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
“당신이 객주리 조림이라고 하니까 현지 사람인 줄 알아서 더 잘해주겠다.”
“...??”
“서울 사람들은 쥐치조림이 객주리 조림인 줄 모르는 거 아냐?”
“저~~기 다 써있잖아.”
그러고 보니 메뉴판 말고도 사방 벽 마다 객주리 조림이라고 쓴 길쭉한 종이가 붙어있었다.
서귀포에 K의 여자 친구 S가 살고 있다.
어릴 적 동네 친구인데 여성이니 여자 친구라고 부른다.
요즘은 여자 사람 친구라고 하던가.
여하튼 그는 성인이 되고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해서 살다가 돌연 제주로 이사를 했다.
남편이 제주 출신이라 부모님이 하던 귤농장을 맡아야 해서 그랬다는 말은 최근에 들었다.
제주 살이 둘 째 날 S부부를 만났다.
S의 남편의 단골 식당인데 갈치조림을 잘 한다고 했다.
갈치조림 맛집이지만 그건 어디 가서나 먹을 수 있으니 객주리 조림을 주문했다는 남편의 말에 S가 부연설명을 하던 참이었다.
객주리가 쥐치인줄 몰랐으니 S의 말이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그 날은 일요일이었는데 S는 그 날도 일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유치원교사를 정년퇴직한 후로도 아이 돌봄 일을 줄곧 하고 있다는데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놀면 또 뭐하나 싶어 주말에 들어온 일도 덥석 맡았다고 했다.
보통은 하던 일도 줄이면서 놀멍쉬멍 할 판에 오히려 일을 늘렸으니 피곤할 만도 할 텐데
아이들 얘기를 하는 그녀의 눈에서는 오히려 빛이 났다.
“여기서는 20년을 살아도 외지 사람은 그냥 외지 사람이더라고.”
“남편과 가족이 모두 현지인 인 데도요?”
“그러게 말이에요.”
10년 쯤 전 제주에 여행을 왔을 때 그가 말했었다.
그래서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같은 처지인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했고
될수록 집에 있지 않으려고 일도 하고 취미로 바다수영도 한다고 했다.
서울에 오기 위해 서울에 주1회 성경강좌를 등록했다고도 했다.
그가 외로운가보다 생각했었다.
4년 전에 왔을 때는 그런 말도 했다.
제주에 사니 매일 바다도 보고 좋겠다고 내가 말하자
S가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바다도 보고 좋지. 그런데 그대들처럼 한 달 쯤 여행으로가 좋지. 사는 건...”
라고 말을 줄였다.
어쩐지 S가 제주에 사는 서울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 째 제주 살이는 이 전 두 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단 무조건 따뜻한 지역에 숙소를 정했다.
그 곳이 서귀포였다.
그 중에서도 겨울에 가장 따뜻하다는 효돈에 있는 취사 가능한 원룸을 얻었다.
감귤의 발상지라고 하더니 정말로 동네가 온통 감귤천지였다.
제주에서는 귤 사먹는 거 아니라더니
아이들에게 감귤 한 상자씩 보내면서 숙소 앞 가게에서 덤으로 받은 것으로 시작해서
집에 올 때까지 귤은 원 없이 먹고도 남은 것을 가져와서 아직도 먹고 있다.
K가 단추 산책을 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마주치면 귤 좀 갖다 먹으라고 부른다고도 했다.
아래층 우동집 앞 담배 쓰레기통에 단추 풉백을 버렸다가 사장하고 실랑이도 해봤고
동네 주변 인구 밀도에 비해 어린이집 규모가 꽤 크다는 얘기는 저녁 산책을 하면서 했다.
오일장에서 이만오천 원짜리 갈치를 사다가 조림을 해서 먹으면서
“이 정도면 식당에서 사 먹는 게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닌 거야 그치?”
라고 K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실제로 그 동네 식당 외벽에는 ‘갈치조림 15,000원 2인이상 주문가능’ 이라고 간판에 있었는데 결국 2인분에 3만원이라는 말이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장 서는 날마다 제주 토종순대로 끓이는 장터 국밥집에도 갔다.
일주일 일정으로 왔을 때는 그냥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던
생선이며 채소 심지어 금방 짜낸 들기름도 한 병 샀었다.
그러느라 차를 가지고 갔으면서도 서귀포 인근만 맴돌았을 뿐
정작 변변하게 여행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어쩐지 이번 여행은 제법 풍부해진 기분이다.
혹시 내가 수도권에 사는 제주 사람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제주에 가서 살게 될지는, 아니 정말 살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마음 안에 문득 떠오르는 장소가 있다는 건 기분 좋다.
차를 달려 금방 닿을 수 없는 곳이라서 더 애틋하다.
S도 그러면 좋겠다.
그리워서 병이 되지도 말고
그리운 걸 잊으려고 너무 바쁘게 살지도 말고
그냥, 그리울 때 그리워하고 그러다 정말 보고 싶으면 그 때 가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