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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Jul 04. 2023

호박씨라도 물고 온 건 아닌가?

오늘은


단추와 산책을 하다보면 

새들이 내려 앉아 있는 곳을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처음에는 사냥 본능이 있나? 생각도 했는데 푸들이 무슨, 이라며 지나쳤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푸들이 오리 사냥을 목적으로 개량 되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었다. 

그걸 근거도 없이 새를 잡는, 이라고 이해했다가 가만 보니 ‘잡는’ 게 아니라 ‘쫓는’이 맞는 것 같았다.   

단추의 동작을 봐도 그렇다.

멀찍이 새의 무리를 보면 몸을 낮추고 걸음을 늦추다가 순식간에 튀어나가지만

새들이 푸드덕 날아오르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던 길을 간다.

때로는 내 눈에는 미처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몸을 웅크릴 때 보면 

저만치 새가 한두 마리 보이기도 한다.

그렇듯 사물의 움직임이나 소리에 민감한 단추가

어느 날엔가 큰 방 베란다 앞에서 몸짓이 어째 전과 다르다.

가끔 층 사이 10센티 정도 튀어나온 경계석위에 새들이 날아와 앉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면 여지없이 

그르르~~~ 거리며 엄청 겁을 주다가 악을 빽빽 쓰며 짖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느낌이 전과는 사뭇 다르다.

베란다로 나가 실외기가 있는 밖을 내다보니, 바로 앞에 내어 놓은 토분 위에 비둘기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실외기 위에 걸쳐놓은 판자 위 화분에 물을 주느라 내리고 올리는 동안에도

비둘기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신기한 건, 단추가 그런 비둘기를 쫓아내기는커녕 매일 안부를 묻듯 그 앞에 다가가

조심스레 지켜본다는 점이었다.

어쩌다보니 나도 아침마다 비둘기 안부를 내다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베란다 창을 열든 청소를 하든 화분에 물을 주든 꼼짝하지 않던 새가 하루는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그 곳에는 메추리알만한 흰색 알이 두 개가 놓여있었다.

병아리 부화 장면도 실제로 본 적이 없던 터라

정말로 저 알을 품고 있으면 껍질을 깨고 새끼 새가 나올지 궁금했다.

어떤 날은 몸집이 조금 작은 비둘기가 와서 앉아있을 때도 있었다.

가만 보니 줄곧 알을 품고 있는 것은 암컷이고 

열심히 마른 나뭇가지를 물어 나르는 놈은 수컷인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집에 왔던 날 

서로 베란다를 내다보며 신기하다고 새된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인터넷 검색을 하며

비둘기 알은 17일 정도 후에 부화한다고 하고

암컷과 수컷이 번갈아 품기도 하며

한 번 부화한 공간은 부화 맛집(?)으로 인식되어 다시 돌아온다고도 했다. 



단추가 처음 발견 한 날이 시작이었다 치면 

열흘 째 되는 날인데 비둘기는 여전히 자리만 지키고 있다.

2주차가 되었을 때도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얼추 16일 쯤 되었던 지지난 토요일에, 그것도 베란다 문을 열었을 때 어미 새는 어디가고 연 노란색 새끼 두 마리가 한 몸인 것처럼 몸을 겹치고 있었다.

얼핏 보면 죽은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미동도 없더니 가까이 들여다보자

몸집의 삼분의 일 정도 되는 부리가 움직인다.

어쩐지 뿌듯하고 신기해서, 새끼가 나왔다고 K에게 알리고 가족 단톡방에 널리 알렸다.

그러고도 며칠간 새끼를 깔고 앉은 모양으로 어미 새가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한두 번 자리를 비울 때마다 보이는 새끼는 몸집이 부쩍부쩍 커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오일 째 되던 날, 비둘기는 어디가고 빈 둥지만 남아있었다.

몸집이 커지는 속도가 빠른 것 같기는 했지만 아직 몸을 제대로 가누는 것 같지도 않았으니

날려면 먼 것 같았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어미가 물어서 옮겼을 리는 없고 그렇다고 다른 새가 물어갔을 리도...있나? 있을까?

아무튼 뭔가 마음은 찜찜한데 K와 나의 몸은 빠르게 움직였다.

촘촘히 쌓아놓은 화분 속 둥지부터 치우고 주변에 모아놓은 잔가지들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비둘기 퇴치용 망을 치느라 K는 온 몸을 땀으로 적셨다.


베란다 쪽에서 귀에 익은 푸드덕 소리가 나자 단추가 먼저 달려왔다.

나도 바깥을 내다 봤다.

비둘기 한 마리가 층 사이 경계석 위에서 집 안 쪽을 향해 앉아있었다.

몇 걸음 쯤 뒤에 몸집이 조금 작은 녀석이 아파트 광장 쪽을 향해 앉아있었다.


뭐야, 고맙다고 인사하러 온 건가?

내 둥지 어디 갔냐고 따지러 온 건가?

혹시... 

호박씨라도 물고 온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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