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시령 고개를 넘어가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써니가 말했어.”
<와! 울산바지다!>
일명 울산바지 사건은 30년이 다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동생이 올케를 놀릴 때 사골처럼 우려먹는 단골 레퍼토리다.
그 때 동생과 올케 모두 아름다운 삼십대 였으니 소소한 말실수는 그냥 귀엽기만 했다.
말과 글로 밥 벌어먹고 사는 동생은 적어도 말로 실수를 하는 일은 없을지 모르나
동생이 발설하는 올케의 어휘 실수는 이후로도 틈틈이 술자리나 식사자리에서 오르내렸다.
사실, 내 동생이지만 때로는 한 대 쥐어 박아주고 싶다.
아내의 말실수를 덮어주지는 못할망정 일일이 콕콕 짚어내는 남편이 얄미울 만도 하겠건만 그럴 때마다 그냥 같이 웃고 넘어가는 올케가 대인배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 때 같이 웃지 말았어야 했을까?
요즘 내 증세이 심상치가 않다.
“거기 그거 옆에 그거 가져오면 되지? 자, 그거.”
송년 가족모임 준비 상황이었다.
각자 음식을 준비해 오랬더니 재료를 가지고 와 좁은 주방에서 북적거리는 상황이
마치 요리대첩이라도 하는 것 같다.
내 담당은 아란치니였는데 튀김 젓가락을 건네 달라고 하려던 참이었다.
주어도 목적어도 없었는데 내가 말하는 것을 찰떡같이 가져온 K2가 그 참 신통하다 싶었다.
요즘 이상하게도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주변 말이나 글자, 상황 사람까지도 기억나는데
딱 중요한 단어 하나가 죽어도 생각이 나지 않아 머리를 쿵쿵 쥐어박는 일이 잦아졌다.
그 단어는 때로 장소일 때도 있고 사람 이름이거나 영화 제목 혹은 그냥 물건의 명칭일 때도 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모친의 오류를 읽으면서는 그나마 안심이 됐다.
모친은 남편의 안경 쓴 모습을 보고 “당신 안경 쓰니까 인테리어 같다.” 고 했고
트럼프를 트렁크로,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아만다 사이프러스로 말하고는
틀린 걸 지적하면 깔깔 웃어넘기고 금세 잠이 들기도 한다.
안심이 됐던 이유는, 그래도 난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나보다.
영화를 보는 중이었다.
일본인 경호대장 역을 하는 배우를 분명 아는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박....
뭐 같은데.
해, 맞다 해....일?
아닌데
박 뭐지?
박해.....영?
맞다 박해영.
이상한데? 아닌가?
박, 박, 박, 박, 뭐지?
결국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배우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신기한 건, 박해, 까지는 떠올랐다는 점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그 이름이 올라간다.
박.해.수.
그 참 이상하다.
왜 꼭 한 글자가 기억나지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