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작년과는 다른 분위기로 변화를 시도할까도 생각했는데
결국은 이탈리안 느낌으로 돌아왔다.
지니가 스테이크를 굽고
조니가 절인연어와 케이크, 이태리산 와인
그리고 내가 아란치니와 라쟈냐를 준비했다.
저녁 한 끼로 먹기에 양이 너무 많을 것 같아
K의 까르보나라는 재료만 준비해놓고 생략했다.
이 집 식구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어디쯤
분명 이탈리안이 한 명 쯤 연관이 되어있을 것 같다.
멕시칸식 스페인식을 얘기하다가 너무 어렵다며 포기
중식이 편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요즘 중식이라고 하면 짜장 탕수육이 아닌
최소 마라샹궈 꿔바로우 정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바람에 과감히
탈락!
만만하니 삼천만의 메뉴, 잡채와 갈비찜을 할까?
혼자 생각하다가
물어보나마나 그건 어디서나 먹을 수 있으니, 라며 자체 검열에서 제외했더니
남는 게 이탈리안 이었던 것이다.
하여 네**에서 찾은 레시피를 외우지도 못하고
꺼지는 화면을 켜고 또 켜며 더듬더듬 생애 첫 라자냐를 완성했다.
생각보다 그럴듯했다.
작년에 한 번 해봤다고 아란치니를 만드는 과정은 좀 더 수월한 것,
처럼 보였을 거라 믿는다.
조니가 어느새 테이블 위 촛불과 조명 등으로 집 안을 크리스마스처럼 꾸몄다.
미사에 참석한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못하면서
어찌됐든 예수님 생일 덕분에
맛있는 음식도 먹고 선물도 나누고 게임도 하고 밀린 얘기도 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물론 케이크 촛불을 켜 놓고는 예수님 생일 축하노래를 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참 예의바른 사람들이다.)
파티가 끝나고 지니는 서둘러 집으로 가고
조니는 남아서 기꺼이 엄마와 보드게임을 한 판 해 주었다.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이런 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날, 커피를 마시면서 못 다한 이야기를 하다가 조니도 갔다.
각자 자기가 있을 자리로 갔는데
언제나 북적거리다 떠난 자리는 그 이전 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
지니는 집에 왔다 갈 때면 항상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인사를 한다.
그래봐야 일 년이면 분기에 한 번이나 올까말까 하면서 뭔 소리냐 싶으면서도
그 말이 싫지 않다.
지난 번 김장 때
대전에서 두 시간 반을 꼬박 운전해서 와야 하는 조니에게
피곤한데 뭐 그 먼데서 김장하러 오냐고 말하면서도
굳이 오지 말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내가 모르는, 아이들이 모르는
서로의 시간들이 점점 많아진다.
아이들에게 우리 집은
이제 더 이상 그들의 시간 속에 있지 않다.
언제든 올 수 있고
언제나 편안하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다만, 고향의 느낌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우리 집은
오십년 전 성문종합영어책을 가보처럼 보관하고 있는,
아빠냄새 나는 베개와 효자손, 커다란 공구함을 애지중지하는 아빠와
삼십여 년 전 결혼사진 속에서
뽕을 한껏 부풀린 드레스를 입고 어색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 어릴 적 그림일기를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엄마가
여전히 옥신각신하고 있는 곳이다.
출입문 비밀번호가 십 년 째 그대로이고
개수대 아래 싱크대 문을 열면
지니보다 나이가 많은 노란색 쌀바가지가 있으며
엄마의 혼수 중 하나였던, 새로 틀어 만든 솜이불이 있다.
그거면 됐다.
아이들에게 우리 집이
떠올리는 것만으로 따뜻하고 행복한 기억이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