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철이 빨리 지나가든가 해야지

오늘은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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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길만 가는 여자와 없는 길도 만들어 가는 남자가 같이 산다.

혼자 단추와 산책을 할 때에는 예외 없이 천변을 걸었다.

약간씩 거리를 늘이거나 피곤한 날은 조금 줄이는 정도였다.

긴 시위 끝에 급기야 요즘 매일 K와 나란히 걷기 운동을 나가고 있다.


호기심 끝판왕인 K는 운동으로 걷기를 하면서도

같은 길을 다시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여 우리 집을 중심으로

하루는 왼쪽 동네, 다음날에는 오른쪽, 뒤쪽, 앞쪽 등

이사 온 지 일 년이 되도록 몰랐던 길을 구석구석 누비고 있다.

먼지는 좀 많이 먹는 것 같지만 덕분에 내가 사는 동네가 조금 더 친근해진 기분이다.

위쪽 동네로 가다보면 산 밑으로 교육원 도서관 보건소 등 행정시설이 나란히 있고

그 앞으로는 오래 된 동네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골목이 있다.

방앗간 기름집도 있고 철물점 이발소도 있다.

허름한 순댓국 집 간판을 보면서는

저 집은 엄~청 맛있는 숨은 맛 집이거나

건물주 일거라며 키득거렸다.

가서 먹어보지 않으면 영원히 알 수 없는 진실이지만

그 곳에 일부러 찾아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며칠 전이었다.

그 날은 이제 구도시가 된 신도시 방향으로 걸었다.

공원길이 횡단보도로 끓긴 곳은 천변으로 내려가게 이어져있었다.

7킬로미터의 절반 지점쯤에서 돌아서 걷다가

큰 길을 따라 갔다.

어느 카페 앞에서 K가 걸음을 멈췄다.


“이거 사줄까?”


K가 가리키는 곳에는 딸기 라테, 셰이크 등

먹음직스러운 딸기 음료 사진이 붙어있었다.

게다가 딸기가 무려 77%라며 K가 입맛을 다셨다.

설마, 하면서도 이미 5킬로미터를 걸은 터라 갈증도 나는 상황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려고 보니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안에는 불이 켜 있지도 않았다.

토, 일 휴무라는 안내가 보였고 그 날은 토요일이었다.

애초에 기대한 것이 아니니 실망할 것도 없는데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냐고 괜히 한 번 시비를 걸었다.

내가 어떻게 알았겠냐며, 알았으면 내가 사주겠다고 했겠느냐며

한 번 해 본 말에 K는 생각보다 심하게 억울해했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한 마디 얹었다.


“지금은 딸기의 계절이야. 이 계절이 지나면 먹을 수 없다는 말이지. 먹을 수 있을 때 먹어 줘야해.”


결국 얼마 더 걷다가 길 가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딸기 라테를 마시고야 말았다.

그리고 이틀 전에는 구도심 중심가를 지나 시장 길로 해서 돌아오는 길에

눈치 없이 스타벅스가 있었다.

또 다시 장난기가 발동해서


“어머나? 스타벅스가 있네? 지난번에는 할인 못 받아서 억울했다며.”


했다.

그런데 그 곳에는 기존에 있던 딸기 음료 외에 계절음료로 딸기는 없었다.

딸기 먹으러 들어갔는데 난데없이 파인애플 음료를 마셨다.

그 와중에도 기울기 시작한 봄 햇살이 길게 늘어진 카페 안 풍경이

참 화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부터는 일정이 있으니 이런 날도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싶었다.


오늘은 예전에 갔던 길을 살짝 틀어 오래전 동네가 있는 길을 걸었다.

한 번 갔던 길이라서인지 어느 정도 눈에 익은 건물이며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늘 다섯 걸음 쯤 앞서가던 K가 오늘은 나란히 걷는다.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곳에서는 나를 길 안 쪽으로 걷게 한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는 손도 잡아 주었다.

자잘한 행복감으로 코끝이 간질간질하다.

우리 아파트 단지로 들어설 무렵

단지 초입에 있는 전망 좋은 카페에 커피 맛이 좋더라는 말을 K가 생각해냈다.

그냥 집으로 가자는 내 말에

일부러 나오게 되지 않더라며 내 손을 잡고 건물 입구를 찾아 카페로 들어갔다.

커피가 맛있다는 집이지만 오후 시간이라 별 생각 없이 딸기 주스를 주문했다.

딸기 생과일주스를 주문했는데 나온 것은 주스라기보다는 슬러시 같았다.

전망이 좋은 건 맞지만 카페 분위기도 커피 맛도 기대와는 달랐다.

그래도 매일 와이프 운동 관리 해주랴 계절음료까지 먹이랴 마음 써준 K가 고마워

‘착하게 살아야지.’

라며 감동에 푹 젖어 있었다.

피곤했는지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잠깐 졸다 깬 K가 하는 말


“딸기 철이 빨리 지나가든가 해야지, 돈이 너무 많이 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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