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st D Feb 21. 2023

나의 스무 살

처음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은 빵집이었다.

새벽에 출근을 해서 빵집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있으면 제빵사 언니와 아줌마가 출근을 하시고 빵을 구우셨다.

그럼 난 옆에서 도나츠류를 튀기고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8시가 좀 안 되는 시간쯤 내 일이 다 끝나고 나면 그때부턴 카운터를 봤는데 2시에 일이 끝났다.

오후 출근자와 교대를 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그때부터 피곤함이 밀려와 졸다가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치기도 했었다.

그렇게 집에 가도 엄마는 직장에, 동생들은 학교에 가서 아무도 없었는데 그 적막함이 견딜 수 없이 힘들어 다시 집을 나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곤 했었다.

그날도 집에 있기 싫어서 있는 돈을 다 털어 언젠가 갔었던 대전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고 기차에 올라탔다.

좌석에 앉아 차창밖을 쳐다보는데 차창밖 풍경은 눈을 깜빡일 때마다 바뀌는 사진들 같이 현실감이 없었다.

도착한 대전은 내 기억 속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친구들과 왔었던 지하상가 떡볶이집도, 서점도, 백화점도 다 그대로였는데 나만 변한 것 만 같았다.

왕복 기차표를 끊고 나니 내 수중엔 천 원 남짓한 돈만 남았었고 거기서 반절 넘게는 집에 가는 시내버스를 타야 해서 가장 싼 음료수 하나를 자판기에서 뽑아 기차역 대합실에 앉아 있었다.

그때 옆에서 어떤 아줌마가 걱정 어린 눈빛과 다정한 말투로 아직 어린 학생 같은데 이 시간에 왜 여기 있냐며 말을 걸어오셨다.

나는 대학생이고 현재 휴학중이며 다시 학교를 들어가려고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마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던 그 아줌마는 배고프지 않냐면서 호두과자 한 봉지를 사주시며 공부만 해도 힘들 텐데 장하다며 집에 잘 돌아가라고 등을 토닥여주시고 가셨다.

빵집에서 늘상 맡는 버터와 밀가루와 설탕의 냄새가 지긋지긋했는데 같은 재료로 만들었지만 그 호두과자는 맛있어 보였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호두과자를 먹는데 목이 메어 눈물이 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샀던 음료수를 다 먹지 말고 남겼다가 같이 먹을걸 바보같이 다 마셔서 목이 멘다며 날 타박하며 울었다.

왜인지 모르게 엄마가 생각나서 더 눈물이 났었다.

한참 후 눈물도 마르고 호두과자도 다 먹고 날 가득 채웠던 우울함도 사라지고 나서야 차창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출발했을 땐 한낮이었는데 밖은 이미 별이 뜬 밤이 되어 있었다.

스무 살이 되면 지긋지긋한 공부에서 벗어나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같이 아름다운 나날들을 보내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스무 살은 깊은 숲 속에 홀로 낙하한 작은 별똥별 같았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아버린 낡은 난파선 같았다.

물 밖에서 숨 가쁘게 헐떡이는 물고기 같았고 끈이 떨어져 어디로 갈지 몰라 바람에 휘쓸려 흔들리는 연 같았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할 수 없는 게 더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눈은 뜨고 있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귀는 열려 있지만 무슨 말도 들리지 않았다.

자력으로 채울 수 없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많다는 걸 알게 된 내 스무 살은 그렇게 무기력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난 다시 집으로 돌아가 아무일 없다는 듯이 다음날에도, 그 다음다음날에도 빵집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고 도서관에 가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 후 입시미술학원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두 달 동안 원하는 걸 배웠고 창피하고 힘들어도 참고 견뎌 원하던 학교 원하던 학과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영원히 무채색일 것만 같았던 나날들도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제 색을 찾아갔다.


물 밖에서 숨을 헐떡이던 물고기는 다시 물로 돌아갔고 끈이 떨어져 하늘을 배회하던 연도 곱게 땅위로 내려왔다.

나의 스무 살은 그렇게 지나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범함의 수직선 위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