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5학년 새 학기를 맞이했을 때 엄마가 말씀하셨다.
'여자라면 악기 하나 정도는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악기라고는 리코더정도 불 수 있던 내게 피아노는 너무나 어려운 악기였다.
음악에 흥미도 재능도 없던 나는 아파트 상가에 새로 생긴 미술학원을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그림이야 네가 그리고 싶을 때 얼마든지 그리면 되니 우선 3달만 피아노를 배워보라며 피아노 학원에 나와 여동생을 자매할인으로 집어넣으셨다.
그렇게 엄마 동네친구였던 아줌마는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피아노 선생님이 되셨다.
엄마는 뭘 배우던 무조건 3달은 배워야 계속 배울 건지 그만 둘 건지 알 수 있다는 이상하고도 묘하게 설득력 있는 기준을 내세워 학원을 보내셨는데 난 정말 3달만 참고 견디면 그만둘 수 있게 될 줄 알았다.
여동생처럼 빠지기도 하고 다니기 싫다고 떼를 쓰기도 했어야 했는데 난 그냥 열심히 다녔었나 보다.
3달이 다 되어 갈 때쯤 엄마에게 이제 피아노는 그만 다니고 싶다고 말했지만 피아노 선생님과 엄마의 '한번 배우기 시작했으니 체르니 40번은 떼야 뭐든 원하는 걸 칠 수 있게 된다'는 그 말에 덜컥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때 싫다고 좀 더 단계를 낮춰 말했어야 했는데 막 바이엘을 뗀 초보는 체르니에 대한 정보 없이 그저 좋을 거라는 말에 미끼를 덥석 물어 버렸다.
학교가 끝나면 피아노 학원으로 정해진 시간에 가야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엄마친구였던 피아노 학원 선생님은 지체 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하셨기 때문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늦게 되면 저녁을 먹고 보강을 가야 했기 때문에 난 친구들과 놀다가도, 집에서 뒹굴 거리다가도 시간만 되면 피아노 선생님이 직접 만든 빨간 체크 누빔천 교재 가방을 들고 학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난 정말 피아노에 재능이라고는 1도 없어서 음표를 보고 치는 게 아니라 건반의 위치를 외워서 치며 간신히 한곡 한곡을 넘어가는 통에 다른 곡을 배우기 시작하면 전에 배운 곡은 통째로 잊곤 했다.
같은 학원에 다녔던 나보다 아래라고 생각했던 다른 반 친구는 피아노엔 소질이 있어 얼마나 유연하게 잘 치던지 학교에선 느끼지 못했던 그 친구를 향한 극심한 열등감은 학원에 갈 때마다 날 괴롭게 했다.
심지어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 더 잘 치는 걸 보게 될 때마다 느꼈던 스트레스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참이 지나고 나보다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은 많고 난 피아노에 재능이 없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나서야 열등감은 그대로였을지언정 스트레스는 느끼지 않게 되었다.
일 년쯤 피아노를 배웠을 때 아빠는 큰맘 먹으시고 피아노를 사주셨다.
학원에 있던 뚜껑이 위로 열리는 흔한 까만 피아노가 아니라 뚜껑이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원목으로 만든 갈색 피아노는 나와 여동생의 자랑거리이자 제일 소중한 물건이었다.
아빠는 일찍 오시면 늘 배우는 곡을 쳐보라 하셨는데 나와 여동생이 피아노 치는 걸 신기해하시며 흐뭇하게 웃곤 하셨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하교 후엔 다른 학원을 가야 했기에 내 피아노 시간은 아침 7시 반으로 결정되었다.
순전히 피아노 선생님이 엄마친구라서 가능했던 일로 아침마다 한 시간은 일찍 일어나 머리도 말리지 못하고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들고 학원으로 가면 피아노 선생님은 젖은 내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려 주시고 피아노를 가르쳐 주곤 하셨다.
중학교 2학년을 앞두고 엄마는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라고 하셨지만 체르니 40번을 끝내고 싶다고 말했다.
아마도 같이 다니던 친구가 체르니 40번까지 치고 그만둔다고 했던 말을 듣고 난 후라 더 그랬던 것 같다.
내가 걔보다 잘 치치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중간에 그만두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인내심으로 끌고 나가던 피아노 레슨은 내가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갈 때쯤 체르니 40번의 마지막 곡을 다 치게 되면서 끝나게 되었다.
그 후로는 집에 피아노가 있었지만 뚜껑도 열어보지도 않았고 피아노에서 벗어난 해방감과 후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피아노가 집안 장식으로 굳어질 때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빚쟁이들이 피아노를 가져가기 전에 피아노를 팔아버리셨는데 피아노를 판 돈을 내 대학 입학금으로 쓰려고 하신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아빠가 사준 건데 왜 파냐며 화를 내던 여동생 뒤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피아노가 우리 집을 떠나 던 그날은 첫눈이 왔었는데 서울에서 왔다는 그 아저씨는 자기가 큰 악기상을 한다며 이 피아노는 국내에 몇 대 없는 거라고 극찬을 하시고는 산 가격의 반에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을 주고 가지고 가셨다.
그렇게 피아노는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결혼 후 음악에 관심이 많은 남편이 디지털 피아노를 사고 나서 남편방에 들어갈 일이 생길 때면 가끔 건반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아이들을 가졌을 때엔 태교를 한다며 소곡집을 사서 치기도 했고 아이들이 어릴 땐 동요를 쳐주면 좋아해서 자주 쳐 주기면서 십여 년이 훌쩍 지나서 다시 피아노를 치게 되었다.
어떤 날은 피아노의 존재를 아예 잊기도 했고 어떤 날은 한곡도 못 치기도 했고 어떤 날은 한 시간도 넘게 치고 있기도 했다.
배운 시간이 무색하게도 딱 동요를 칠 수준밖에 안 되어도 더 이상 잘 치고 싶지도, 못 쳐서 괴롭지도 않았다.
가끔 동요를 치며 즐겁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문득 난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피아노를 배웠을 때 나는 행복했던 것 같다.
피아노를 배우도록 지원해 주던 부모님도 계셨고 그만두지 않게 곁에서 자극이 되어 준 친구도 있었고 그 덕에 예쁜 피아노를 가졌던 적도 있었으니까.
피아노 학원을 갈 때 맡던 새벽 공기와 내 머리를 말리 때 나던 샴푸냄새, 똑딱이던 메트로놈 소리, 피아노뚜껑을 열 때마다 나던 나무향내와 아빠의 웃는 목소리, 서점에서 소곡집을 다시 샀을 때 느껴졌던 몽글몽글했던 기분, 동요를 쳐주면 까르르 웃으며 따라 부르던 아이들의 노랫소리, 며칠 동안 연습 후에 온전히 한곡을 무사히 치게 된 후 느꼈던 기쁨...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린 것 같았던 피아노는
어느새 다시 내 인생에 들어와 많은 것들을 남겨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