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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Jun 26. 2022

2022년 6월 26일, 호찌민

글·사진 이루다

2022 베트남 호찌민


1. 당신은 오시나요?


세 자리 중 통로 쪽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에 누가 앉을까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밤 비행기에서 같이 밤 편지를 써가는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한 자리 건너 창가 쪽에 한 베트남 중년 여성이 자리를 잡았다. 아직 나와 이 여성 사이에는 누구도 앉지 않았다. 통로를 따라 내게 걸어오는 사람마다 눈길이 가며 긴장과 아쉬움이 스쳐 간다.


‘당신은, 내게 오고 있나요?’


결국 아무도 나의 빈자리를 채워주지 않았다. 승무원 누나를 앉힐 수도 없다. 그렇게 오늘도 밤하늘의 별을 홀로 세며 그곳까지 가야 한다.



2. 당신이 맞나요?


20대 한국 여성이 내 앞의 세 자리 중 오른쪽 끝 창가에 앉았다. 뒤이어 한국 오빠가 왼쪽 끝 통로 쪽에 앉았다. 여성이 짐칸에 짐을 올리려 발뒤꿈치를 들어보지만 좀 힘들어 보인다.


내가 도와줘야 하나. 생각이 많으면 언제나 기회를 놓친다. 훤칠한 키의 오빠가 쉽게 그녀의 짐을 올려주고 자신의 짐도 올려놓는다. 승무원과 여성은 손 놓고 그저 옆에서 오빠를 바라볼 뿐이다.


여성이 오빠에게 기대면 머리가 어깨에 닿겠다. 누구에게는 설레는 신장 차이다. 이 여성도 그런지 모르겠다. 고맙다고 말하는 여성의 입가가 수줍게 피어난다.


‘당신인가요?’


오빠는 여성이 그토록 기다렸던 그 사람일까. 이 둘 사이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둘을 가로막는 그 어떤 장애물도 없다. 난 뒤에서 이들이 쌓아가는 하룻밤 만리장성을 지켜볼 뿐이다.



3. 당신은 왜 오셨나요?


비행기는 긴 밤하늘을 날아 날개를 내렸고, 난 공항을 빠져나왔다. 갓난아기를 안은 한 한국 여성과 각각 육십 대와 삼십 대로 보이는 여성과 남성이 같이 차를 기다린다. 한 가족인지는 모르겠다. 남성은 어머니 같은 여성의 팔을 꼭 잡고 있다.


자세히 보니 앞을 볼 수 없는 남성의 눈은 굳게 닫혔지만, 미간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같고, 입꼬리는 우뚝 솟은 산봉우리 같다. 예약한 차가 도착하고 아기를 안은 여성이 앞장서고 남성은 여성의 팔을 감싸 안고 따른다.


“당신은 왜 오셨나요? 앞을 보지 못하면 마음을 흔드는 아오자이의 맵시와 입술에 침이 고이는 반미의 속살도 볼 수 없어요.”그의 등 뒤에서 난 소리쳤다.


“보는 게 다가 아니에요, 난 보지 못하지만 느낄 수 있고, 상상할 수 있고, 꿈꾸는 대로 내 세상을 만들어요.” 그가 뒤돌아보며 내게 속삭였다.


멀어져 가는 그를 보다가 예약한 그랩 차가 온 줄도 몰랐다.

“여기 왜 오셨어요?” 그랩 기사는 내게 물었다.

2022 베트남 호찌민


4. 당신은 꿈꾸시나요?


목적지를 안다고, 또는 그곳에 도착했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유를 모르면 헛걸음을 칠 수 있다. 눈이 있다고 다 보는 것도 아니고,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이유를 알면 설령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고, 길을 헤매도 결국 그곳에 갈 수 있다.


또 상상할 수 있으면 진흙탕 길을 걸어도 견뎌낼 수 있고, 꿈꾸면 어두운 밤길도 헤쳐갈 수 있다. 상상의 등불과 꿈의 별빛이 나를 안내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곳에 돌아왔나요? 꿈꾸기 때문에, 꿈길 따라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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