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은 빵집이었다.
새벽에 출근을 해서 빵집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있으면 제빵사 언니와 아줌마가 출근을 하시고 빵을 구우셨다.
그럼 난 옆에서 도나츠류를 튀기고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8시가 좀 안 되는 시간쯤 내 일이 다 끝나고 나면 그때부턴 카운터를 봤는데 2시에 일이 끝났다.
오후 출근자와 교대를 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그때부터 피곤함이 밀려와 졸다가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치기도 했었다.
그렇게 집에 가도 엄마는 직장에, 동생들은 학교에 가서 아무도 없었는데 그 적막함이 견딜 수 없이 힘들어 다시 집을 나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곤 했었다.
그날도 집에 있기 싫어서 있는 돈을 다 털어 언젠가 갔었던 대전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고 기차에 올라탔다.
좌석에 앉아 차창밖을 쳐다보는데 차창밖 풍경은 눈을 깜빡일 때마다 바뀌는 사진들 같이 현실감이 없었다.
도착한 대전은 내 기억 속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친구들과 왔었던 지하상가 떡볶이집도, 서점도, 백화점도 다 그대로였는데 나만 변한 것 만 같았다.
왕복 기차표를 끊고 나니 내 수중엔 천 원 남짓한 돈만 남았었고 거기서 반절 넘게는 집에 가는 시내버스를 타야 해서 가장 싼 음료수 하나를 자판기에서 뽑아 기차역 대합실에 앉아 있었다.
그때 옆에서 어떤 아줌마가 걱정 어린 눈빛과 다정한 말투로 아직 어린 학생 같은데 이 시간에 왜 여기 있냐며 말을 걸어오셨다.
나는 대학생이고 현재 휴학중이며 다시 학교를 들어가려고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마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던 그 아줌마는 배고프지 않냐면서 호두과자 한 봉지를 사주시며 공부만 해도 힘들 텐데 장하다며 집에 잘 돌아가라고 등을 토닥여주시고 가셨다.
빵집에서 늘상 맡는 버터와 밀가루와 설탕의 냄새가 지긋지긋했는데 같은 재료로 만들었지만 그 호두과자는 맛있어 보였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호두과자를 먹는데 목이 메어 눈물이 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샀던 음료수를 다 먹지 말고 남겼다가 같이 먹을걸 바보같이 다 마셔서 목이 멘다며 날 타박하며 울었다.
왜인지 모르게 엄마가 생각나서 더 눈물이 났었다.
한참 후 눈물도 마르고 호두과자도 다 먹고 날 가득 채웠던 우울함도 사라지고 나서야 차창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출발했을 땐 한낮이었는데 밖은 이미 별이 뜬 밤이 되어 있었다.
스무 살이 되면 지긋지긋한 공부에서 벗어나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같이 아름다운 나날들을 보내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스무 살은 깊은 숲 속에 홀로 낙하한 작은 별똥별 같았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아버린 낡은 난파선 같았다.
물 밖에서 숨 가쁘게 헐떡이는 물고기 같았고 끈이 떨어져 어디로 갈지 몰라 바람에 휘쓸려 흔들리는 연 같았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할 수 없는 게 더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눈은 뜨고 있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귀는 열려 있지만 무슨 말도 들리지 않았다.
자력으로 채울 수 없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많다는 걸 알게 된 내 스무 살은 그렇게 무기력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난 다시 집으로 돌아가 아무일 없다는 듯이 다음날에도, 그 다음다음날에도 빵집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고 도서관에 가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 후 입시미술학원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두 달 동안 원하는 걸 배웠고 창피하고 힘들어도 참고 견뎌 원하던 학교 원하던 학과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영원히 무채색일 것만 같았던 나날들도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제 색을 찾아갔다.
물 밖에서 숨을 헐떡이던 물고기는 다시 물로 돌아갔고 끈이 떨어져 하늘을 배회하던 연도 곱게 땅위로 내려왔다.
나의 스무 살은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