에서 만난 차는 순천이지만 끝자락에 있어 50분 가량 소요되는 곳이었고,

오후 일정이 있는 희주님께서 거기까지 태워주는 대신

늦지 않게 다녀와야 해서 9시부터 부랴부랴 나오게 된 것이었다.



모후실에서 만난 차를 찾아가는 길에 본 메리골드와 우렁찬 목소리를 가진 시골댕댕.



나는 차 보다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국화꽃차'도 지혜가 우려주어 처음 마셔봤는데,

차의 세계는 생각보다 넓고 다양했다.


그저 예뻐보이기만 하는 메리골드도 차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뜻밖의 수확이랄까.


어디가서 모후실에서 만난 차라는 곳에서 파는 '메리골드' 차 마셔봤어~? 한 마디 아는 척 할 수 있게 생겼다.


나올 때부터 심상치 않던 하늘이

우리가 도착할 무렵부터 티나지 않게 빗방울을 떨어뜨리더니,

우리가 '차마시는 방'에 들어오니

몸을 부르르 떨며 한차례 빗방울을 와악 쏟아냈다.




차 마시는 방으로 들어서니

곳곳에 판매 중인 제품들이 놓여있었다.


세상에 이토록 많은 종류의 차가 있었다니.

녹차, 홍차, 국화차(그마저도 지혜가 알려준) 밖에 몰랐던 내가

새삼 문외한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커피를 핸드드립으로 내리려면 생각보다 많은 제품들이 필요하다.

원두 – 신선하게 볶은 원두
그라인더 – 원두를 원하는 굵기로 분쇄
드리퍼 – 원두 위에 필터를 얹어 추출하는 도구
필터지 – 드리퍼에 넣는 종이 필터
서버(또는 머그잔) – 추출된 커피가 담길 용기
드립포트(구스넥 주전자) – 일정한 속도로 뜨거운 물을 붓기 위해 필요
저울 – 원두와 물의 비율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
타이머 – 추출 시간을 관리


20대 초반, 원두드립을 전문적으로 내리는 카페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커피의 세계가 이토록 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었다.


그리고 오늘, '모후실에서 만난 차'를 방문하고 차에 관련된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짐을 느꼈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다기

다관(茶罐/찻주전자) 차잎에 뜨거운 물을 넣어 우리기 위한 주전자.
찻잔(다완/다배) 차를 마시는 잔. 개인용으로 여러 개 준비.
숙우(茶海, 공도배) 다관에서 우린 차를 옮겨 담는 그릇. 맛과 농도를 일정하게 맞추기 위해 사용.
찻잔 받침(잔받침, 좌) 잔의 열을 손에 덜 전달하고 단정하게 놓기 위해 필요.


커피를 제대로 내리려면 다양한 도구가 필요한데,

그 중에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만 해도 3-4개가 된다.



반면 차를 우리는 일은 커피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더 정갈하고 섬세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차를 오래 우리면 떫은맛이 강해지기 때문에,

적당한 시점에 '숙우(茶海)'에 옮겨 담은 뒤 찻잔에 나누어 따르는 과정을 거친다.


차를 잘 모르는 나에게는 이런 세심한 과정들이 번거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손길 하나하나에 차에 대한 애정이 스며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매화차, 메리골드꽃차, 아카이카꽃차 등 다양한 꽃차를 판매 중인 '모후실에서 만난 차'

나는 그저 '차'는 꽃이나 잎을 넣고 우려 만든 모든 것을 뜻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양한 갈래의 차가 있었다.


가공(발효·산화 정도)에 따라

녹차(不發酵茶) : 발효하지 않은 차 → 한국 녹차, 일본의 센차·말차백차(微發酵茶) : 아주 약하게 발효 → 은침백호, 백모단
청차(半發酵茶, 오룡차) : 부분 발효 → 우롱차, 철관음홍차(全發酵茶) : 완전히 발효 → 얼그레이, 다질링, 아쌈
흑차(後發酵茶) : 후발효 → 보이차



차나무가 아닌 다른 재료(꽃·열매·뿌리·허브 등)를 뜨거운 물에 우리면,

엄밀히 말해 "차"가 아니라 티(Tisane) 또는 허브차

꽃차 : 국화차, 장미차, 라벤더차
과일차 : 유자차, 레몬차, 히비스커스차
허브차 : 페퍼민트, 캐모마일, 루이보스





모후실에서 만난 차 대표님과 수 많은 이야기를 하며

끊임없이 차를 마셨는데,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차는 '발효 목련 꽃차'


국화차에서는 국화향이 나지 않았는데,

목련꽃차에서는 목련향이 나서 신기한 경험이었다.


꽃은 눈과 코로 즐긴다고 생각했는데

입으로도 즐길 수 있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신선이 되는 기분.







모후실에서 만난 차에서 나온 우리가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미주농원'

룸메 지혜가 너무 맛있다고 극찬한 곳이어서 함께 오게 되었다.


미주농원은 닭코스 요리가 유명한 곳으로,

상견례를 위한 곳으로도 많이 온다고 해서 어젯밤부터 기대를 했더랬다.


코스요리로 나오는 닭요리는

마늘양념닭구이, 닭떡갈비, 치즈불닭, 간장치킨, 녹두닭죽.





자리에 앉아 코스 요리 2인분을 시키지 엏마 지나지 않아

정갈한 반찬이 테이블에 깔렸다.

반찬이 하나하나 다 맛있어서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부터 기대했다는 사실은 안 비밀.




제일 처음으로 떡갈비와 마늘양념 닭구이가 나왔다.

치즈불닭이나 치킨도 나름대로 맛있었지만

내 입에는 마늘 양념 닭구이가 가장 맛있었다.


순천은 닭구이가 유명하다는데,

이번 순천 한달살기를 하며 아직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첫째주만 해도 시간이 많으니 하나씩 다 해보면 그만이라 생각했는데

벌써 4주차 끝자락에 접어들고 있다.


게으른 나는 모든 일을 뒤로 미뤄만 왔는데

부지런한 시간은 계속해서 이렇게 나를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린 그 사실을 언제나 늦게 깨닫고 후회한다.




끊임 없이 나오는 닭 요리에 배가 두둑해진 나는

치킨과 닭죽은 감흥 없이 몇 입 먹다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맛을 음미하며 먹기엔 배가 너무 부른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미주농원에서 숙소까지는 버스나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택시를 탈까? 고민했던 우리는

10분 뒤에 오는 68번 버스를 타면 숙소 바로 앞에 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산을 쓴 채로 길가에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순천에서 버스를 타는 경험은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첫번째 경험은 룸메 당근이와 뷔페에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였고,

두번째 경험은 지혜와 미주농원에 왔다가 숙소로 돌아갈 때였다.


어쩌다보니 룸메 둘과 버스를 한 번씩 탔는데,

자가용으로 이동할 때는 못 느끼는 감각이 느껴져서 좋았다.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잠깐 쉬다가

호균님과 지현님과 함께 이마트로 이동했다.


사실 이건 예상에 없던 일정이었는데,

오늘 저녁 열릴 '문화의 밤'을 위해 장을 보러 간다고 하기에

나도 함께 따라 나선 것이었다.


호균님은 이마트에 가겠다고 나선 우리를 위해 쏘카를 빌려주셨다.

덕분에 나와 지혜, 지현님과 수현님까지 모두

비를 맞지 않고 이마트에 다녀올 수 있었다는 사실.


호균님. 짱.





2. 맛있는 거 나눠 먹으면 그게 축제지



드디어 시작된 캐나다 문화의 밤.

캐나다 문화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캐나다 음식을 나눠먹는 시간인데,

캐나다 식 감자튀김인 '푸틴'과 곁들일 각자의 음식을 챙겨오면 되는 것이었다.



지현님은 감자튀김과 치즈, 올리브를 비롯해서 준비해주셨고,

나는 맥주, 호균님은 막걸리를 준비해 미리 세팅해두었다.




시간이 지나 저녁 일곱시.

문화의 밤에 함께하겠다고 의견을 전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누군가는 피자와 파스타를, 또 누군가는 떡볶이, 어떤 이는 자두 등

다양한 음식을 챙겨와 한데 모아두니 축제 그 자체로 보인다.



지현님은 오랫동안 살았던 캐나다에 대해서,

그곳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간단히 말해주었고,

잠깐이나마 캐나다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라 뜻깊었다.


가장 오른쪽 애니메이션 사진은

지현님께서 졸업작품으로 제작한 거라 하셨는데

애니메이션 관련해서는 잘 모르는 내 눈엔

그저 졸업작품이라 치부하기엔

너무 고퀄이라 홀린 듯이 한참을 보고 있었더랬다.





그리고, 파티 시작.

지현님이 만든 감자튀김과 치즈, 메이플 시럽까지.

평소엔 잘 먹지 못했던 다양한 맛을 한 번에 맛볼 수 있어 좋았다.


이번 파티에는

앨빈의 친구 두 명과

예전에 스테이두루에서 일했다던 '유리'님,

희주님과 희주님의 아내분,

스테이두루 식구들도 함께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인 만큼 오히려 더 축제같은 기분이 들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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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순천 한달살기의 소중한 추억이 또 하나 쌓였다.


추억이 깊어질수록 이곳을 떠나기 싫은 마음도 함께 자라나서,

떠나는 날이 되면 발목을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