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버스 기사님과 고마운 승객

제주 여행을 마치고

by 이연숙


공천포에 가는 중이었다.

뒷문 쪽 바퀴 위 자리에 앉아있었다.

승용차로는 15분 정도 거리인데 버스로는 거의 40분이 걸린다.

그래도 버스타기를 좋아한다.

적당하게 흔들리는 리듬도 좋고 타고 내리는 승객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특히 제주에서는 더 그렇다.

혹여 장날에 오일장을 지나가는 버스를 탄 경우에는

승객의 대부분이 제주 토박이 어르신들인데 사투리가 워낙 억양이 강해서

눈을 감고 들으면 마치 외국에 와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제주도 버스 기사님들에게서는 남다른 여유가 느껴진다.

걸음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탑승한 경우 자리에 앉을 때까지 차를 출발하지 않는다.

차에 올라서지도 못한 채 문을 가로 막고 요금을 치르는 노인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준다.

때로는 어르신들한테 겁나 잔소리를 해대는 기사도 있다.

무슨 이유인지 자리가 있는데도 구태여 서서 가려는 노인에게


“자리에 앉아요! 넘어지면 다쳐요!”


이 말을 제주 사투리로 했는데 도무지 옮기지를 못하겠다.

짐 보따리가 길을 막은 노인에게도


“한 쪽으로 치워야지 사람들 걸려 넘어지겠네.”


라는 의미의 말을 제주도 사투리로 소나기처럼 퍼부었는데

정작 어르신들은 그 말을 혼내는 말을 듣고는 움찔 하면서도 깔깔 웃는다.

제주도 버스 기사님이라고 모두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런 장면은 버스를 탈 때마다 자주 눈에 띄고는 했다.

라이방 선글라스를 쓰고 입을 꾹 다문 과묵한 타입의 기사님은 물론 제주에도 있었고

노인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네는 동네 이웃 같은 타입도 있고

규칙을 지키기 위해 잔소리가 끊일 새 없는 타입의 기사도 있었다.

그 날 기사님은 세 번째 타입이었던 것 같다.

시장 근처에서 한 남자 노인이 탔는데

버스카드에 문제가 있는 건지 태그를 해도 자꾸 다시 하라는 낭랑한 목소리가 나왔다.

정작 노인은 그 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몇 번이나 안 쪽으로 들어오려고 했고

그럴 때마다 기사가 다시 찍으라고 말을 하다가 나중에는 거의 신음 수준이 됐다.

결국 해결이 안 된 채로 노인은 중간 문 뒤쪽 좌석에 앉았는데 마침 옆에 아는 사람이 탔던 모양이었다.


“어르신 마스크 똑바로 쓰세요.”


카드 때문에 실랑이를 하느라 마스크가 코에서 흘러내려 있었나보다.

노인은 본인한테 하는 소리인 줄 모르고 옆 자리 지인과 이야기꽃을 피운다.


“마스크 올려 쓰세요~ 사람 많잖아요.”


그제서야 사람들 눈길을 의식한 듯 노인이 마스크를 고쳐 썼고 다시 얘기를 한다.


“옆 사람하고 얘기하지 마세요.”


버스 안 방역 지침에 따르면, 마스크는 코와 입을 완전히 가려야 하는 것도 맞고

버스 안에서는 통화나 대화는 자제하라는 것도 맞는 말이기는 한데

어쩐지 80 넘은 어르신이 담임선생님한테 혼나는 것 같은 이상한 분위기가

걱정스러우면서도 재미있었다.

말 잘 듣는 학생처럼 노인은 마스크도 고쳐 쓰고 더 이상 옆 사람과 대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하필 그 때 갑자기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환절기면 한번 씩 괴롭히는 마른기침이 도진 모양이다.

K 담당 의사가 진료 중 고개를 돌려 재채기를 하고 나서는

요즘은 기침이나 재채기하기도 조심스럽다고 했던 것처럼

기침보다 기사님 눈치가 보여 당황스러웠다.

모르긴 몰라도 주변 승객들보다 원칙주의자인 기사가


“거기! 아줌마 기침 하지 마세요! 사람들 많잖아요.”


할 것 같고, 그래도 멈추지 않으면 아무데나 차를 세워 버리고 갈 것 같았다.

목 한 쪽이 간질거리면서 눈치 없이 계속 올라오는 기침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느라 땀이 다 났다. 기사님이 내려주기 전에 내가 먼저 내려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할 판이었다.

물을 마셔도 소용이 없고 입술을 앙다물어도 더욱 거세게 컹 소리까지 나면서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

그 때 였다.

옆자리 여성 승객이 가방에서 뭔가를 부스럭거리더니 목캔디 하나를 내민다.

고맙다는 말을 할 새도 없이 덥석 받아 껍질을 까서 입에 넣었다.

제발...제발...

콧등이며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다.

잠시 후 사탕이 녹아 목 안으로 흘러들어가자 신기하게도 진정이 되기 시작했다.

옆 좌석 승객이 잔소리 대장 버스 기사님에게서 구해준 은인처럼 느껴졌다.

정차 안내 모니터를 보니 다음이 내릴 정류장이었다.

내가 창가 자리였어서 문 쪽으로 나가느라 자리를 바꾸면서


“진짜 고마웠어요.”


마음은 진짜보다 천만 배 만큼이었다.

버스에서 내렸는데 아까 그 노인도 거기서 내렸다.

버스가 천천히 출발을 하지 않고 기사님이 밖을 향해 뭐라고 하는 것 같아

노인과 내가 멈춰 서서 올려다보니 내가 아니고 노인한테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았다.

졸지에 노인과 내가 미어켓처럼 버스 쪽을 바라보며 멍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기사가 손을 내 저으며 ‘에이 됐어요.’ 라고 하는 것 같았다.

버스는 출발했고 노인은 마을 쪽으로 나는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20221026제주도 버스기사님과 고마운 승객.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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