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신혼집은 시어머니가 결정했었다.
시댁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방 두 칸짜리 전셋집이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니
주방 욕실 옷장 심지어 속옷 서랍까지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있었다.
역시나 시어머니 작품이었다.
성정이 깔끔하신 어머니는
집에 들르실 때마다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며 치울 것을 찾아내셨다.
이사를 해서 거리가 멀어진 이후에도
집에 들어서기 무섭게 어질러진 물건을 치우고
냉장고도 열어보고 어떤 날은 세탁기도 열어 보셨다.
그러더니 남자 속옷과 여자 속옷을 같이 세탁하면 안 된다고도 하셨다.
하여 시어머니가 오신다고 하면
어머니한테 지적받을지도 모를 곳을 신경써가며 밤늦게까지 청소를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곳을 찾아내서는
“이걸 이걸 닦고 살아야지 봐라. 이거 다 먼지 아니냐. 애들도 있는데.”
라고 하셨고 급기야 어떤 날은 기다란 꼬챙이에 걸레를 감아
냉장고 밑에 넣어 달려 나온 시커먼 먼지를 보여주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어머니는 내게 청소의 신으로 보였다.
시어머니가 집에 오시는 날은 가슴이 콩닥거렸다.
짐을 다 들어내고 청소를 하지 않는 한, 아니 다 들어내고 한다고 해도
어머니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을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혼나는 게 무서워 긴장되고 창피하기는 했지만
어머니 손길이 닿은 집은 한동안 말끔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두 살 터울로 작은 아이가 태어 난 이후로는 그나마 집을 치우고 살기가 어려워졌다.
순둥한 큰아이와는 달리 까칠했던 아가 K2는 엄마를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두 아이 육아를 하느라
혹은 그것도 일종의 산후우울증세의 하나라서, 등
그 때의 내 상태를 변명할 명분은 많지만
어쨌든 둘째가 태어나고 한참 동안 집은 늘 어질러진 상태였다.
혹여 집에 누가 오는 상황이 있을 때면
음식준비보다 청소 할 일이 더 까마득했었다.
아이들이 하나 둘 집을 떠난 후
둘만 남은 집은 조금씩 그 모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이사를 했던 중 작년에 이 곳으로 올 때
가장 많은 물건을 버리거나 중고로 처분했다.
설레지 않는 물건이라든가
3년 동안 한 번도 꺼내보지 않은 물건은 버리라는 정리의 원칙을 생각하며
실제로 옷이며 책이며
추억이 있지만 절대 사용할 일은 없을 것 같은 물건들까지
대부분 과감한 선택을 했었다.
전에 살던 집은 집 안에 창고가 세 개나 있고
심지어 지하에 세대마다 방 하나 크기 만 한 창고가 또 있었으니
이사 올 집의 평수가 줄어든 이유보다 수납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더 심각했다.
짐을 줄인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여러모로 편리했다.
수납공간이 오로지 주방 다용도실 한 곳으로 집중 되다 보니
찾아야 할 물건이 있을 때 그리 오래 헤매지 않아도 된다.
집을 줄여 오느라 자연스레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게 된 셈이다.
K가 친구들과 3년 만에 1박 여행을 떠난 날
나도 3년 만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셋이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삼각형 꼭지점 지역에 살고 있다 보니
코로나 이전에는
식사와 커피와 수다를 한 번에 해결 할 수 있는 중간지점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음식 가져오랴 먹으랴 얘기하랴 정신없이 보내다보면
어느 새 브레이크 타임이 되고 집에 갈 길이 멀어 서둘러 헤어지기 일쑤였다.
하여 K가 집을 비운 날 1박으로 회포를 풀어볼 생각이었다.
일단 청소부터 시작했다.
이사한 지 이제 1년 조금 넘었고
예전처럼 집이 어질러진 상태도 아니었는데
어쩐 일인지 청소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는 느낌이 드는 순간
걸레를 뾰족하게 접어
손이 닿지 않는 김치 냉장고 뒤쪽 먼지를 닦으려고 낑낑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낯설지 않은 장면이었다.
‘세상에! 내가 이제 시어머니 레벨이 된 건가?’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 그 때 시어머니 나이 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어질러 놓고 사는 며느리도 없고
더구나 며느리 집에 가는 일도 없으니 잔소리할 일도 없다.
요즘 어머니 집에 가면 군데군데 먼지도 보이고
싱크대에 물자국도 있으며 다용도실 구석구석 쌓아놓은 물건도 많다.
양치 후 세면기에 물을 뿌리지 않았다고
변기 주변에 소변이 튀었다며 아버님에게 잔소리도 하신다.
문득, 나와 K의 30년 후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왜냐하면 이제 나도 시어머니 레벨이 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