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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Sep 17. 2023

잡풀인줄 알았더니


지난 봄, 잡풀이 무성하던 하천 둔치를 평평하게 고르는 작업을 하는 것을 보았다.

매일 그 곳을 지나느라 본의 아니게 작업의 진행상황을 확인하는 셈이 되었다.

얼마 후 잡풀이 있을 때와는 다르게 꽤나 넓은 평지가 만들어졌다.

며칠 뒤에는 작업자 몇몇이 둘씩 짝을 지어 기다란 파이프로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냈다.

다음 날에는 산책로 옆에 모종이 든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런데 박스의 앞 뒤 옆면을 아무리 돌아봐도 그 것이 무슨 모종인지는 표시되어있지 않았다.

뭔지는 몰라도 인력을 동원해 땅을 고르고 모종을 심는 작업이니 여름쯤에는 꽃이 피든 열매를 맺든 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생각보다 작업은 빨리 진행되지 않았다.

비가 와서 모종이 들어있는 박스가 젖어 일부는 무너져 내리기도 했으나 

비가 그치고도 한동안은 그렇게 방치되어있었다. 

급기야 어느 날엔가 일본어 수업을 마치고 그 곳으로 걸어서 지나는데

옅은 색의 가느다란 모종이 심겨있었다.

앞의 과정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냥 잡풀로 느껴질 만큼 그 식물은 평범했다.

K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한 번씩, 대체 뭘 심은 걸까? 보린가? 갈대를 심었나? 혹시 벼 아냐? 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여름이 다 지나도록 꽃도 열매도 달리지 않았다.

그 사이 태풍도 왔었고 폭우와 폭염이 이어졌다.

둔치까지 물이 찼던 흔적이 풀잎에 그대로 남아있는데도 그 것들은 조금씩 자랐다.

그리고 가을의 문턱이라는 구월이 되었지만 한낮의 기온은 여전히 30도를 오르내리던 어느 날, K와 그 곳을 걷다가 개풀 이야기를 했었다.

봄에 심은 풀 사이로 그 개풀이 듬성듬성 보였다.

잡초려니 했다.



개풀은 점점 많아졌다.

일부러 심어 놓은 밭에 잡초가 더 무성하네, 라고 생각하다가 무심히 밑 둥을 따라 내려가 보니 그 곳에 심었던 모종에 닿았다.

그 것이 모두 개풀이었다.

개풀은 심지어 수크령이라는 엄연한 이름도 있었다. 

그 것이 일부러 공을 들여 땅을 고르고 구멍을 내어 모종을 심어서 생기는 것인 줄 몰랐다.

어차피 들일 공과 비용인데 이왕이면 예쁜 꽃이나 열매가 자라는 식물을 심지 왜 하필 수크령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물어볼 곳도 없고 물어볼 의욕도 없어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아마도 둔치에 심으려니 물이 차거나 바람이 불 때 쉽게 쓸려 내려가지 않는, 뿌리가 튼튼한 종류의 식물이 그것이 아닐까 라고.

하다못해 비용이 가장 저렴해서라고 하더라도 어떤 것에도 이유가 없는 일은 없다. 




가끔, 나는 왜 태어났을까, 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

혼자서 아이 셋을 키워야 했던 엄마가 

둘이었다면 그나마 덜 어려웠을 것을 셋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아무것도’에는 재가도 포함되어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둘이었다면 뭐가 됐든 부담이 덜 했을 것 같은데

셋은 어쩐지 거추장스럽고 번잡하게 느껴진다.

셋 중 하나가 없어야 한다면 그건 나라는 생각이 왜 들었는지 모르겠다.

순하고 무던한 성격의 아들들과는 다르게 예민하고 뾰족한 성향의 딸이 엄마에게는 많이 버거웠는지 어쩌다 단체 기합이라도 받는 상황이 되면 


“항상 니가 문제야 니가. 너만 아니면 무슨 걱정이 있겠니?”


라고 했던 엄마의 말이 칼끝이 되어 가슴에 꽂혔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 것이.


최근 고관절 골절로 수술을 받은 엄마는 퇴원 후 재활을 위해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4년 전 반대쪽 골절로 입원했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서

면회도 예약을 해야 가능하고 만나는 시간도 십오 분으로 제한된다.

한 번 쯤 입원 해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언어 ‘병원 밥이 맛이 없다’

하여 반찬을 만들고 찰밥을 지어 면회를 갔다.

엄마의 상태는 생각처럼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묻어두고 이제부터 엄마와 좋은 기억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건 나물이고 이건 불고기고... 해 가지고 간 반찬을 얘기하고 있는데

엄마는 마뜩치 않다는 듯 시큰둥하게 밀쳐놓는다.

마음 안에서 뭔가 바사삭 소리를 내며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엄마하고는 안 되나봐.”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혼자소리처럼 나온 말에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개똥도 필요한 곳이 있고

개풀을 일부러 심기도 하는데

내가 세상에 온 이유를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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