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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Sep 19. 2023

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히 아침을 먹고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이 곳이 좋은 이유 중 또 하나가 주변에 커다란 공원이 많다는 점이기도 하다.

오늘은 방에서 내려다보이는 새섬으로 나갔다.



이른 시각이라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억새 모양을 만든 것일 거라 짐작되는 다리 조형물을 지나 섬 안으로 들어섰다.

작년에 왔을 때는 공사 중이어서 다리까지만 건넜다 되돌아갔었다.

며칠 동안 세찬 소나기가 내렸다 멈췄다를 되풀이해서 였는지

바닥은 젖어있고 군데군데 물웅덩이도 생겨있었다.

지금 비가 오고 있지 않는데도 나뭇잎에 맺혔던 빗방울이 바람이 불 때마다 후드득 쏟아졌다.

돌 타일을 깔아놓은 구간을 지나 맷돌 보도블럭을 지나고 나니 ‘순방향’이라고 적힌 화살표가 보인다. 데크를 깔아놓은 산책로인데 나무가 무성해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 마치 터널 같았다.

으스스한 느낌에 잠깐 멈칫 하다가 용감하게 걸어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숲이 무성해 어두워졌고 길이 완만한 S자로 휘어지는 구간에 도달했을 때까지도 주위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이 온통 축축하고 바닥에는 젖은 나뭇잎이 즐비하고 양 옆으로는 나무와 풀이 얽힌 숲이다.

그 순간 몇 걸음 앞에 기다란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고 그 것이 뱀이라는 확신과 동시에 발걸음은 자동으로 되돌아서 걷는 것처럼 뛰었다. 

‘맞아, 분명 뱀이었어. 비가 와서 축축하면 뱀도 밖으로 나온다잖아.’

들어갈 때 속도보다 세 배쯤 빠른 속도로 데크길을 빠져나왔을 때 앞에서 부부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얼핏 눈이 마주쳤나? 아닌가? 나는 괜히 민망해서, 아침 일찍 나와서 이미 한 바퀴 돌고 돌아가는 사람처럼 걸음걸이를 느긋하게 고쳐 걸었다. 

그 즈음에 다리를 건너오고 있는 사람, 그 앞에 낚시 장비를 메고 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순간 갈등을 했다.

‘그냥 갈까? 그래도 이왕 나왔으니 한 바퀴 돌고 갈까?’

코로나를 겪어본 경험으로 내일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아나 싶어 머쓱하게 다시 걸음을 돌렸다.

아까 그 자리에 뱀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나뭇가지를 잘못 봤을 수도 있겠고 물 호스를 보고 놀랐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영어수업시간에 강사가 도시와 시골 중 어느 곳에 살고 싶으냐는 질문을 했다.

나는 시골에 살고 싶었는데 포기했다고 말했다.

왜냐고 묻길레 뱀 때문에 라고 말했더니 강사와 수강생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뱀이 무서운 거냐 그냥 싫은 거냐 물어서 둘 다라고 말했다.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7년 쯤 전이었다.

시댁 마당 수돗가에서 시어머니와 채소를 씻고 있었다.

어머니는 안 쪽에, 나는 가장자리 낮은 콘크리트 턱 위에 앉아있었다.


“엊그제 거기, 초록색@#$% 있더라.”


나는 쥐보다 뱀이 더 싫은데 K는 뱀은 괜찮지만 쥐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더라는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안 그래도 낮은 목소리의 어머니 말소리를 잘 못 들을 때가 많았는데 물소리 때문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언뜻 초록색이라는 말은 들은 것 같아 별 생각 없이 


“네에”


하고 태평한 표정으로 씻은 채소를 건져 올렸다.


“며칠 전 새벽에 나오니까 거기, 너 앉은 자리에 뱀이 앉아있더라고, 초록색 뱀이.”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아 메뚜기처럼 튀어 올랐다.

그 때부터였다. 상상으로나마 시골에 살기를 포기한 것이.


K는 뱀이 뭐가 무섭냐면서도 쥐는 햄스터도 싫다고 한다.

나는 쥐도 싫지만 뱀은 질색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또 그렇다.

어렸을 때 친구 집에서 놀다가 생쥐 한 마리가 주머니 속으로 툭 떨어졌던 트라우마가 있는 K는 그렇다 쳐도, 뱀에 물리거나 공격을 당한 적도 없는데 내가 뱀을 싫어하는 건 

뱀의 입장에서 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기도 하겠다.


뱀: 그 참, 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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