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S와 나는 30 년 지기 친구다.
작은 아이 여섯 살 때 유치원 친구 학부모로 처음 알았으니 정확하게 말하면 27년 알고 지낸 셈이다.
처음부터 우리 우정 영원하자고 결의를 했었던 건 아닌데
살던 곳을 떠나 각자 이 곳 저 곳 이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다가
지금은 차로 십오 분 거리에 살고 있다.
정작 아이들은 같은 고등학교 같은 반이기까지 했으나 지금은 연락하는 사이도 아닌데도 그렇다.
인근 지리를 둘 다 잘 아는, 평촌에 있는 백화점에서 만났다.
그 간 중간지점이라며 인사동이나 광화문 명동 등에서 만났을 때보다 한결 편했다.
식당가에서 냉면으로 점심을 먹고 프랜차이즈 커피를 마시며 묵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딸 둘이 근처에 살고 있어 양쪽으로 손주들 봐주러 다니는 것이 주된 일과라고 했다.
K와 비슷한 시기에 정년퇴직을 한 그녀의 남편은 요즘 주민센터에 영어회화를 배우러 다닌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주제로 수업을 했는데 대부분의 여성 수강생들이 ‘남편’이라고 말했는데 비해 본인은 ‘친구’라고 대답했다고 하더란다.
이 부분에서, 일단은 ‘친구’라고 말한 부분에서 (맙소사!) 했고
설령 그랬다 치더라도 그 얘기를 곧이곧대로 아내에게 전하는 건 또 무슨 심술인가 싶었다.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의도한 바가 있는 건지.
그리 급할 것도 없이 백화점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정작 쇼핑은 옆 건물에 있는 아웃렛에서 해야 한다고 S가 말했다.
백화점이 정결하고 세련된 느낌이었다면 아웃렛은 바로 옆 건물임에도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세일 품목도 많았고 행사 매대 사이도 공간이 비좁았으며 매장간 거리도 짧은 것 같았다.
그 곳에는 물건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2층에서 5층까지 샅샅이 돌고 나오는 길에 S의 손에는 쇼핑백이 그득했다.
두세 걸음 앞서가던 S가 나를 한 번 돌아보고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나 보기가 민망했는지 한 마디 한다.
“우울할 때면 난 쇼핑을 해. 아내보다 친구가 더 소중하다는 남자하고 산다 내가.”
“...그러고 보면 우리 남편은 꽤나 영리한 거야, 하면 안 되는 소리를 잘 피해가잖아. 와이프 쇼핑할 명분을 안 주네.”
피곤할 텐데 버스를 타고가라는 S의 권유를 마다하고
평소처럼 공원길로 접어들었다.
벚꽃이 절정이었다.
우리 집 K가 영리한 줄 알았는데, 아니 그런 거라고 믿고 싶었는데
우리 집에도 웃음기가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K가 스스로 ‘사고’라고 표현하는 그 것을 친 것이다.
기분 좋은 일요일 아침(이번 주 벚꽃이 절정이라며 꽃구경을 가기로 한 날)에 K가 무려 세 번이나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사실상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으므로 그리 충격적일 것도 없지만
자칭 ‘사고’라고 부를 만큼, 그런 일은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도지는 지긋지긋한 치통과도 같았다.
말도 하기 싫고 쳐다보기도 싫어 좁은 집안에서 될수록 경로를 피해 다니느라 몸을 구겼다.
어제는 수업을 마치고 전부터 사려고 벼르던 신발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
문득 S의 말이 생각나서 이참에 나도 쇼핑이나 거하게 할까 싶어 목적도 없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층 마다 내렸다.
친구와 왔을 때는 몰랐는데 어제는 아직 아웃렛에 가지도 않았는데 무지하게 피곤했다.
역시나 쇼핑은 내 체질이 아닌가보다며 집으로 가는 공원길을 걷고 있을 때
‘주문하신 도서가 준비되어 배송예정’이라는 알림 문자가 왔다.
문제의 일요일 밤, 침대에 누워 주문버튼을 눌렀던 책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우울할 때 혹은 K에게 화가 날 때 하는 습관이 있었다.
다음에 S를 만나면 말해줘야겠다.
“우울할 때면 나는 책을 주문해.”
언뜻 보면 꽤나 유익한 습관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주문 한 책 중 반은 그대로 책꽂이에 꽂혀 더 이상 공간이 없다는 게 함정이다.
K가 더 이상 사고(?)를 치지 않게 되는 날
우리 집 책장도 가벼워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