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잡초 사이에서 진드기를 본 것 같다고 생각한 이후
단추와 산책 할 때 천변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대신 길게 돌 때는 단지를 크게 돌고 작은 길을 건너
새로 생긴 큰 건물을 한 바퀴 돈다.
짧게 돌 때에는 단지대신 역시나 그 건물을 순찰하듯 돌아서온다.
지난겨울, 무료한 일상에서
새 건물에 생길 새로운 바람을 생각하며 설렜었다.
거대한 건물 두 개가 붙어있는 모양으로 생겼으니
적어도 카페가 두 개는 생기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했었는데
처음에 입주가 시작되고는 날마다 느느니 부동산 사무실 밖에 없었다.
정말 할 일없는 동네 어르신처럼
늘어나는 부동산 간판을 세어보기도 했고
새로 내부 공사를 시작하는 점포에는 뭐가 들어올지 기웃거리기도 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곳에 기대보다 많은 카페가 비슷한 시기에 앞 다투어 오픈을 했다.
K와 동네 카페 투어를 해보기로 했다.
이웃주민인데 최소한 그 정도는 하는 게 도리 아니겠냐며.
제일 먼저 오픈했던 디저트 카페는 유일하게 케이크를 같이 파는데
커피맛은 평범한데 아쉬운 점은 케이크를 사다 파는 거라고 했다.
두 번 째 집은 K가 찜 한 곳으로
벤티사이즈 커피를 천오백 원 균일가로 판매하는 프랜차이즈형 카페였다.
매일 그 주변을 돌다 봐도 사실상 그 집이 가장 북적거렸다.
세 번째는 커피에 대한 주인의 신념과
고객을 향한 소통의 메시지를 전면에 적어 놓기는 했는데
커피 맛은 좋았지만 비교 될 정도는 아니었고 가격은 어정쩡했다.
그리고 마지막 집은 예전에 공사를 할 때부터 눈여겨보던
파스텔톤의 외벽에 출입문을 초록색으로 칠한 집이었다.
다른 곳들 보다 공사가 좀 유별나다 싶어 어떤 업종이 들어오려나 관심이 컸었다.
그런데 카페였고, 그것도 세 번 째 집과 딱 붙어있었는데
문제는 밖에서 환하게 마주 보이는 자리에 앉아있는 주인의 인상이 그리 밝지 않아서
K도 나도 그 집에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카페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싶었는데
최근에 다시 공사를 하는 곳이 두 곳이나 생겼다.
이 번에는 저 곳은 또 무엇이 될까? 라는 궁금증을 가질 겨를도 없이
한 곳은 일찌감치 카페 이름을 스티커처럼 가게 전면 여기저기에 붙여 놓았고
다른 한 곳은 프랜차이즈 카페 바로 옆에 ‘인생 카페라테’ 라는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공사 진척도 빨라서 전날 시작했는데
다음 날에는 벽을 세워 놓았고
2~3일 뒤에는 커피스테이션이, 복층 계단이
그리고 이틀 전에는 세련된 간판까지 달렸다.
한 집이 라테를 전면에 내세운 카페라면
다른 집은 커피콩을 직접 볶는 것으로 승부수를 띄울 모양으로
개인적으로는 두 곳 다 이제까지의 다른 곳들과는 확실히 차별성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비어있는 점포 한 곳에는 작게 과일카페 오픈 예정이라는 안내가 붙어있었다.
한 곳이라도 예쁘고 정겨운 카페가 들어서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기는 했지만
이쯤 되면 거의 카페 사태 수준이다.
사업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는 내가 보기에도
저러다 어느 집인가는 곧 문을 닫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사장님 인상이 어두운 초록색 집이 될지
분위기도 커피맛도 커피값도 어정쩡한 세 번 째 집일지
아니면 케이크 떼다 파는 첫 번 째 집이 될지.
문득 처음 그 집에 갔을 때
우리가 앉은 테이블 바로 앞에 있던 화분의 리본 내용이 생각났다.
돈 세다 힘들면 불러 달라던 장인 장모의 귀여운 바람 때문에 라도
행여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나도 한 동안 카페를 차리고 싶은 마음에 들떠있던 적이 있다.
거실 양쪽 벽면에 가득한 책을 카페에 가져다 놓고
커피에 관심이 생기면서, 여행을 하면서
하나 둘씩 모아 놓은 커피 용품들 한 쪽에 진열해 놓고
딸이 키시를 굽고 나는 핸드드립을 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네이버에서 찾아보고 부동산에 물어보고 하다가
작은 공원 옆에 있는 3층짜리 상가주택을 발견했다.
1층은 약간의 뜰 겸 마당이 있는 카페였고
규모는 그리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은 남향이었으며
무엇보다 마음을 사로잡은 부분은 볕 잘 드는 옥상이 있다는 점이었다.
1층에 카페를 차리고 3층을 살림집으로 하고
2층을 전세로 놓으면 금액도 얼추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앞을 오고 갈 때면 한참씩 멈춰 서서 그 집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선뜻 저지르지는 못하고 마음만 애태웠었다.
그 때 이미 프랜차이즈 카페 경험이 있던 올케가
카페 경영이 보는 것처럼 쉽지 않더라는 얘기를 하다가
그래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결국은 하게 되더라고 했다.
그럼에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마음앓이를 하던 나를 멈추게 한 건
엉뚱하게도 친구 따라 갔던 사주 철학원이었다.
내가 사업을 하면 어떨까 라는 물음에
그는 일말의 여지도 없이 ‘안.된.다.’ 고 했다.
“차리는 것 까지는 잘해, 아이디어도 좋고 감각도 있어.”
“그런데 왜...”
“그런데, 딱 거기까지야. 카페고 뭐고 차려만 놓아서 되는 게 아니잖아.”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아 기분이 나쁘기도 한 한 편
사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거 참 신기했다.
생년월일시만 보고 그걸 안다고?
하여 나는 그 날 이후로 카페 얘기는 더 이상 꺼내지 않았다.
집 주변에 우후죽순 들어서는 카페를 보면서
새삼 그 분 참 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은 남이 해주는 게 제일 맛있지만
커피는 내가 내린 것이 가장 맛있어서
매일 아침 핸드드립을 하는 것은 하나도 귀찮아하지 않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웃 건물에 커피집이 하나도 없든 일곱 개나 생기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며
그 집 중 장사가 안 돼 문을 닫는 집이 있든 말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다만 이왕이면 그 곳 모두가 각각의 개성이 있는 카페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리하여 오래오래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 지역 카페맛집이 되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