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문득 그립고 때로 서러운 이름
우리 엄마는 37년생 소띠이시다.
3남 4녀 중 딸로는 셋 째 인데
셋 째 딸이라서 그런가? 딸들 중 미모가 출중했다.
젊어서도 예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고 했고
할머니가 되었을 때에는 과거형으로 바뀌어
‘젊었을 때 미인이셨겠’ 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쌍꺼풀이 짙으면서 서늘한 눈매는 외갓집 유전자로
오빠와 남동생은 외탁을 해서 예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던 반면
아버지를 빼다 박아, 눈꼬리가 길고 눈두덩이 소복했던 나는
집을 잘 못 찾은 것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 그 것은 현실이 되었다.
나는 가끔 신데렐라도 되고 콩쥐도 되었다가
때로는 소공녀에 이입을 해서는
언젠가는 부자 아버지가 나를 찾으러 올지도 모른다는 설렘으로 잠을 청하기도 했었다.
엄마는 아들들을 존중했다.
아들 중에서도 특히 큰 아들은 거의 신앙이었다.
딸은?
엄마대신 집안일을 해야 하는 아바타이자
자신의 처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쏟아낼 펀칭백이자
엄마의 엄마가 되어 무한한 위로와 희생을 감내해야하는 역할로만 존재했다.
하여 나는 어린 시절에 어린이였던 적이 없었고
굴러가는 낙엽을 보면서 까르르 웃을 줄 아는 소녀였던 적도 없었다.
격리기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는 사는 게 재미있니? 아주 깨가 쏟아지나보구나? 난 하~~나도 재미없는데.”
한동안 전화를 하지 않은 데 대한 서운함이라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이게 대체 자식한테 할 소린가 싶어 순간 짜증이 났다.
혼자 자식들을 키우느라 걱정이 체질이 된 터라
걱정할 일이 없으면, 왜 이렇게 걱정거리가 없지? 라며 걱정을 만들기도 하는 성향이니
공연히 확진 소식을 듣고 걱정거리에 집중할까봐 통화조차 망설였던 참이었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은 없었고
곧 격리 기간도 끝이 나니 조심스레, 확진이 됐었다고 말했다.
아예 말 끝에 열도 없었고 증상은 있었지만 이제 곧 격리도 풀린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엄마는 걱정대신 의외의 말을 했다.
“아우 얘, 그러고 보니 우리도 지난번에 감기가 걸려서 세 식구가 아주 된통 고생 한 적이 있는데 그게 코로나 였나 보다.”
“검사는 음성으로 나왔다며?”
“몰라, 우리도 열은 없었는데 언니하고 나는 가래가 끓으면서 기침이 엄청 심했잖아.”
지난 1월 말쯤 오빠네 부부와 엄마가 모두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고 했었다.
병원에 가니 당연히 검사부터 했고 모두 음성이었으며
감기약을 처방 받아서 먹고 나았는데 기침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배도라지청을 주문해 주었었다.
몇 주 후에는 기침도 떨어졌다고 했던 그 얘기가
왜 갑자기 이 시점에 코로나가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엄마는, 아프니 힘들어서 어쩌냐는 말도
잘 먹고 잘 쉬고 얼른 나으라는 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 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곱씹어보니
그 참 이상하다.
대체 우리 엄마는 나한테 왜 그러는 걸까?
내가 엄마를 닮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면 나를 엄마 자신에 이입해서
자기가 자기한테 함부로 하는 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살면서 한 번쯤은
집안일 하면서 학교 다니느라 네가 고생이 많았다.
고맙다.
네가 힘든 줄 몰라줘서 미안하다.
라는 말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엄마는 여전히 내게 받을 빚이 무척 많은 것 같은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동생에게 메일을 쓰다가 그런 얘기를 했다.
데면데면한 오빠보다는 그래도 섬세한 동생은 답장에
“나 역시 도토리묵 장수 아들시키라는 설이 있었으니 대충 그까이꺼 쌤쌤이다 생각하고 다소나마 위안이 되길 바라요”
라고 썼다.
오래 전 어느 드라마에서
자식을 버리고 떠났던 여자가 도토리묵 장사가 돼서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째서,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식구들이 동생 놀리기에 한 마음이 되어
저 사람이 네 엄마라고 했던 적이 있다.
이름 뒷 글자를 뒤집으면 ‘곰’이라서 곰이라는 별명을 비롯해서
별명 부자였던 동생은 이 후로 도토리묵 장사 아들이라는 웃픈 별명 하나가 추가됐다.
그 것과 내 상황과는 전혀 결이 다른 얘기지만
어떤 말이 됐든 나에게 위안을 건넨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레이 아나토미’ 전 시즌을 세 번 봤다.
첫 번 째는 자막 따라가기도 벅찼고
두 번 째는 높은 기대를 가진 엄마 때문에 메러디스가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고
세 번 째에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캐릭터들이
제각각 다른 모양으로 엄마와의 갈등을 겪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 사이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리 다정하기만 하지도
지긋지긋하게 미워하기만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싶으니 어쩐지 위로가 되는 기분이다.
그러다 문득 딸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했다.
아이도 어떤 순간
“우리 엄마는 나한테 왜 그러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