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이억이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제주여행 7일차

by 이연숙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스탬프라든가 명예의 전당이라든가 완주 기념 배지라든가,

올레트레킹을 완주한 사람들에게 주는 혜택을 모를 때였다.

몰랐던 건지 아직 생기기 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이들과 함께였는지 둘만 갔던 건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하튼 K와 올레 5코스를 걷기로 했다.

남원에 위치한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코스였는데 출발점까지는 얼마간 거슬러 올라가야했다.

이런 부분에서 보면 둘이 참 쓸데없는 부분에 고지식하다는 점이 똑같다.

코스 시작점이 남원 포구인들 어차피 숙소를 거쳐 가게 되는데

거기서 그냥 출발하면 어때서 구태여 버스타고 시작점에 내려 걷기 시작한 것이다.

K는 몰라도 나는 사실상 온전한 한 코스를 도전하는 것이 처음이라

종점까지 도착할 수 있을지, 중간에 포기하게 될지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바다를 따라 이어지는 길은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때로는 바다 바로 옆에 숲이 얼크러져 터널을 이룬 곳을 지나가기도 했고

더러는 길이 아닌 현무암으로 이어진 울퉁불퉁한 바닷가를 지나느라

운동화 콧등이 해지기도 했다.

올레가 아니었으면 언제 이런 길을 가보겠느냐며 감탄에 고마움까지 더해 마음이 뿌듯해졌다.

총 길이 13킬로미터에서 중간지점을 지나 3분의 2지점을 지날 때쯤에는

허기도 지고 서서히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헬로.”


그 때 누군가 우리를 보고 인사를 한다. 그것도 꼬부랑말로.

소리 나는 곳을 돌아보니 키가 멀쑥하게 큰 백인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웃고 있다.

한창 영어공부 중이던 K가 마치 고향 형이라도 만난 것처럼 선뜻 인사를 하며 다가간다.

집을 고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돌담에 작게 낸 창문이 있는 옆집들과는 이색적으로

흰색 페인트칠을 한 외벽 한가운데 커다란 통 창이 달려있는 집 앞에 서 있었다.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자 키 큰 엉아가 보여줄 게 있다며 안 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한창 진행 중인 인테리어는 뼈대만 두고 거의 집을 다시 짓는 수준이었는데

그걸 다 직접 하는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소개하는데 메릴랜드 대학 교수라고 했고 이 곳에 올 때마다 틈틈이 집을 수리한다고 했다.

제주도의 집은 바람이 많아 지붕은 꽁꽁 동여매고

창문은 될수록 작게 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거실에서 바다가 바로 보여 참 좋다 싶으면서도 이러다 태풍이라도 오면 어쩌나, 하는

나는 또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 때 불현 듯 생각 난 듯 키 큰 엉아가 갑자기 이 쪽으로 와 보라며 앞장을 선다.

그를 따라 간 곳은 제주도식 대문인 막대기가 세 개 걸쳐있는 옆집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모양으로 잡풀이 무성한 그 집을 보여주며


“여기 좋지 않아? 이 거 이억이래. 여기 사서 너도 집 지어.”


라고 하는 게 아닌가?

잡풀 때문에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도 몰랐고 이억이 합당한 가격인지도 모른 채

이후로 우리는 가끔 한 번씩 그 때 얘기를 하고는 했다.

제주도 숙소를 검색하다가 마땅한 것을 찾지 못했을 때

마음이 힘들어 이것저것 정리해서 제주도에 가서 살까 했을 때

제주도 아파트 값이 엄청 올라서 서울과 맞먹는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그럴 때마다 K는 말했다.


“아! 그 때 그 집을 샀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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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 때 키 큰 엉아를 만났던 동네에 갔었다.

지난 몇 년 사이 K와 두 번 정도 그 곳에 간적은 있었다.

한 번은 올레 트레킹을 하면서 휙 스치듯 지나갔고

그 다음 번에는 차를 세워놓고 차근차근 둘러봤는데 그 집은 없었다.

매우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아직 있는 집을 못 알아 볼 리는 없다.

없어졌거나 개조를 했거나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줄 알면서도 이번 여행의 마무리 상황에서 나는 또 그 곳에 가보고 싶었다.

키 큰 엉아의 그 집이 깊은 인상을 남겼던 건 사실이지만

그것 말고도 그 곳은 아늑하고 다정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오래 된 동네의 느낌이기만 하거나

완전히 개발된 모습은 아니지만

그 곳은 여전히 고요했고 따뜻했다.


숙소로 오는 버스 안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그 때 이억이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공천포에 집을 짓고 나는 날마다 바닷가 산책을 하고 K는 낚시를 하며 살고 있을까?


그나저나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적어도 20년 가까이 됐을 그 시기에

서귀포 바닷가에 있는 집이 2억이었으면 비싼 거야 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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