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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Feb 14. 2023

나는 할매 돼도 고집부리지 않을게


“왜 좋은 길 놔두고 그리 가려고 그래요.”

“!@#$%^&”


공원을 걷는 중이었다.

뒤에서 들리는, 좋은 길 놔두고 왜 그리 가는지, 소리에 나도 궁금해서 돌아보았다.

젊은 여자와 나이든 여자가 산책을 하는 중인 모양으로 둘의 관계는 모녀간이 아닐까 짐작했다.

칠십 중반에서 팔십 초반으로 보이는 나이든 여자는 딸의 잔소리와 상관없이 

보도블록이 깔린 산책로와 나무가 있는 흙 땅의 경계석 위에 이미 성큼 올라서 있었다. 

설마 평균대 위를 걷는 것처럼 경계석을 따라 걷겠다는 의미인가 싶어 덩달아 걱정이 됐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내 갈 길로 접어들었다.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다행히 경계석 위를 걷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늙은 엄마는 흙을 밟고 싶다고 했을 테고 딸은 거친 길을 걷다 행여 넘어질까 우려가 됐을 터다. 

모녀는 나무가 있는 흙 땅을 밟으며 걷고 있었는데 짧아도 삼십년은 넘은 나무들의 뿌리가

이리저리 구렁이처럼 돌출되어있어 자칫하면 발끝이 걸려 넘어지기 십상일 것 같았다. 

‘좋은 길 놔두고 대체 왜...’

나도 모르게 아까 딸이 했던 말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고집스러운 엄마, 어제 통화 중 들었던 시누이 목소리와 묘하게 겹친다.



“우리 엄마 고집이 저렇게 센 줄 난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새해 첫 소식은 시어머니 입원으로 시작했다.

골다공증에 당뇨를 오래 앓고 있던 엄니가 집 안에서 넘어져 고관절 골절이 됐다고 했다. 

걸렸거나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그랬다.

올해 여든여덟이 되신 어머니는 수술을 받고 회복중인데 간병인은 싫다고 해서

같이 사는 시누이가 직장까지 쉬면서 시중을 들게 됐다.

어제는 병원비 의논을 하느라 시누이와 통화를 했다. 

서로 고맙고 미안한 얘기를 나누다가 어머니의 고집얘기로 흘렀다.

병원 밥은 맛이 없다며 입에도 대지 않으시고

집에서 끓여온 국도 병아리 눈물만큼 밖에 드시지 않으며

옷 갈아입으러 집에라도 잠깐 다녀오면 왜 이렇게 늦느냐며 성화를 하신다고 한다.

병실을 옮기느라 짐을 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는

눈물까지 그렁그렁해서는 나 요양원 보내려고 그러느냐며

요양원은 절대 안 간다고 완강하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퇴원을 하면 재활병원으로 가야한다고 했더니

죽어도 싫다며 집으로 간다고 고집을 부리신다며 시누이가 한숨을 푹 쉬었다.

이러라고도 저러라고도 할 수 없어 같이 맞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언니들이 참 많이 힘들었겠다 싶었어요. 내가 며느리였다면 우리엄마 못 견뎠을 거 같아요.”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온 공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어머니가, 편하신 분이 아니긴 하죠. 상처도 많이 받았고 주눅도 들었지만 지금 힘없이 앙상한 모습으로 앉아계신 모습을 보니 지난 생각은 하나도 안 들고 안타깝고 짠하고 그래요.”


그리고는


“그래도 나는 할 말은 다 해요. 엄마가 고집 부리면 식구들이 다 힘들어지는 거라고. 

그런데도 부득부득 집으로 가신대요. 아 난 진짜 우리엄마가 그렇게 고집이 센 줄 몰랐어요. 엄마는 만날 아부지 고집 세다고 뭐라하셨는데 아부지는 댈 게 아니에요. 와... 고집 고집.”


라며 거듭 진저리를 친다. 




고집하면 어디 가서 절대 쳐지지 않는 내 친정엄마를 비롯해서

왜 나이가 들면서 고집은 나이보다 앞서 단단해지는 걸까?

언제 한 번 아이하고 나른한 햇살 아래 앉아 시간 지나가는 얘기를 하게 될 때 미리 말해 둬야 할까보다. 


‘나는 말야, 이 다음에 할매 돼도 절대로 고집부리지 않을게. 

요양원, 가라면 가고 지팡이 짚으라면 짚을게.’


딸은 그 말을 믿어줄까?

믿어준다고 한 들 과연 나는 고집부리지 않는, 양처럼 착한 할매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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