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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Sep 02. 2023

모두 다른 큰아버지


아기 잘 크냐고 묻자 큰 조카가 휴대폰을 뒤적거리더니 영상 하나를 내민다.

이제 22개월 됐다는, 그러니까... 친정 손주(아기를 부르는 마땅한 호칭은 모르지만 내가 그 아이에게는 대고모 할머니쯤 되려나?) 얘기다.

영상 속에서 아이는 희고 작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뭐라뭐라하고 있는데

그 말인 즉, 엄마 최고, 아빠 최고라고 하는 중이라고 한다.

요즘 새로 배운 ‘최고’라는 말 재롱에 제 엄마 아빠는 물론 주변 사람들 모두 귀여워서 깜빡 넘어간다. 

큰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였다.

아이의 영상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영정 사진 속 큰아버지 모습에 눈길이 멈췄다.

올해 93세 였으니 그리 안타까운 일은 아니라는 듯 장례식장은 침통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어쩐 일인지 나는 순간순간 울컥하며 마음이 줄곧 축축했다.


위로 누이 넷을 두고 늦둥이로 태어나 귀한 대접을 받으며 자랐다는 큰아버지는

그리 다정하거나 자상한 성격은 아니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시숙인 큰아버지를 원망하는 말을 자주 하던 엄마를 비롯해서

사촌 언니들과 오빠까지도 자기 아버지와의 사이가 그리 살갑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큰집을 좋아했었다.

큰집이지만 우리 남매들은 큰엄마네라고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나를 껌 딱지처럼 데리고 다니던 띠 동갑 작은 언니가 좋기도 했지만

세상 악의라고는 없는 것 같은, 약간의 백치미가 매력이었던 큰엄마는 

나만 보면 콧소리를 내며 아이 말투로 나를 놀리고는 깔깔 웃었다. 

큰아버지는 조카딸이 전축을 틀어놓고 하춘화 노래를 부르며 엉덩이를 쌜룩거리는 모습에

눈이 초승달처럼 가늘어지며 금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전형적인 유교보이였던 큰아버지에게서 좀처럼 웃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보던 큰엄마는 내게 자꾸 춤을 춰 보라고 시켰다. 

일을 하는 엄마대신 일찍부터 집안일을 하느라 나는 집에서는 어린이였던 적이 없었다. 

집안일을 한다고 어린이가 아닌 건 아닐 텐데

엄마에게는 딸까지 어린 아이로 보듬어줄 마음의 공간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큰엄마네 갔을 때에야 나는 비로소 아이가 될 수 있었던 거다. 



영정사진 속 큰아버지는 언제나 그랬듯 진지하고 근엄한 표정 그대로였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혼자 사시던 큰아버지에게 반찬을 해 나르느라 힘들었다 푸념하는 큰언니는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 무거운 모자를 벗은 느낌이라고까지 말했다. 

부쩍 살이 빠지고 거동이 편치 않아 보이는 언니를 보면서 나이를 가늠하다보니

언니도 거의 여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언니랑 큰아버지랑 몇 살 차이인거야?”

“몇 살이긴, 큰아버지 열일곱 살에 나를 낳았으니 열여섯 살 차이지.”

“아이고...”


새삼스럽게 모든 상황에 대한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늦둥이였던 귀한 아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자랐을 터이고

십 대에 생긴 자기 아이를 자식으로 여기기에는 너무 어렸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이런 얘기는 큰어머니 생전에 종종 들었던 말이었던 것 같다.

자기 자식은 귀여운 줄 모르다가 나이가 들어 조카딸이 눈앞에서 알쫑거리는 모습이 예뻤던 모양이라고.

큰아버지 방 커다란 전축 앞에서 춤을 췄던 것 말고는 특별히 기억나는 큰아버지와의 추억은 없다.

큰엄마를 통해서였던가 작은 언니가 말해줬던가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쯤, 

고 녀석이 이제는 가슴도 생기고 엉덩이도 켜져서 전처럼 대하기가 어렵다고 하더란다.

그리고 또 어느 날엔가는 

고 녀석이 아주 똑똑해요. 공부 시켜야겠어요.

라고 큰아버지가 그러시더라고 엄마가 말했다.

직접 들었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전해들은 얘기라도 어렸을 때 내게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큰아버지가 유일했던 셈이다.

그래서 내게 큰아버지는 특별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없는 조카들을 친 자식처럼 돌봐주지 않는 큰아버지를 평생 원망했지만

나는 그냥 큰아버지가 있는 자체로 좋았다.

오빠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남동생에게는 또 어떤 큰아버지 였을지 알 수 없다.


얼마전,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큰아버지를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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