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난독증이 아닐까 싶을 만큼 책을 읽는 속도가 더디다.
그런데 근래 보기 드물게 이틀 만에 완독한 책이 있었다.
작가인 딸이 1인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그의 모부(자동 맞춤법 기능에 빨간 줄이 생길만큼 생소한 말이다.)가 비정규직으로 일을 한다.
‘부모’나 ‘가부장’은 맞는데 ‘가녀장’에는 빨간 줄이 생긴다.
가족관계이지만 엄연히 직장이므로 모부는 딸에게 깍듯이 존칭을 쓴다.
어색하고 생소한데 통쾌하고 기발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내용 중 모부가 딸에게 정말 감탄하거나 혹은 거들먹거리는 딸을 비아냥거릴 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역시 성공한 애는 달라.’
퇴직 후 뭘 하면서 보낼지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조용해지는 K와 달리
친정 오빠와 동생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오빠 방 한쪽 벽면을 그득 채우고 있는 사진관련 장비들과
오래된 각종 컴퓨터 등만 봐도 대충 짐작이 간다.
실제로 퇴직을 한 후 방에만 들어가면 뭘 하는지 나오지를 않는다는 엄마의 말에는
궁금하기보다는 집에만 있는 아들이 답답하겠다는 우려가 배어있음이 분명했다.
한 편, 책 만드는 일을 했고 아직 하고 있는 동생의 관심사는 오빠보다 다양하다.
어느 해엔가는 고등학교 동문들로 구성된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책 만들던 사람이 갑자기 합창도 뜬금없는데 합창단원들과 매주 등산도 한다고 했고
해마다 연말에는 발표회도 한다고 했다.
연습한다고 주중 하루에, 주말까지 남편을 양보해야했던
올케의 대인배같은 성품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었다.
몇 해 전 K와 나의 결혼 30주년과 동생네 부부의 20주년을 명분으로 떠났던 여행에서는
세 사람이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올 동안 수첩에 완성해놓은 동생의 풍경스케치에 놀랐다.
그러다보니 서재에 떡하니 자리 잡은 첼로를 보면서는 이제 그리 놀랍지도 않게 되었다.
동소문동에 자리 잡은 아담한 카페에서 펜 드로잉전을 한다고 했다.
왜인지는 몰라도 내 마음이 설렜다.
버스타고 지하철 갈아타고 한 시간 반 걸려 그림 보러 갔다.
입구부터 걸음걸음 마음이 뭉클해졌다.
집에 걸려 있어 몇 번 본 적이 있는 그림과
언제 이런걸 다 그렸나 싶을 만큼 더 다양한 그림들이 다정하게 맞아주었다.
작가와 독점하고 앉아 얘기를 하는 것이 사치라 느껴질 만큼
동생을, 그의 그림을 보러 와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자리를 오래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도 민폐인 것 같아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카페 입구까지 배웅을 나온 동생은 또 새로운 방문자와 마주쳤다.
대충 인사를 하고 골목길을 나오다보니
꽤나 오래된 동네에 새 건물과 오래된 건물이 어색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네를 한 번 돌아볼까 하다가 날이 더워 그만 두기로 하고 K와 전철역을 향해 걸었다.
“인문계 나온 애들은 역시 달라.”
“뭐가?”
“생각이 자유롭잖아. 뭐든 시도하는데 남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
공감이든 반격이든 뭔가 말을 할 줄 알았는데
K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고에 가는 게 내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지난 모든 과정이 상황에 맞추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 선택할 기회라는 것은 없었다.
며칠 후 자세히 읽어보지 못하고 사진으로 찍어둔 동생의 전시 전문을 보다가
문득 날카로운 뭔가에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혹시나 게으름과 무성의를 들키진 않았는지’
.
.
‘왜 더 열심히 연습하지 않느냐고 타박을 합니다.‘
.
‘질문할 때마다 피로가 다가왔지요.
.
.
‘나’를 위해 ‘아무 것’이나 그리라고 합니다.
동생은 인문계를 나와서 다른 게 아니었다.
수없는 피로와 힘듦의 날들을 겪어낸 결과일 터다.
동생은 나보다 조금 더 용감하고 나는 조금 많이 게을러서 일지도 모르겠다.
말을 조금 바꿔야겠다.
“성공한 애는 역시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