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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Aug 05. 2023

축구는 싫지만 치킨은 좋아.

오늘은


우리 남편은 치킨을 싫어합니다.

얼마나 싫어하는지 삼계탕을 먹으러 가면 밥 한 공기 추가해서 말아 먹고

치킨을 시키는 날에는 내가 다섯 조각 먹고 나면 남은 치킨 혼자 다 먹습니다.

치킨을 싫어하면서도 축구중계를 하는 날에는 항상 치킨을 주문도 아니고 포장을 해옵니다.

축구는 치맥을 하면서 보는 게 진리라나요?

때로는 안 봐도 승패가 뻔한 팀과의 경기거나, 어정쩡한 낮 시간이거나 

심지어 새벽시간에 방송을 해주는 시합이 있을 때도 치킨은 빼 놓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월드컵 기간에는 연거푸 사흘 동안 치킨을 먹은 적도 있지요.

저는 다 압니다.

그게 모두 치킨을 좋아하는 나 때문이라는 것을요.

나는 치킨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축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축구 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 경기를 보고 있다 보면 필요이상 과 몰입을 하는 나머지 

우리 선수가 다치거나 실수할까 걱정이 되고

순위 다툼을 할 때에는 너무 아슬아슬해서 숨이 다 안 쉬어지며

경기 도중 우리 팀에게 불리한 판정을 하는 심판이 얄밉고

죽도록 고생했는데 결국 패했을 때 속상해서 아예 중계방송을 잘 보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여자 월드컵 우리나라 경기가 오전 시간에 있던 적이 있어요.

저녁 준비할 시간이 됐는데 날도 덥고 반찬도 마땅치 않아서 남편에게 물었어요.


“오늘 축구경기 있는 날이니까 치킨 먹나?”


경기 이틀 전엔가 다음 축구는 오전에 하는데 점심으로 치맥을 하기는 좀 그러니까

저녁에 먹어야겠지? 라고 했었기 때문에 말했을 뿐이지 절대 치킨이 먹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이 남자 갑자기 정색을 하고는


“치킨이 먹고 싶으면 그냥 먹고 싶다고 하면 되지, 그게 무슨 말이야?”


라며 눈을 부릅뜹니다.

아, 아니 이게 무슨...

남편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나는 곧바로 쌀을 씻고, 있는 반찬으로 저녁상을 차렸어요.

삐친 거지요.


‘내 참 드러버서, 내가 다시는 치킨을 먹나봐라.’


그리고 며칠 후, 그 날은 축구 경기가 무려 두 건이나 있는 날이랍니다. 

첫 번째 경기는 오후 다섯 시에 있었는데 

그 날은 나한테 묻지도 않고 네 시쯤 슬그머니 나가더니 치킨을 포장해왔어요.




‘흥! 안 먹는다 안 먹어.’


내 마음이 그러는지 마는지 그는 마치 자기가 경기에 참가라도 하는 양 들떠서는

TV앞 작은 테이블에 치킨을 차려놓고 절인 무의 물을 빼고 소스에 맥주까지 세팅합니다.

내가 전에 자주 주문하던 웨지감자와 윙봉 세트에서 환상적인 냄새가 올라옵니다.

치킨에 넣어준 콜라 캔을 내게 먹으려냐며 따려고 하길레 

됐다고 하고 냉장고에서 나도 맥주를 한 캔 꺼내왔지요. 

네, 맞아요. 내가 감히 치느님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어요.

한 손에 치킨을 들고 다른 손에 맥주 캔을 들고 축구를 봤어요.

우리 팀이 선제골을 넣었을 때는 축구가 조금 재미있는 것 같기도 했어요.

그런데 상대팀이 골을 넣고 

볼이 좀처럼 우리 진영으로 넘어오지를 못하고

파울 같은데 불어주지 않는 심판을 원망하면서 역시나 축구는 나한테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뭐 어쩌겠어요.

축구는 싫지만 치킨은 좋은 것을요.


그나저나, 우리 남편이 치킨 싫어하는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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