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몰라, 난 아무것도 몰라.”
얘기를 하다가 뭔가 불리한 상황이 될 때마다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다.
그 모습은 흡사,
오래 전 외할머니가 화투를 치다가 불리해졌다 싶을 때 화투판을 뒤 섞으며
‘몰라 몰라 다시 해!’ 라며 어깃장을 놓던 장면과도 비슷하고
범죄 드라마에서 취조를 받는 범인이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묵비권을 행사할 때를 떠올리게도 한다.
여든여섯 살 노인 치고 엄마는 총기가 뛰어난 편이다.
고관절을 다치기 전까지는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편도 세 시간 거리를 오고 갈 수 있었고
자식들한테 태워가라 마라 명령하지 않는 것을 최고의 자존심으로 생각했으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엄마가 못 갈 곳은 없었다.
수술 후 재활 의지를 불태우며 눈에 띄게 회복을 했는데
이 번에는 코로나로 본의 아닌 집안 격리 생활이 시작됐다.
답답함과 지루함 무료함에 좌절과 분노와 체념을 되풀이한 후
이제 노인정에 갈 수는 있지만 식사는 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사이 세상을 떠난 분도 있고 이사를 간 사람,
건강이 악화 돼 바깥출입이 어려워진 사람 등
노인정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래서 가도 별 재미가 없어서 안 간다고 했다.
그런 중에도 날씨가 나쁘지 않은 한 매일 공원을 한 바퀴 도는 운동을 하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개인 의원에도 혼자서 가고
은행에도 직접 가서 청구서를 쓰고 도장을 찍어서 현금 인출도 한다.
사실상 나는 딸이지만 엄마의 재정 상태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30년 근속 후 정년퇴직을 했는데도
자식들에게 물려주기는커녕 둘이 노후까지 풀칠하며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엄마는 혼자 자식 셋을 키우고도
본인의 노후 준비를 그렇듯 탄탄하게 다져 놓을 수 있었는지를 물은 적이 있다.
그게 한 번도 아니고 두세 번은 물었던 것 같은데
엄마에게서 이렇다 할 대답을 들은 기억은 없다.
생각해보면 엄마가 내게 온전히 마음을 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그건 나 뿐 아니라 다른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같은 방식은 아니다.
하소연을 하거나 분노를 표출하거나 관심을 호소하는 방식 모두
큰아들과 작은아들 그리고 딸을 대할 때가 다르다.
지금은 그 것이 엄마 나름대로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하여, 엄마의 ‘난 아무것도 몰라’ 역시
엄마가 생각하는 적절한 타이밍에 한 발 빼기 위한 고도의 전략일 뿐이다.
내가 모르는 건 노후 생활자금을 마련하는 방법뿐이 아니다.
사람들과 잘 지내는 방법도 모르고
마음을 표현하는 법도 잘 모른다.
집을 예쁘게 꾸밀 줄도 모르고
음식에 따라 담는 예쁜 그릇을 어디서 사는 지도 모른다.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옷을 입을 줄도 모르고
입은 옷에 어떤 가방이나 신발을 신어야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지난 주말에 고등학교 친구 둘이 집에 왔다.
4년 쯤 전에도 K가 여행을 간 사이 친구들을 집으로 부른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그냥 무심히 지났었는데
이번에는 이 친구들, 관심사며 행동이 그 때와 사뭇 달랐다.
이사한 지 일 년 남짓한 기간 동안
가족 이외에 손님을 초대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이런 손님 보다보다 처음 본다.
수납형 침대의 서랍을 열어볼 때만 해도 침대의 기능을 보려는가보다 했다.
그러더니 세탁실에서 이어진 팬트리 공간부터
주방싱크대와 상부장까지 일일이 열어보는 게 아닌가.
“어머어머 접시를 이렇게 꽂아 놨네? 키친타올을 이렇게 걸어 놓으니 좋네.”
“어머나~ 이런 건 어디서 사? 다이소에 있어? 정리가 싹 되네.”
“그릇도 이쁜 거 많다. 우와~ 이건 뭐야?”
“와플팬.”
“집에서 와플도 구워먹어? 세상에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네?”
얘들 대체 어느 나라에 사는 거냐 싶었다.
언젠가 주방에서 그릇을 싸던 이삿짐센터 여자직원이
잔짐이 많아 시간이 더 걸린다며,
말끝에, 비싼 건 없는데 그릇이 많다고 투덜거렸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잔짐이 많아 고생시키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시간이 가면서 그 말이 엄청 자존심 상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후로 비싼 그릇을 사지는 않았지만
과감하게 정리해서 버린 그릇은 많다.
그런데 예쁜 그릇이 많다니.
살림 좀 한다는 사람들이 들으면 대놓고 웃지도 못하고 돌아서서 어깨를 들썩 거릴 일이다.
점심을 배달 주문했다.
음식이 오자 친구 M이 지갑을 꺼내 신용카드를 내민다.
“왜?”
“점심 내가 사려고.”
“결제 했는데?”
“뭐? 언제? 어떻게?”
친구들이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각자 초대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보냈다.
인사는 하루 지난 어제 다시
거듭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고마우면 잘하라고, 맛난 것도 사 주라고 했다.
나중에 맛있는 거 꼭 사주겠다고 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가 모른다고 하는 것은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고
친구들이 우리 집에서 몰랐던 새로운 것을 보며 감탄 한 것은
집으로 불러 이런 시간을 만들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에 대한 표현이고
내가 모르는 것들은
그 것들을 알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후로도 그 것들을 알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노후 생활, 있는 만큼만 쓰면 되고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 그냥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만 잘 지키면 되고
집, 그릇, 옷, 지금처럼 사는 데 불편한 건 없다.
지금 모르는 것들보다 앞으로 모르고 살게 될 일이 더 많아지겠지만 괜찮다.
내가 뭘 모르는지 모르면 그건 모르는 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