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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Aug 02. 2023

식세기에 대한 논쟁 제 2 장

오늘은


엄지손가락이 불편하다고 정형외과에 갔던 K가 깁스를 하고 돌아왔다.

그냥 봐도 안 보일 수 없는, 채도 높은 파란색 보호대를

굳이 치켜 올려 보이며 얼굴까지 찡그린다.



“설거지를 많이 해서 그런가?”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많이 쓰지 말래.”


최근 들어 K의 일상이 바빠지기는 했다.

주민센터에서 하는 탁구 강좌에 등록을 했는데 

무슨 생각에서인지 일주일에 두 번 같은 요일 오후에 바리스타 강좌를 또 등록했다고 했다.

갑자기 하는 게 많아져서 그런가보다, 라고 하려고 보니

깁스를 한 것은 왼 손이고 K는 오른손잡이다.

즉, 오른 손을 사용하는 탁구 보다는 

양손을 사용해야하는, 설거지를 비롯한 주방일이 원인 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식기세척기를 사야하는 게 아닌지 다시 고민에 빠지게 됐다. 

지난번에는 모델까지 결정하고 쿠폰과 포인트 신용카드 할인까지 챙겨 거의 주문 단계였는데 막판에 K가 필요 없다며 틀었다.


“설거지는 내가 하는데 왜 신경을 쓰시나?”


사려고 했던 같은 모델 식기세척기를 사용하는 K2에 집에 갔을 때 자세히 보니

최단 세척 코스가 59분이고 보통 두 시간이나 되는 세척시간이 너무 길다 싶기는 했다.

뭐 어찌됐든 우리 집에서 설거지를 담당하는 K가 필요 없다고 하니 

식기세척기에 대한 논쟁은 그쯤에서 일단락 됐었다. 




인대에 염증이 생겼으니 환부에 주사도 맞고 물리치료도 받으면서 약도 먹어야 한다고 했으며 

경과를 보고 주사를 한 번 더 맞을지 결정한다고 하더란다.

병원에 다녀온 첫날은 내가 설거지를 했다.

오랫동안 손을 놓았던 일이지만 역시나 설거지는 싫다.

청소도 세탁도, 때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하기도 하는데 설거지를 하기 위해 싱크대 앞에 서는 건 여전히 몸이 싫다는 반응을 하느라 이미 오래전에 손목터널 증후군이 생기지를 않나 한동안은 손목에 의문의 콩알만 한 혹이 생긴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삼학년 때 사촌오빠까지 넷이서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오죽하면 갑자기 배가 다 아팠을까.

그 날, 결국 내가 아픈 배를 움켜쥐고 설거지를 했는지

스무 살이었던 사촌오빠가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식사 후에는 K가 보호대를 훌훌 풀어 던지더니 설거지를 하려고 한다.


“쓰지 말랬다며, 내가 할게.”


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자리에 앉아있었다.


“만날 하던 일인데 뭐.”

“그러다 더 아프면 어쩐대...”


여전히 식탁의자에 앉은 채 였다.

K가 설거지를 끝냈을 때 굳게 결심한 듯 내가 말했다.


“식기 세척기를 사야겠어.”

“.......”


들었는지 말았는지 K는 말이 없었다. 

그가 반대를 하는 이유가

가격이 비싸서인지, 결과물이 만족하지 않아서인지,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제대로 말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만만한 가격이 아닌 것은 맞지만 세척과정이나 결과물 그리고 물이나 세제의 양도 적어 훨씬 경제적일 뿐 아니라 환경오염도 덜하다고 설명했더니 (거의 세척기 영업사원이 된 것처럼.)


“왜? 내가 설거지 한 게 마음에 안 들어? 그럼 하나 사시든가.”


라며 안 그래도 큰 눈을 부라리며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다른 가전제품과는 달리 식기세척기를 들이는 일이 복잡한 건 사실이다.

급수와 배수가 가능한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집을 짓거나 주방 가구를 새로 들이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기존의 하부장을 뜯어내고 

기기를 넣은 다음 남은 공간을 메워야 하는 등 부속작업을 하는데 자칫 돈이 더 들어갈 수도 있다. 


“아니이,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손을 많이 쓰지 말라고 했다니까 그러지...”


아무래도 식기세척기 논쟁 제 2장도 이쯤에서 막을 내려야 할까보다.

그래 뭐 하긴, 설거지 하는 데 두 시간은 너무 길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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