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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Oct 02. 2023

너 친구 없지?


“어느 모임에나 폭탄 하나씩은 꼭 있게 마련이야.”

“그래, 그런 거 같더라.”

“그런데 만약 아무리 봐도 그런 사람이 없다면...”


A는 그 부분에서 숨을 한 번 고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바로 내가 폭탄이 아닌가 생각해봐야 해.”


라고 말하고는 깔깔 웃었다.


“잘 생각해봐. 자주 만나던 사람에게서 요즘 연락이 뜸하지는 않은지.”


A는 부산에 살게 되었을 때 사진 강좌에서 알게 된 친구였다. 

커다랗고 검은 눈망울을 가진 그녀는 수필가라고 했는데

자그마한 체구에는 살짝 버거워 보이는 콘탁스 풀바디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남편 직장 발령 때문에 시작된 갑작스러운 타향살이가 낯선 내 상황이

자신의 오래전 모습과 닮았다며 이것저것 마음을 써주었다.

정작 강좌기간에는 말 한마디도 건네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수료 후 촬영 여행을 다니면서 부쩍 가까워지게 되었다.

무덤덤한 남편과 아이 둘을 가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사는 그녀가 

수필가 이면서 그림도 수준급이라는 것이 한 편으로는 뿌듯하고 한 편으로는 질투가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쩌면 A덕분에 나도 글을 쓸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으며 여행에 대해 용감해 졌는지도 모른다.

비슷한 일상을 산다고 했지만 사실상 그녀는 나보다 훨씬 큰 통찰력을 가졌고

넓은 시야를 가졌으며 마음씀씀이가 깊었다.

아이들 어릴 때 아이 친구 엄마를 알게 되는 경우 말고는 성인이 돼서 친구를 새로 만나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친구가, 그것도 A같은 유능한 사람과 친해졌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가끔은 믿기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내가 부산을 떠난 이후에도 강원도 양떼 목장으로 촬영 여행을 했고 세 번이었나? 제주도에도 갔었다. A가 서울 친정에 왔을 때 만나 영화를 보기도 했고 내가 부산에 갔을 때는 해운대 바다에서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몰랐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오래오래 같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게 될 줄 알았다.

그녀의 말처럼, 잘 생각해보니 자주 만나던 그녀에게서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몰랐다.

마음 안에서는 이유일지도 모를 많은 생각들을 떠올려 보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지만 끝내 A에게 물어보지는 못했다.

연락을 끊은 것은 A이고 그런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였기 때문이다. 

이 후로도 비슷한 상황이 몇 번 더 있었다.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됐던 B가 그랬고

영어 교실에서 만났던 C와는 제주도 여행 후, 내 카톡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최근에도 있었다.

삼십 년이 다 되어가는 인연이 이미 오래 전에 끊어졌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어찌어찌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게 신기하다고 쓴 적이 있었다.

D역시 여행에서 돌아온 후 연락 두절이 되었다.

이쯤 되면 내가 폭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공감능력이 떨어져 사람들과의 대화에 끼지 못하거나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자기 말만 하는 사람에게 


“너 친구 없지?


라고 하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그 친구 없는 사람이 내가 될 줄은 몰랐다.

내 년에 있을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어머니 손님은 몇 분으로 잡으면 되냐는 아이의 물음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틀 전, K의 친구 Y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소주 한 잔 하자며 나도 같이 나오라고 했단다.

내 친구와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부름이라 단걸음에 따라 나가 소주에 맥주를 말아 마시며 잔뜩 흥이 올랐다.

앞에 앉은 사람이 남편친구인지 내 친구의 남자친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같이 술 마실 친구가 있어서 좋고 나를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하지 않고 얘기에 맞장구를 쳐 주어서 좋았다.

친구를 배웅하고 K와 걸어서 집으로 오는 길에 마음속 진심이 툭 튀어 나왔다.


“자기는 좋겠다. 친구가 많아서.”


마음속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말로 나오고 나니 어쩐지 더 쓸쓸한 기분이 되었다.

밤공기가 쌀쌀했다.

추석날 보지 못했던 달이 살짝 찌그러진 모양으로 제법 밝게 걸려있었다.


‘뭐 어때, 혼자면 또 어때서. 이대로도 괜찮아.’


라고 마음속으로 우겨 보지만 가슴 한 켠이 휑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 가을 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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