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일 차로 태우고 이 차로 당신이 스테이크를 구워서...
- 고기를 구운것과 상관없이 일 차로 타 버린게 문제였거든요?
구입한지 불과 한 달도 안 된 통3중 프라이팬 얘기다.
K씨가 달걀 프라이를 하고 나서
불을 끈다는 것을 부스터 버튼을 눌렀던 거다.
그냥 버리기 너무 아까워서 고기를 한 번 구운걸 가지고 공범으로 몰아가려는...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는 동안
번번이 불은 끄지 않은 채 프라이팬만 들어 음식을 담고는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이러다 언젠가 큰일 나지 싶어
이사를 하면서 인덕션으로 바꾼 터였다.
전기요금 걱정을 하는 내게 설치기사가 간단히 말했다.
- 높은 온도로 장시간 사용하는 상황만 아니면 그렇게 많이 안나와요.
기사의 말대로 1부터 9까지의 열 세기에서 나는 구태여 9까지 올린 적은 없고
7 정도로 켜 놓고
국도 끓이고 찌개도 끓이고 생선도 굽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뭐든 어정쩡한것은 용납하지 않는 K씨는
9는 물론이고 이따금 부스터(엄청난 화력이 필요할 때 순간 최고 온도로 올려주는)까지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방에서 조차 감지되는 타는 냄새에 나와보니
그는 자리를 뜬 것도 아니고 바로 옆 화구에서 다른 음식을 끓이고 있었다.
프라이팬위에 얹힌 종이 덮개가 노랗게 색이 변해 있었고
덮개를 열어보니 비어있는 프라이팬이 한껏 이글거리고 있었다.
냄새는 그렇다치고 바로 옆에서 어떻게 이 열기를 느끼지 못했을까.
(슬쩍만 스쳐도 바로 화상을 입을 수 있을만큼 후끈거렸다.)
화가 나기 앞서 그 것이 궁금했다.
다치지 않았고 불나지 않았으니 그걸로 됐다고 상황을 마무리했지만
그거 참 미스테리다.
K씨가 종종 치는 사고는 언제나 드라마틱하다.
(아 물론, 절대 절대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딸이 결혼기념일 선물로 사준 커플 컵
네 개 세트로 맞춰 샀던 토마토 볼
오래 고르다가 역시나 네 개 세트로 샀던 와인 잔 (한개를 깨서 다시 한 세트로 샀던 그 것 마저...ㅜㅠ)
스페인 여행 중
무려 호텔 기프트샵에서 큰 맘 먹고 샀던 그라나다 커플 머그컵 등등등등
그릇을 깨도 늘 이런 식이다.
평범하고 싫증난 그릇은 한 번도 깬 적이 없다.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날 때마다
- 괜찮아~ 깨야 새로 또 사지.
라고 대인배처럼 말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그런 그릇을 말하는 건데.
그가 깬 그릇들은 대부분 다시 살 수 없거나 남은 것이 쓸모 없어졌다.
그런가하면 K씨 2세인 다른 두 K들은
창의적인 일을 해서 밥벌이를 한다.
현재 K1이 살고 있는 집을 K2가 셀프 인테리어를 할 때 나도 참여했었다.
심란한 집 상태를 보며
그냥, 전문가에게 맡기지 이걸 어떻게 한다고,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 참았다.
허나 K2는 거침 없었다.
페인트와 거기에 필요한 도구들
페인트 전에 밑작업을 해야한다며 젯소
타일같은 질감이 난다는 타일페인트
그 외에도 도대체 그런 것들은 어디서 사나 싶은 물건들을 가져다가
아이는 빈집에다 마법을 펼치고 있었다.
그 중에도 내가 제일 감탄한 부분은 욕실 문이었는데
습기와 곰팡이로 너덜너덜해진 문을
사포로 밀고 (그 이름이 뭐더라? 구멍을 메우는...백번 들었는데 또 까먹음-,.-;)
메우고 마르면 또 밀고 메워 페인트까지 칠 해 놓으니 멀쩡해졌다.
K1역시 어려서부터 자잘한 레고블럭보자기에 아예 들어 앉아
밥 때도 모르고 뭔가 만들어냈다.
이 전 집 인테리어를 할 때에도
나의 니즈에 대해 대부분의 아이디어를 아이들이 냈었다.
하다못해 천정에 프로젝트 하나를 달아도
K1은 한 번에 반듯하게 화각을 맞췄으며
스크린을 부착할 때에도 천정 각목 상태를 꼼꼼히 체크했다.
자기 침대를 셀프로 만들기 위해 목공방에 다니는 동안
아빠 방에 놓을 TV받침대와 엄마 방에 놓으라고 작은 수납장을 만들었는데
그 것이 감동이었다.
K씨는 한사코 본인이 공대 출신임을 자부하고는 한다.
문과를 선택했던 K1, 이과 과목을 선택했던 K2 모두 예체능이고
빼박 문과인 나에 비해도
그의 손재주는 네 명 중 4등인걸 그도 알고 온 가족 모두 안다.
어쩌겠나
금손들이 모두 그 똥손에게서 나온 것을.
그래도 나는
언제나 우리집 똥손을 응원한다.
누가 또 알겠나.
언젠가 똥손이 금으로 반짝일 날이 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