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때로 그립고 문득 서러운 이름
“여동생이 둘 있는데 둘 다 예뻐.”
데이트를 시작할 무렵 K가 여동생 얘기를 했다.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는 질문만큼이나 의미 없는 말을
묻지도 않았는데 뜬금없이 그렇게 말하고 덧붙이기를
“근데 나는 막내가 더 예쁜 거 같아.”
라고 했다.
나중에 가족들을 만났을 때 K가 말한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나와 동갑인 큰 동생이 오목조목 귀여운 타입이라면
막내 동생은 선이 곧고 긴 김하늘 느낌이라고 할까?
둘 다 미인이지만 막내가 더 예쁘다는 건
결국 작은 오빠의 지극히 주관적인 취향일 뿐이었다.
외모는 다른 느낌이지만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논리가 분명한 것은 둘이 똑같아 보였다.
그 부분은 어머니를 쏙 빼닮았다.
자기 아내에게 충성하는 성향은
두 아들이 아버님을 닮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보다 어머니 목소리가 더 크고
그리하여 집 안 대소사 결정은 어머니가 했고
거기에 의견을 더하거나 주도하는 자식은 아들들이 아닌 딸들이었다.
어머니는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편이다.
때로는 솔직함을 넘어 너무 직설적인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적어도 말과 다른 마음이 있을까 전전긍긍하지는 않아도 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반면 어려서부터 아들과 딸의 역할을 극명하게 구분했던 엄마는
딸에게 중요한 결정을 맡긴 적은 거의 없었다.
때로 의논을 하는 것 같은 상황일 때도 있지만
오빠의 (올케의 의견을 담은) 생각이 다를 경우에는
두 말도 하지 않고 그 결정에 따르는 것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가족이 모두 물에 빠졌을 때
딸부터 구해놓고 아들 손주, 그리고 며느리는 알아서 나오든가, 할 것 같은 어머니와는 달리
아마도 엄마는
아들며느리 손주, 그 다음에는 나도 죽겠다며
딸에게 나 좀 구해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침에 쌀쌀하던 날씨가 오후로 가면서 전형적인 봄날이 되고 있었다.
날마다 확진자 수가 기록을 깨는 오미크론 상황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제 시댁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어머니의 전화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작년 여름에 새로 이사한 집 잔디 마당을
밭으로 일구기 위해 매일 잔디를 파내는데 잘 안 된다고 하셨다.
감자며 고구마며, 심어서 먹다가 마트에서 사려니 아까워 죽겠다고도 하셨다.
전쟁 통에 남동생 둘을 데리고 피난을 내려왔던 어머니는
40대에 이미 손주를 보셨고
50대에, 그 때 30대 초반이었던 나보다 힘도 세고 의욕도 충만했었다.
손을 놓고 가만히 있는 것을 가장 불편해 하시는 어머니가 보기에
허우대만 멀쩡해서는 힘도 못 쓰는 며느리가 못마땅한 것도 전혀 이상할 일은 아니다.
마당에 있는 수도에 맞는 호스가 없어 화초에 물을 못 준다고도 하고
물이 빠지는 하수도가 없어 여름에 물이 찰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셨다.
그런가하면 어머니보다 나이로는 한 살이 아래인 친정엄마는
이미 고생 총량의 법칙이 오버 된 것처럼
지금은, 아무 의욕도 없고 입맛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신다.
언젠가 무슨 상황 끝에 했던 얘기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난 오래 살고 싶어.”
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가 잊히지 않는다.
어머니의 삶에 대한 자세가 매우 진심인 것처럼 느껴졌다.
“매일 매일이 지루해서 죽겠어.
늙은이들이 빨리 죽어야 하는데 맘대로 죽어지지도 않으니 어째.”
라는 말이 단골 레퍼토리가 된 친정엄마와
요즘 상황을 살고 있는 대부분의 노인들의 말과는 전혀 다른 어머니의 말에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다음에 내가 와서 잔디 들어낼 테니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K의 말에
어머니가 피식 웃으셨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알 것 같아서 나도 따라 웃었다.
어머니의 편애는 남녀가 아닌 혈육에 제한된다.
자신의 안위를 위한 계산에 의한 것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어머니 딸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K가 눈치 채지 않게 또 혼자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