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만 쉬며 살랬다고 정말 숨만 쉬고 사는 거야?

오늘은

by 이연숙



여름 내 K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을 때

힘이 들어서 운동을 전혀 못하고 있다고 했더니 의사가 말했다.


“운동! 하지 마세요. 가만히 있어도 전속력으로 100미터를 달리는 것과 같은 상태이니

마음 같아서는 그냥, 숨만 쉬며 살면 좋겠는데...“


K의 운동에 대한 태도는 병원 가기 전과 갔다 온 후로 나뉘었다.

가기 전에는 힘들어서 못했는데 다녀온 후에는 안 해도 돼서 안 한다.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공식적인 이유가 생긴 셈이다.

그러므로 내가 산책을 같이 하자고 할 때 당당히 거절할 수 있는 핑계라는 부가 효과까지 생겼다.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니 운동을 하려면 밝은 낮에 하면 좋을 텐데

어찌어찌 하다보면 저녁 식사 후 걷기 운동을 나가게 되는 날이 많다.

구도심의 군데군데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생겨나는 모양의 동네이다 보니

날이 일찍 어두워지는 요즘, 산책을 나가면 거리의 낮과 밤 느낌이 대조적이다.

즉, 새 건물 주변은 불빛으로 환하지만

구도심 거리를 지나갈 때는 불빛이 거의 없어 어쩐지 으스스한 기분까지 든다.

그럴 때면 안 그래도 빠른 걸음에 경보라도 하듯이 냅다 속도를 올린다.

날이 추워지면서부터는 일곱 시만 넘어도 행인이 거의 없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누군가 둔기로 뒤통수 한 대 치고 도망가도 도움을 청하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취향에 따른 액션 스릴러물을 너무 많이 본 부작용이 확실하다.)

하여 한두 번 쯤 넌지시 같이 나가면 좋겠다는 눈치를 보였을 때

예전에는 약간의 미안한 표정을 장착하며,


“그러고 싶은데 힘들어서 그냥 쉴래.”


라고 했다면 지금은


“의사가 숨만 쉬며 살랬는데.”


라길레 다음부터는 그냥 간다 온다 말도 없이 혼자 집을 나선다.


20221030숨만쉬며 살랬다고 정말 숨만 쉬고 사는 거야?.jpg


휴일 오후, 이번에는 집근처 건물에 새로 생긴 순댓국집에서 점심을 먹고

코스처럼 같은 건물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집을 나서면서 나는

햇살도 좋고 바람도 선선하니 한 바퀴 돌고 오겠다고 했다.

K는?

졸려서 집에 가야겠다고 했다.

이제는 거의 걷기코스가 되어버린 약 8km의 산책길을 (혹시라도 내가 유명한 작가가 된 다음 죽었을 때 어쩌면 작가의 산책길이라며 군데군데 푯말을 붙이게 될지도 모를.)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며 돌아 집으로 왔다. 그리고 말했다.


“숨만 쉬며 살랬다고 숨만 쉬며 사는 거야? 이제 컨디션도 좀 돌아 온 것 같으니 같이 운동하면 좋겠구만. 운동을 뭐 꼭 노동처럼 할 필요는 없잖아. 그냥 일정한 거리를 일정한 시간만큼 꾸준히 걷는 게 중요하지.”


언제나 그러하듯 묵묵히 듣고만 있던 K가 한참 후에 말했다.


“내가 쉬는 날 기준으로 딱 아침 열시에 나갑시다.”


그 말을 하는 데 뭐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건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같이 가 준다니 난 그냥 감동했을 뿐.


동생의 지인이 말끝마다 ‘내가 얼마나 산다고’를 붙이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꽤 재미있어서 나도 요즘 자주 사용한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거나 죽을 결심을 한 것이 아니더라도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후회까지 하지 않기 위해 산다는 마음가짐만으로도 어쩐지 비장해지는 기분이다.

하늘 파랗고 바람 시원하고 햇살 좋은 가을날도 그렇고

여행이라는 단어에 조차 설레기부터 하는 마음도 그렇고

같이 손잡고 산책할 수 있는 시간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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