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E야?

가족, 문득 그립고 때로 서러운 이름

by 이연숙
20220324내가 왜 E야?.jpg



오래 전에 MBTI검사를 해 본적이 있었다.

한 번은 심리상담 자격증 과정을 공부할 때였고

한 번은 큰아이 교리과정 중 4학년 대상 검사지로 했었다.

숫자에만 약한 것이 아니라 알파벳에 약한 터라

열여섯 가지나 되는 유형 중

그나마 맨 앞자리가 I라는 것 말고는 내 성격유형을 듣고 금방 잊어버렸다.

(시대가 달라졌다는 얘기를 하면 할수록

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같아 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달라진 시대에 대해 얘기할 수밖에 없다.)

요즘은 자기소개를 하는 과정에서 MBTI가 중요한 요소라고 들었다.

예전에 혈액형이 뭐냐고 묻는 것만큼이나

누구나 자기 성격유형을 알고 있었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유형을 듣고 분석까지 술술 얘기하기도 한다.

(다시 한 번) 예전에는 검사지 가격이 꽤 비쌌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인터넷에서 15분이면 검사와 결과까지 볼 수 있었다.

그게 트랜드라니 나도 해봤다.

INFJ

해당 유형은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드문 성향이라고 한다.

대부분 맞는 것 같으면서도 인정하기 싫은 느낌도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그 것이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만들어진 성향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과정을 되풀이 했다.

될수록 과감하게, 한쪽 눈을 게슴치레 뜨고 했더니

N이 S로 바뀌었을 뿐 나머지는 똑같았다.

두 번 더 해봤지만 여전히 N과 S가 공평하게 한 번씩 나왔다.

아이들과 모였을 때 그 얘기를 했다.

각자 자기 유형을 말하는데

신기하게도 모두 I로 시작하는 가운데

오직 한 사람 K는 E라고 했다.

식구들 모두 딱 맞다며 깔깔 웃는데

혼자 웃지 못하는 K가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다.


“내가 왜 E야?”

“그...글쎄...외향적이니까 외향성으로 나온 거 아닐까?”

“내가 외향적이야? 내가 얼마나 내성적인데.”


그 순간 약간의 정적이 흐르며 ‘왜지?’ 라고 묻는 눈빛들이 서로 부딪쳤다.


며칠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I형과 E형으로 나뉘어 게임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대부분 맞다맞다 하는 와중에도

쟤가 E야? 쟤는 I인줄 알았어. 하는 부분도 있었다.

각자 같은 유형끼리 모여 앉아

이럴 때 이렇지?

막 이러고 저러지?

라며 서로 손뼉을 치며 공감을 한다.

I들이, E형들이 모여 있는 곳에 한 사람은 서 있을 거고

누구는 왔다갔다하고 있을 거야.

라고 했는데 정말로 그러고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소리 내서 웃었더니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며 이 방 저 방 왔다갔다하던 K가 묻는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또 빵 터졌다.


우리 K는요

모임이 많아요.

술을 마시는 건, 술을 잘 마셔서라기보다 술을 마시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툭치면 쓰러질 것처럼 지쳐있다가도

친구가 부르면 냉큼 달려 나간 적도 있어요.

갔던 길을 또 가는 걸 싫어하고

막힌 길은 돌아서가요.

쉬는 날에는 집에서 잠을 자기보다 밖으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요.

K는 공감능력이 없어요.(공감능력 없다는 말을 제일 싫어함.)

지루한 얘기를 오래 듣는 걸 힘들어해요.

살짝 눈치가 없을 때도 있고

일단 지나간 일에는 연연하지 않아요.


누가 봐도 빼도 박도 못할 E 성향이다.

K가 E라고 하니 비로소 그를 이해하기 쉬워졌다.

I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를 보니 결혼을 하고 싶다거나

엄마 아빠처럼 아이들을 낳아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나름 크게 문제없이 잘 지내왔던 이유가

서로 다른 성향이라서 였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내가 왜 E냐고?

정말,

몰라서 묻는 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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