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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Jul 07. 2023

자기, 패키지여행 한 번도 안 해봤구나?

여행


북적하게든 호젓하게든, 친구와 여행을 한 번 해 보고 싶었다.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행경험이란 것이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라서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여행 경험 중 절반 이상은 혼자 떠난 제주여행이었다.

나머지는 거의 가족과 함께이거나 사진을 빌미로 한 출사 여행

그리고 드물게 여행 동호회 사람들 사이에 낀 적이 있으며 

사진, 글, 그림 등 관심사가 비슷한 B언니와도 두세 번 정도 여행을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보니 여행지에서 흔하게 만나는 동년배 친구들과의 유쾌한 여행을

나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코로나가 종식되면서 우연히 그 기회가 찾아 왔다.

30년 가까이 알고 지냈던 S와 무려 중앙아시아 2개국을 여행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S가 속해있는 그림 사생 동호회 그룹과 함께 말이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 어색함을 넘어 두려움까지 느끼는 터라

여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설렘보다는 긴장감이 점점 더 커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날짜는 바득바득 다가왔고

마지막 여행이 언제였는지, 짐 싸는 방식도 잊어버려 

꾸렸던 짐을 풀었다 넣었다 반복하기를 여러 번 

어쨌든 비행기는 떠올랐고 

몇 시간 후에는 낯선 공항에 내려 입국 수속을 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궁금했던 친구와의 여행 첫날밤이 되었다.

샤워를 한 후 마스크팩을 붙이고 나란히 각자 침대에 누워 수다를 떠는 상상과는 달리

하루 여행의 루틴인 것 같은 모임의 뒤풀이가 바로 우리 방에서 벌어졌다.

당연히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고 전직 회장이었다는 대장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순식간에 좁은 호텔 방안에 각종 안주와 술이 한 판 벌어졌다.

깍두기인 것도 미안한데 공연히 나 때문에 분위기 어색해 질까봐 

나름 적당히 끼어들고 상황에 따라 권하는 술잔도 물리지 않았다.

아침에 조식을 먹으러 내려갈 때 S는 보온병과 컵라면을 챙겼다.

컵라면을 좋아하나보다 했다.

세상 귀찮은 게 손에 뭘 들고 다니는 것인 나는 빈손으로 여권과 지갑이 든 미니 가방만 달랑 메고 내려갔다. 

식사 시간을 그룹별로 나눴는지 홀 안에는 일행들만 보였다.

뷔페타입의 식사로 한 접시를 가져와 먹고 있는데 잠시 후

테이블에서 테이블로 자꾸 반찬들이 떠다닌다.


“멸치 볶음 좀 먹을래?”

“김치 필요한 사람?”

“마늘쫑이야 먹고 옆 테이블로 넘겨.”


떠돌아다니는 반찬들은 이 후 점심때도 저녁때도 그 다음 날도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버스로 이동을 할 때에도 


“000 님이 돌리는 겁니다.”


라며 초콜릿, 사탕, 마른안주가 든 봉투가 날아다닌다.

룸메인 S도 예외는 아니라서 매일 밑반찬이든 안주거리든 챙겨서 

식당에 가거나 뒤풀이에 가거나 버스에 올라탄다.

그 때서야 인천에서 수화물을 부칠 때 S와 내 캐리어의 7kg에 이르는 무게 차이가 이해가 됐다.

여행의 중반 쯤 이르렀던 날 아침이었다.

그 날도 호텔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려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S가 컵라면을 한 개를 내게 내밀며 가지고 가라고 한다.

라면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더구나 아침에 무슨 라면이냐며 난 괜찮다고 했다.

내게 건네던 컵라면을 다시 가방에 넣으며 S가 말했다.


“자기, 패키지여행 한 번도 안 해 봤구나?”

“어? 뭐, 그렇지.”

“그런 거 같더라. 패키지 오면 다 이래. 컵라면 밑반찬 챙겨 와서 나눠먹고 그러거든. 

그런데 매일 나 혼자만 먹으니까 사람들이 친구는 안 주고 혼자만 먹는다고 할 거 같아서.“

“......!!!!”


곰곰 생각해보니 여행사 패키지여행을 딱 한 번 해본 적이 있기는 했다. 

동생 부부와 갔던 여행이 그 것이었는데

넷 중 아무도 여벌 음식을 준비해온 사람은 없었다.

떨이하듯 판매하는 여행상품을 갑자기 선택해서였는지

첫인상도 별로였던 가이드는 가는 곳마다 가이드의 본분은 어디가고

나홀로 사색을 즐기기 바빴다.

하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우리끼리 먹고 갖가지 장난스러운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을 찍고

날마다 한 방에 모여 와인 한 병을 따서 마시며 우리 얘기를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나중에 이름을 알게 된 슈니첼을 올케가 개떡 같다고 하는 불평에 동조하며 깔깔 웃었던 기억에

마지막에 들렀던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을에서 얼결에 구입했던 티팟의 추억까지

나의 유일한 패키지여행의 추억은 온통 그리움과 애틋함 뿐이다.


키르키즈스탄의 날것의 자연을 여행하면서

아무래도 이번 생에, 여행은 이게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그 것이 숨 막히게 아름다워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슬그머니 자리 잡았다.

그래도 만약에, 정~~~~~~~말 만약에

다시 여행을 하게 된다 해도

컵라면을 가지고 가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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