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산타님

가족, 문득 그립고 때로서러운 이름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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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살 까지 산타를 믿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산타에게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없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들으면 그게 무슨 가당치 않은 말이냐며

내가 그래도 없는 살림에 성탄절이면

눈 깜박거리는 인형도 머리맡에 놓아주고

하다못해 종합 선물세트라도 사줬지 그냥 넘어간 적 없다며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자식 다 필요 없네, 아이고 내 팔자야 할지도 모르겠으나

기억력만큼은 결코 쳐지지 않는 내 기억에 없으면 그건 그냥 없었던 거다.


어느 모로 보나 엄마보다는 나은 우리 아이들은

몇 살까지 산타가 있다고 믿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르긴 몰라도 처음부터 세상에 산타가 있다고 믿어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시점부터는 강제로 산타를 소환하기도 했다.

중학생이면 아직 어린이라고, 산타는 왜 안 오냐고.

대학생이라도 결혼하지 않았으면 아직 어린이....

라고는 어린이날에 말했던가?

아무튼, 그 참 누굴 닮았는지

워낙 똘똘해서 산타하부지랑 아빠 글씨가 똑같다는 둥

산타가 레고를 이마트에서 사 왔나보다는 둥 너스레를 떠는가 하면

이미 다용도실에 둔 장난감 박스를 봤을 텐데도

짐짓 모르는 척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가 자고나서

성탄절 아침이면 산타할아버지가 다녀간 흔적을 온 몸으로 기뻐하는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했었다.


이사를 오면서 소파를 어떻게 할지 결정을 못하고 가지고 왔었다.

일단 자리 정해서 놓고 도저히 불편해서 안 되겠으면

그 때 가서 바꾸면 되지 않겠냐는 의견은 K의 것이었다.

목공방에서 강사가 제작한 원목 소파는

모양도 질감도 좋지만 오래 앉아있기에는 불편했다.

6년 전에 구입했던 1인 패브릭 소파는 쿠션이 완전히 꺼지고 팔걸이며 시트에는 때가 탔다.

이사 후 6개월 쯤 지났을 때

가구 갤러리에 갔다가 마음에 드는 소파를 만났다.

직원과 제품 얘기를 하는 중에 잠시 사라졌던 K가 돌아오더니


“딱 내가 원하던 의자를 찾았어!”


직원과 같이 K가 말하는 곳으로 갔다.

등받이가 높아 머리까지 기댈 수 있고

시트가 낮아, 자기는 숏다리라 발이 바닥에 닿는 의자가 없어 불편하다던 K의 사정을 한 방에 해결한 것 같은 릴렉스체어 느낌이었다.

K는 직접 앉아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가격을 물으니 조금 전 얘기하던 3인 소파보다 10만 원 정도가 비싸다.

K는 바로 의자에서 일어섰고

자기는 괜찮다며 자리를 피했다.


3개월 후 의자가 배달 됐다.

거실 한 켠에 놓인 의자를 보며 K의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졌다.


“아니 이걸 샀어?”

“샀지. 주문가구라 시간이 오래 걸렸어.”

“비싼걸 뭐 하러 샀어.”

“당신이 자기가 원하는 걸 말한 게 처음이라서.”


날마다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으로 집에 돌아온 K는

그 의자에 앉아서 뉴스를 보다가 졸다가 잠이 들었다.

의자가 편해 그런가? 잠이 더 잘 오네? 라고도 했고

컨디션이 좀 좋아진 것처럼 보이던 날에는

좋은 의자에 앉아서 그런지 오늘은 몸이 가볍네, 라며

내게 고마운 마음을 넌지시 표현하고는 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뭐 받고 싶어? 좋은 의자 선물 받았으니 나도 선물을 해야지.”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은 몰라도

K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물었던 적은 없었다.

양말이든 장갑이든 소소한 선물을 내가 준비한 적은 있어도

그에게서 받은 적은 없었다.


“글쎄 생각 안 해봤는데

프로젝터나 바꾸든가 색이 다 나갔다며. 나를 위해서 말고 우리를 위해서.“


무심히 말해 놓고 잊고 있었는데

그동안 K는 폭풍검색을 하고 아이들한테 물어가며 새 프로젝터를 주문했던 모양이다.

교육장에 있을 K에게서 톡이 왔다.


“지금 문 앞에 크리스마스 선물이 도착해 있습니다.”


몰랐던 얘기도 아닌데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말에 새삼 가슴이 설렜다.

무뚝뚝한데다 공감능력도 없다며 공격하고 삐치고 체념하기를 몇 번이었는지.

프로젝터보다 내게 산타가 생긴 것이 더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친애하는 산타님,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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