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칼슘제를 처방 받으러 내과에 가려고 나섰다.
옆 단지 상가에 있는 건물인데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동네인데다 거의 6개월만이라서인지
이 건물인지 저 건물인지 헷갈렸다.
입구를 찾아 들어가 승강기를 탔는데
이번에는 몇 층이었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아서 한참 두리번거리다
빼곡한 층별 안내도에서 자잘한 글자로 써 있는 상호를 찾아 층 버튼을 눌렀다.
승강기에서 내리자 이번에는 또 생소한 문구가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한다.
- 00내과 와이파이 문제가 있어서 진료가 지연될 수 있습니다.
와이파이와 진료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하면서
의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조명에는 문제가 없는데도
어쩐지 실내가 어둑한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전에는 대기자 목록을 표시하던 커다란 모니터가 캄캄하다.
직원들도 인폼 테이블 안에서 앉지도 못하고 서성이고 있었고
한 사람은 노트북을 들고 연신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대기자가 두 명 밖에 없었는데도 내 이름이 불린 것은 거의 30분이 지난 후였다.
얼핏 듣고 있자니 카드결제도 되지 않아서 한 노인은 현금으로 수납을 했다.
내 순서도 아니었지만 지갑에 현금이 없는 것이 생각나서 조마조마했다.
설마 하면서 내가 수납할 차례에 카드를 꺼내기도 전에
“카드 결제는 안 되시구요 요기로 이체 해주시면 돼요.”
직원이 가리키는 볼펜 끝을 따라가니 원장 명의의 은행계좌번호가 투명테이프로 붙어있다.
누가 봐도 오늘 이 상황에 갑자기 붙인 것은 아닌 듯
글자는 번져 있었고 테이프의 네 귀퉁이는 조금씩 까맣게 말려 있었다.
그나마 느리기는 해도 진료는 진행되고 있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진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올 때 통신사기사와 스쳐지나갔는데
이후에 오는 환자들이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30년 가까이 다니고 있는 치과는 G시에 있다.
G시 전체가 재건축으로 개벽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치과가 있는 건물은 도시가 들어설 때 지어진 G시의 시조새급으로 유지하고 있다.
곧 일흔을 바라보는 의사 역시 건물과 함께 그 곳에서 나이 들어간 셈이다.
상냥하지도 친절하지도 않은데 G시를 떠난 후에도 치과를 바꾸지 못한 이유는
불필요한 진료를 권하지 않고 치료가 끝난 부위는 뒤탈이 없이 꼼꼼하게 진료하기 때문이다.
그 곳은 아직도 종이 차트를 사용하고 있다.
진료의자에 누웠을 때 눈앞으로 왔다 갔다 하는 내 30년 된 진료기록지는
금방이라도 부스러져 내릴 것처럼 낡았고 누렇게 변색까지 됐다.
대기실에 앉아 있다 보면
그 곳에 오는 환자들도 대부분 고령으로 보인다.
내 기억으로 한 번인가 내부 수리를 위해 얼마간 휴진을 했던 것 말고는
시설물 모두 변한 것이 거의 없다.
그동안 직원들은 수차례 바뀌었겠지만
의사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년은 없을지 모르지만 그가 언제 일을 그만 둔다고 해도
그리 갑작스럽게 느껴질 것 같지는 않다.
만약 그 곳에서 인터넷 불통으로 결제에 문제가 생겼다면
거기는 그냥 그러려니 할 것 같다.
우리 동네 내과에서의 경험이 당황스러웠던 이유는
새 시대 새 건물에 새로운 첨단 시스템을 들였을 것이고
그 것에 오류가 생기자 이미 길들여진 사람들이
할 일을 잃고 웅성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AI도 좋고 첨단 시스템도 좋은데
그러면 뭐하나, 한 번 오류가 생기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걸.
주 모시기 기자처럼 나도 이런 거 안 맞아 안 맞아.
지난 봄 산골로 들어간 언니 따라 나도 산으로 들어가야 하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