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오길 잘했다.

제주여행 6일 차

by 이연숙


몇 년도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최소 15, 6년 전 쯤이었을 것 같다.

지인 B의 소개로 한 사진카페에 가입했는데

꽤 오래 된 동호회이기도 했고 구성 멤버들의 연령대가 높은 데다

애초에 낯가림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는데 오래 걸리는 터라

쭈뼛쭈뼛 눈팅만 하고 있던 참이었다.

제주도 출사는 거의 번갯불에 콩 튀기듯이 진행됐다.

낯가림이고 뭐고 제주라는 말에 B가 서두르자 나도 덩달아 참석 댓글을 달았다.

카페 주요멤버의 결혼식 참석을 명분으로 2박 3일 번개 출사가 잡힌 것이었다.

참가 인원이 몇 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현지에서 9인승 승합차로 움직였던 걸 보면 아마 열 명은 안 됐을 것 같다.

평균 연령이 60 세쯤으로 그 당시 나보다 최소 여섯 살 이상 많은 멤버들로 구성이 됐었다.

사흘 동안 잔치가 계속된다는 제주도 결혼식의 한 부분을 봤던 것 같고

승합차를 타고 어느 장소에 내려주면 일사불란하게 흩어져 사진을 찍다가

약속한 시간에 차에 도착하면 꼭 누군가 두 세 명은 뒤 늦게 느릿느릿 나타났던 기억이 난다.

첫 째 날에는 그 무렵 신축 개장했던 섭지코지 근처 리조트에서 묵었는데

카페 대장은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저녁 식사를 순식간에 준비했다.

그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 익숙한 몸짓으로 혼자 할 테니 저리 가 있으라고 손을 저었다.

둘 째 날에는 참석 멤버 중 한 사람의 서귀포 별장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대신 차를 타고 어느 재래시장으로 갔는데

사각 테이블에 마주앉는 형태가 아닌

노점처럼 긴 의자에 한 쪽 방향으로 보고 앉아서 순댓국을 먹었다.

순댓국의 맛이 좋았던 건지 특이한 좌석 형태가 재미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 상황자체가 인상적이었던 건지 모르지만 그 장면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이후로 서귀포에 갔을 때 나는 매일올레시장이 그 곳인가 해서

몇 번이고 돌아보면서 그 곳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였다.

그 때 느낌으로도 꽤 큰 시장이었는데 같은 도시에 그런 규모의 시장이 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언제쯤엔가 서귀포에는 매일 올레시장 말고 향토오일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오늘 그 시장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다.

오전 산책을 하고 온라인 수업을 한 후 버스 검색을 했다.

보통 두 대로 운행을 하는 모양으로 배차간격이 30~50분 정도다.

현재 운행하는 차가 없다가 조금 후 한 대가 출발했는데 37분 후 도착이라는 알림을 보고

숙소를 나섰다.

그런데 정류소에서 다시 확인하니 좀 전에 있던 차가 없어졌다.

새로 고침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간격이 먼 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째서 이미 출발한 차가 중간에 없어진 걸까?

난감했다.

택시를 탈까, 환승하는 버스를 타러 다른 곳으로 가야할까, 아니면 그냥 가지 말까?

를 고민하면서 그 자리를 오락가락 하다가 전화번호를 찾아내서 전화를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도착예정정보가 뜨지 않는다고 했더니


“지금 점심시간이라 운행이 없습니다.”

“...... 아..네..”


버스기사님도 점심식사는 해야겠지.

끼니도 굶고 운행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버스를 두 시간이나 운행을 안 한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다.

이해되지 않았다기 보다는 내가 배가 고파서 예민해진 탓일 수도 있겠다.

직원이 확인한 바로는 두 시 팔 분쯤 이 지역을 지나게 될 거라고 했다.

두 시 팔 분 까지는 사십 분이나 남았다.

다시 한 번

택시? 다른 버스? 포기할까?를 격하게 고민했다.

간다고 한 들 그 때 그 곳이 그대로 있을 리도 없고

있다고 해도 다른 비슷한 점포들이 모여 있을 텐데 그 곳을 찾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무엇보다 찾은 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나마나한 잡다구리한 생각들을 하다 보니 그 새 십 분이 지나있었다.

오늘따라 날도 쌀쌀하고 바람도 불었다.

그냥 들어갈까 그래도 기다려 볼까하며 갈팡질팡 하는 사이 또 십 분이 지났고

드디어 운행 노선표에도 버스가 나타났다.

간이 정류장에 누군가 가져다 놓은 의자에 앉아 기다리다보니 버스가 오기는 왔다.

원래 오일장 정류장이 있는데 오늘은 장날이라서인지 안 쪽 가까이 정차를 해 준다.

그런데 세상에

음식거리가 모여 있는 곳에 가니 긴 테이블에 긴 의자에 앉는 방식의 집이 딱 하나 있었다.

한 눈에 그 집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카페이름, 요리를 잘 하던 대장 닉네임,

그 때 참석했던 멤버 이름 하나 기억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어쩌면 적어도 오늘은 가지 않았을 지도 모를 장소 하나로

불현 듯 시간여행을 한 기분이다.

이미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뒤라

입천장을 데어가며 허겁지겁 순댓국을 먹으면서,

그래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21024그래도 오길 잘했다.jpg


어제부터 스멀스멀 장 트러블도 신호를 보내고 목도 따끔거리고

하도 많이 걸었더니 무릎도 욱씬거리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7박 8일은 욕심이었지 싶기도 하다.

그냥 오늘 딱 집에 가면 좋겠다는 마음 한 편

내일은 공천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월에 최저가 편도 항공권을 예약해 놓고 수십 번 취소할까 말까 망설였었다.

취소 안 하길 잘했다. 컨디션은 망했지만 그래도 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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