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냥 반미가 반가웠을 뿐인데

제주여행 4일차

by 이연숙


이번에는 서귀포에 숙소를 정했다.

캐리어 들고 환승하기 귀찮아 공항 리무진을 탔다.

갈아타지 않는 건 좋은데 도착까지 한 시간 오십 분이 걸렸다.

멀기는 멀다.

이래서 애월 조천 쪽을 선호 하는구나 했다.

이미 어두워진 서귀포항 정류장에 내렸을 때는 일곱 시가 넘었다.

캐리어가 거추장스러웠지만 숙소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기 귀찮아서

간단히 김밥이라도 사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향기로운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베트남 향기’

어쩐지 주변에서 고수향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식당은 숙소 길 건너편에 있었다.

이게 웬떡인가 싶었다.

식당 앞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벌써부터 안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렸다.

꽤나 소문난 맛집인가 보다 하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 사방 벽면에 붙은 메뉴판에는 한글로 베트남 메뉴이름이 나열돼 있었다.

뭔 말인지 도통 알 수 없었지만 그 중에 반미는 사진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계산대에는 사람이 없다.

테이블마다 그득 찬 사람들은 동행인 듯 매우 흥겨운 분위기에 취해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말이 술에 취한 한국어인지 베트남어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더욱 당황스러웠던 건 그 중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는 것.

주방 안 쪽과 홀에 있는 사람들을 소심하게 눈길로 좇고 있는데

계산대 가까운 쪽에 앉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주인인가 싶었지만 손님을 응대하는 태도치고는 귀찮은 표정을 너무 드러내고 있었다.

괜히 주눅이 들어 조심조심 반미 포장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쥔장 : 반미? 없어.

나 : 저기(메뉴 사진을 가리키며) 있는데요.

쥔장 : (홀 안 사람들을 가리키며) 사람 많아.

나 : 아! 기다리면 돼요?

쥔장 : 아냐. 못 해. 없어. (그러면서 나가라는 손짓)

나 : (아니 뭐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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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에는 점심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이미 마음은 상했지만 쌀국수는 맛있었다.

중국 당면처럼 넓고 얇은 면을 사용했고 육수는 베트남에서 먹었던 그 맛과 비슷했다.

무엇보다 숙주와 고수를 듬뿍 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곁들여 나오는 고명중 하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색 소스였는데

북어 보푸라기처럼 푸석한 것이 먹음직스러워보이지는 않았지만

내가 또 어느덧 실험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되었으므로 과감하게 한 쪽에 넣어 먹어 보았다.

색이 붉으니 혹여 정신 못 차리게 맵지 않을까 했던 우려와 달리

맛은 순했고 동남아 느낌이 진해졌다.

다른 하나는 얇게 저민 마늘을 새콤하게 담근 마늘장아찌 같았는데

이것이 진정 베트남식인지 아니면 한국식으로 개발한 것인지는 주방장만 알 일이다.

계산을 하면서 반미를 포장할 수 있냐고 물었다.

어제 있던 남자 주인은 없고 여성 직원과 주방장이 있었다.

한국말을 띄엄띄엄 하는 직원이 주방에 대고 총알처럼 뿡따따꾸딱 뭐라고 하자

화가 난 건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주방장이 또 뭐라뭐라 했다.


직원 : 지금 안 돼.

나 : 그럼 나중에 와요?

직원 : (다시 주방쪽으로 와따꾹따꾹 하더니) 오늘 안 돼. 재료 없어.

나 : (그쯤에서 포기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럼 언제 된대요?

직원 : (아예 돌아서서 주방에 대고 뿌따딱뿌따, 주방장은 당최 귀찮다는 표정으로 눈길을 피한 채 뭐라뭐라 하더니.) 다음주.

나 : (반미가 뭐라고 한껏 자세를 낮춰) 다음 주 수요일에 집에 가는데 그 안에는 될까요?

직원, 나 : (애초에 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던 듯 체념하며 민망한 웃음을 웃었다. )


그리고 어제 저녁 무렵에 그 집에 또 갔다.

반미는 포기하고 반쌔우를 포장해 올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첫 날 봤던 남자 사장이 있었다.


나 : 반쌔우 포장 될까요?

쥔장 : 이거 쪼끔이야.

나 : 혼자 맥주랑 먹을 거라 괜찮아요.

쥔장 : (메뉴 책을 펼쳐 보이며) 이거 술하고 먹기 좋아.

나 : 아니 그거 말고 반쌔우요.

쥔장 : (주방에 대고 뭐라뭐라 한참 얘기하더니) 이거 안 돼.

나 : @#$%^&*(뭐래냐? 짜증과 창피함을 꾹꾹 누르며 월남쌈을 가리키며) 그럼 이건 되나요?

쥔장 : (다시 주방 여자에게 꾸따마따꾸차 뭐라칸다. 화가 난 건지 일하기가 싫은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여자의 표정은 일관되게 심통이 나 있다.) 응 그거 돼.


입은 댓 발이나 나오고 표정은 금방 터질 폭탄처럼 굳은 여자가 음식을 조리하기 시작했다.


‘엇? 저 사람 손은 씻었나? 그냥 갈 걸 그랬나?’


20분이나 지난 후 포장된 음식을 받으면서 이 집은 이제 마지막이네 싶었다.

난 그냥 다섯 식구가 베트남 여행 때 함께 먹었던 그 반미가 반가웠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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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젠장, 그런데 또 음식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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