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늘은 다른 코스로 걸었다.
신도시의 한 가운데 있는 단지와 단지 사이길인데
근처에 늘 다니던 길에서 한 블록 옆에 있었다.
우연히 지나치게 됐는데 가을이 무르익어 쌓인 낙엽이 운치 있었다.
아파트 세 개 단지 쯤 지나 길은 공원을 거쳐 천변으로 이어져있었다.
천변을 걸어 집 방향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앞에서 걸어오던 70대 가량의 부부가 나를 보며 반색을 한다.
“아가씨! 이 것 좀 봐줘봐.”
무릎 나온 조거팬츠에 남색 후즐근한 후디를 입고 야구 모자를 쓴 모양이
어디를 봐서 아가씨로 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모르게 비어져 나오는 웃음은 어쩔 수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다 있네 싶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휴대폰을 내게 내밀며
“이게 전화가 먹통이야.”
“차단이 됐나봐, 내가 하는 전화만 안 돼.”
시기하듯 여자의 말끝을 붙잡고 남자가 이어 말했다.
카드지갑 겸용 커버가 씌어있는 폰은 언뜻 봐도 안드로이드 같았다.
“아, 제 전화랑 다른 기종이라서요.”
“그래도 젊은 사람이 보면 알 거 아냐.”
다짜고짜 하는 반말도 그렇고 내가 할 수 있을지 자신 없기도 하면서도
얼결에 이미 내 손에 여자의 폰이 쥐어졌고 남자는 전화번호를 누르는 것 같았다,
“거봐, 내 전화만 안 된다니까? 차단이 됐나봐. 그걸 어떻게 푸는지를 알아야지.”
할 수 없이 여자의 폰에서 연락처목록을 누르고 남자 분 이름을 찾아보라고 했다.
목록에는 꽤 많은 이름들이 있었다.
‘남편’이라는 이름이 보였는데 여자는 그 이름을 지나쳐 내려간다.
‘이 사람이 남편이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박ㅇ순’이라는 이름에 멈춘다.
“아니 폰 주인 말고 이 쪽 분 이름을 찾으셔야죠.”
폰주인이름이 연락처 목록에 있을리 없다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남자가
“이게 나야.”
라며 박ㅇ순이라는 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어? 아! 예전 직장에도 박수진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건장한 남자 직원도 있었지.’
라며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킨 후 박ㅇ순 이름에서 더보기를 눌러보니
수신차단해제버튼이 뚜렷하게 보였다.
해제를 하고 다시 전화를 해 보고 전화벨이 울리는 것을 확인한 여자가
고맙다고 갑자기 나를 부둥켜안는 것이 아닌가.
“아유 고마워요. 고마워. 난 이게 안 돼서 수리센터에 가야하나 했지.
‘아, 아니 이게 뭔...’
여자와 남자가 자리를 떠나고 내 갈 길을 가다가
문득 방금 전까지 뒤죽박죽이었던 일들이 차곡차곡 정리가 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부부가 아니었고 여자의 폰에 남자는 여성이름으로 저장이 되어있고
여자는 남자를 수신차단했고(혹여 뭘 잘 못 눌러 차단이 되는 기능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남자는 왜 내 전화만 안 되냐며 마음이 달았고...
그러니까 그게.
여자가 남자의 번호를 차단 한 거라면?
진짜 고마운 거 맞아?
맞겠지?
맞을 거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