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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Aug 01. 2023

어머니는 요즘 무슨 게임하세요?

오늘은


훅 들어온 YJ의 질문에 순간 멈칫했다.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틀린 그림 찾기’ 라고 말했다.


“오, 그래요? 나도 그거 해봐야겠다.”


사실상 나는 게임에 무지하다.

틀린 그림 찾기는 휴대폰 캐시백어플에 있는 하루 한 번만 할 수 있는 게임이다.

게임 어플을 받아서 했던 적도 있기는 하다.

최장기간 몰두했던 그 것은 애니팡이었다.

미국에 살 때 K2가 아이패드에 받아주었었다.

마음만 급할 뿐 빠르게 움직여주지 않는 손가락 때문에 영 점수가 나지 않으면

가끔은 아이들까지 합세해서 레벨이 대왕까지 올라갔던가?

동물들을 잡으면 그 것들은 줄줄이 찍! 꽥! 꺅! 소리를 내며 터졌다.

한동안은 틈만 나면 아이패드 붙잡고 앉아 동물을 터뜨렸는데

나중에는 눈도 침침해지는 것 같고 손목도 아픈 것 같아 차츰 시들해졌었다.

한동안은 연락이 뜸한 친구와 주고받는 하트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렀고 그런 게임이 있었는지 조차 아스라해질 무렵 

화장실에 들어간 K의 폰에서 예의 그 동물 터지는 소리가 나는 걸 들었다.

요즘은 게임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는지 친구 A하고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고 했다.

예전 생각도 나고 그게 아직 있는 것도 신기해서 어플을 다시 깔고 K와 하트를 주고받으며 

한동안 토파즈와 코인 모으는 재미에 빠져보기도 했지만 그 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애니팡보다 더 오래 전에 재미가 들렸던 게임은 테트리스였다.

가끔은 데스크탑에 기본으로 깔려있던 카드놀이도 했었다.

모두 상대와 경쟁하는 형태가 아닌 혼자 노는 게임이었다.


YJ는 게임 만드는 일을 한다.

어려서부터 게임을 좋아했다고 했다.

K1도 청소년기 한 때는 게임을 즐겼던 적이 있었다.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들 중에도 남편의 게임집착 때문에 이혼할 뻔 했던 부부도 있고

방 하나를 마치 피씨방처럼 꾸며 놓고 사람이 오는지 죽이 끓는지도 모른 채 게임에 빠진 사람을 본적도 있다. 

게임을 하는데 어떻게 실제 돈을 쓴다는 건지

레벨이 올라가면 어떤 이득이 있는 건지도 모르는

(게임 쫌 하는 사람이 들으면 뒷목 잡고 쓰러질만한) 나로서는

요즘 어떤 게임 하느냐는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하는 건지 솔직히 잘 몰랐다.

그 게임이 그 게임이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당황했고 잠시 멈칫 했었다.

게임을 하는 게 직업인 사람도 있고 만드는 사람도 있고 

집에 게임방을 꾸미는 게 소원인 사람이 함께 사는 시대에

나만 혼자 딴 세상에 사는 것 같았다. 

그래도 게임을 안 하는 건 아니다.

틀린 그림 찾기(사실, 다른 그림 찾기라고 해야 하지만)

구슬 꿰기, 가끔 사천성을 할 때도 있다. 

안 하면 모를까 제대로 빠지면 몰입하는 성향이다 보니

횟수가 제한 되어있는 데모 게임들이 오히려 적당하다.


YJ가 물어봐 주기 전에는 내가 하는 게임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글을 쓰다가 머릿속이 멍해질 때 

밥과 찌개를 안쳐놓고 끓기를 기다릴 때

해도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본어 한자숙제를 하다 지겨워졌을 때

뉴스를 보다가 보기 싫은 기사가 나올 때

나는 휴대폰을 켜고 게임을 한다.

이겨야할 상대가 없고, 쌓아야 할 점수가 없으며

달성해야할 레벨이 없어서 좋다.

인생도 그러면 좋겠다. 



애니팡을 그만 둔 K는 요즘 탁구를 하러 다닌다.

E와 I의 차이인지, 남자와 여자의 차이인지

아니면 그냥 K와 나의 성향이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참 많이 다르다.

탁구, 테니스, 축구, 농구 등 상대가 있거나 여럿이 하는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나에 비해

K는 수영, 요가, 댄스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20년 쯤 뒤에 노인정에서 

K는 예쁜 할매와 탁구를 치고 

나는 한 쪽 구석에서 돋보기를 쓰고 구슬을 꿰거나 틀린 그림을 찾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K가 나에게 탁구를 같이 치자고 손을 잡아 끌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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