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이야기

나의 옛날 이야기

by 이연숙

물 내려가는 소리가 요란한 게 싫어 수압을 약하게 해 놓아서인지

큰 방 화장실이 가끔 막힌다.

혼자 사용하는 화장실이라 특별히 막힐 원인이 없으니

랩을 씌우고 물을 몇 번 다시 내리면 큰 문제 없이 해결이 되고는 한다.

그러다 문득,

화장실이 하나 뿐일 때는 어떻게 살았나 싶다가

오래 전 블로그에 썼던 화장실 이야기가 생각이 나 옮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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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들어갈 무렵까지 우리집은 한옥이었다.

연탄아궁이 옆에 기다란 독을 묻어놓고 물을 채워 놓았다가

아침이면 그 물로 세수를 했었다.

두꺼비집을 잘 덮어야 방으로 불이 잘 들었고

냄비나 솥을 얹으려면 별모양 틀을 올려놓았었다.

밤이면 아궁마개 조절을 잘 해야 아침까지 방이 따뜻할 수 있었다.

부뚜막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오빠랑 국자에 뽑기를 해 먹다가 덴 자국이 아직도 손등에 남아있다.

마당 한 가운데에는 우물이 있었다.

식수로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여름에 줄을 이어 수박을 담궈 놓으면

신기하게도 수돗물보다 훨씬 시원했다.

주로 빨래나 마당청소를 하는데 썼던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건

한집 여섯세대가 살면서도 화장실은 재래식 덜렁 하나였다는거다.

나무 판자로 발판이 되어있던 화장실을 적어도 하루 한번쯤만 쓴다고 해도

그 식구가 얼만데 그래도 별 문제가 없이 해결이 된거 보면

그 시기에는 사람들이 밥을 조금 먹거나 용변을 보는 시간이 제각각 달랐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어쨌든 그 화장실을 나도 줄곧 사용했을텐데

지금 거의 사라졌지만 아주 간혹 재래식 화장실을 만났을 때의 당혹스러움은 또 무슨 사치인가 모르겠다.

바닥이 훤히 보인다는 것도 아찔한데

흔들거리는 발판위에서는 꼼짝도 못하겠고

더구나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몸에 배인 냄새는 끈질기기까지하다.


그런 재래식 화장실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던 하루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생리적인 욕구부터 해결하고서야 일을 시작하는데

한번 들어가면 30분은 기본으로 넘기는 큰남자가 먼저 자리를 잡았나보다.

다른 일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기다리기엔 너무 멀다.

짜증반 초조함 반으로 서성거리는데

이 남자, 나올 생각은 안하고 화장실에서 살림을 차린 모양이다.

한참 뒤 문을 열더니..

"막혔나봐." 한다.

으윽~ 내가 못산다.

이마에 땀이 배이도록 펌프질을 해대고

수퍼 문열리기 기다렸다가 트레펑을 사다 붓기도 했지만

밸브를 누름과 동시에 변기 가득 차오르는 물은 좀처럼 줄어들 생각을 안한다.

일요일 오전시간을 내내 펌프질을 하며 보냈나보다.

아침부터 오후가 되도록 보지 못한 일이 한계에 이르기 시작하자

결국은 업체에 전화를 했고

밥먹고 10분뒤 오겠다던 기사가 오고는

정확히 3분 만에 꿈쩍도 안하던 물이 시원하게 내려간다.

비누가 막혔더란다.

허탈했다.

비누조각 하나 떨어졌다고 온 집안이 비상이 걸려

오전 하루를 보낸 생각을 하니 재래식 화장실이 참 기특하단 생각까지 든다.

묵호에 갔을 때

나는 이곳 저곳 널부러진 연탄재가 반가웠는데

비탈진 골목에 이어진 마을을 내려오는 동안

줄곧 화장실만 찍었다는 모씨 엉뚱한 발상에

불쑥 변기와 씨름하던 그 일요일이 생각났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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