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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Aug 19. 2023

진미채는 사랑이야.

오늘은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세상을 떠난 후 엄마를 기억하게 하는 음식이 있을까? 하는.

윤이 K2의 남자친구에서 가족이 되고 얼마 후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주제넘은 질문이었다.

어떤 특별한 음식을 말했다고 한들, 내가 그 것을 만들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게다가 윤은 남도 출신이라 그의 어머니 음식 솜씨는 굳이 말로 하려면 입 아플 테니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입이 짧은 윤은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는지 아니면 내게 별 기대가 없어서였는지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진미채요.”


라고 했다. 

뜻밖의 대답에 잠깐 의아했고 곧 이어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내가 진미채를 만들어 준 것이 두 번이었나 세 번이었나.

친정엄마라면 으레 떠올리는, 풀 방구리 쥐 드나들 듯하면서 딸의 집에 반찬을 해 나르는,

나는 그런 역할에 매우 서툴다.


아무튼 사위 덕분에 진미채를 만들어봤었다.

내가 만드는 음식이 맛없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으나 그렇다고 나만의 비법은 없다.

진미채 역시 그냥 먹어봤던 맛을 기준으로 고추장 물엿 등 양념을 더해서 만들었는데, 

소 뒷걸음질 치다 쥐 밟듯 맛이 제법 그럴 듯 했다.

사실 그 당시 내게 진미채는 고급 반찬으로 여겨졌었다.

오이소박이가 좋았는데 많이 먹지 못했다는 말에 K2가 왜? 라고 물었고

무심히 “할머니가 계집애가 맛있는 것만 밝힌다고 뭐라 해서.” 라고 했을 때

순간 말문이 막힌 듯 정적이 감돌아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인지 맛있는 반찬에 선뜻 젓가락을 가져가지 못하는 게 습관이 되었던 것 같다.

진미채는 그 맛있는 반찬 중 하나였다.

사실, 진미채 가격이 좀 비싸기도 하고, 콜레스테롤을 높인다든가, 희게 정제를 한 식품이라 건강에 해롭다든가 등등 이유로 정작 집에서 해 먹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사위가 좋아한다니 합당한 명분이 생긴 셈이었다. 



요즘은 K가 주기적으로 진미채반찬을 만든다.

재작년 조리사 과정을 마쳤을 때보다 작년에 00스쿨에 다닌 후 가끔 한두 가지 반찬을 만들어 시도해 보려고 한다. 

강사의 레시피북을 닳도록 들여다보면서 열무김치도 해보고 오이김치, 깍두기까지 담갔다.

몸과 마음이 휴지기로 들어간 아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해보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따른 표현으로 하자면)

책대로 하다 보니 익숙한 음식이 되는 것이 신기해서, 혹은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와이프를 보는 것이 좋아서, 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한결 낫다. 

지금까지 몰랐는데 요즘 보니 내가 꽤나 편식쟁이 인 것 같다.

식탁에 서너 가지 반찬이 있어도 건드려보지도 않는 반찬이 있는가하면

진미채는 밥을 다 먹고 나서도 맨입에 한 번 더 먹기도 한다.


“내일부터 다른 반찬은 아예 꺼내지도 말까?”


라며 툴툴거리면서도 K는 오늘도 진미채를 만들었다.


“이번엔 맛이 어떨까 모르겠네. 설탕 물엿 하나도 안 넣었어.”


음식을 만들면서 절대 간을 안 보지만, 심지어 양치를 한 후라도

K가 간보라며 넣어주는 진미채는 넙죽 받아먹는다.   


“맛있네, 이 건 반찬이 아니야. 진미채는 사랑이야.”


프라이팬을 들고 돌아서는 K가 멋쩍은 웃음을 웃었다.

조금 염치없고 조금 많이 미안하지만

당분간 편식하는데 눈치 보지 않으려고 한다.

가격이 좀 비싸면, 건강에 좀 안 좋으면 어떤가, 

좋은 건 좋다고, 맛있는 건 맛있다고 표현하면서 살아야지.


아이들이 나를 생각하며 떠올릴 음식이 뭔지는 모르지만

나는 K를 생각하면 진미채가 같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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