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숙 Oct 04. 2023

헌신짝 버리기, 쉽지 않아


아침 공기가 서늘해져서 걷기운동하기가 좋은 계절이 됐다.

K는 탁구 수업이 있는 날이라 오늘은 나 혼자 집을 나섰다.

단지 옆 초대형 건물을 지나 다리를 건너 천변으로 내려 설 때까지 횡단보도 신호가 딱딱 맞았다.

평소 같으면 13분쯤 걸렸을 지점을 10분 만에 지나치고 있었다.

문득 엄지발가락 끝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K와 같이 걸을 때 이미 발견했던 운동화에 생긴 구멍이었다.

걷기 코스를 마치고 집 근처 카페에 앉아 있을 때 

발가락 끝이 시원해서 보니 구멍이 났더라고 말했다.


“그 참 그 신발 좀 이제 버리라니까!”


벌써 K가 네다섯 번 쯤 했던 말이다.

그 때마다, 알았다고 했고 오늘 운동 마치고 집에 가면 버릴 거라고 했지만

집에 들어서는 순간 까맣게 잊고

집에서 나올 때면 번번이 무심결에 그 신발을 신고 나오게 된다.

이미 양쪽 발볼이 접히는 부분은 해진지 오래됐지만 발가락 끝에 구멍이 나기는 처음이다.

소재가 천이라 더 빨리 상하는 모양이라고 했고

K는 처갓집 식구들 발가락 끝이 위로 솟은 모양이 닮아서 그런가보다고도 했다.

엄지발가락이 세상구경 좀 하겠다고 머리를 내밀었다고 해서 핏줄까지 운운하는 상황이 어이없으면서도 웃겼다. 

생각해보니 엄지발가락이 탈출을 시도한 신발은 그 날 신은 것뿐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사 본 신발 중 가장 화려한 컬러의 디자인인 S브랜드의 일상화도 메시소재였는데

그 건 무려 11년 전 미국에 살 때 샀던 신발이었다.

내 신발 중 가장 화려하기도 했지만 세상 편안한 신발이었기 때문에 아껴 신었고 그래서 아직 새 신발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 신발은 신발일 뿐이라서인지 그 사이 색도 바랬고 탄력도 줄었으며 심지어 오른쪽 엄지발가락 부분이 하얗게 구멍이 생기고 있었다.

예쁘고 편한 신발이라는 이유 말고도 그 신발이 딛고 다녔을 미국에서의 시간들을 버릴 수 없어서 그 것을 버린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오래 전의 영화에서 연인을 배신한 남자에게 


“어떻게 그렇게 헌신짝 버리듯 버릴 수가 있냐.”


는 대사가 자주 등장했었다.

헌신짝을 버린다는 것은 더 이상 아무런 애정도 미련도 없다는 의미이므로

버려진 여자는 절망과 분노이후 결국 체념하거나 복수의 칼을 갈게 되던가?




옷을 사면 바로 상표를 떼고 착용을 하거나 수선을 맡기고

신발을 사면 태그는 물론 박스와 보형재 등까지 다 매장에 버려두고 신발만 쇼핑백에 넣어오는 K는, 내 쇼핑 사전에는 반품이나 교환 따위는 없다는 결의라도 보여주는 것 같다. 

살 때 그렇듯 버릴 때도 미련 따위는 가지지 않는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성향이면서도 일단 버리기로 결정을 했으면 바로 그 날로 사라진다.

그런 상황이고 보니 

이미 늘어지고 해지고 심지어 바닥까지 맨질맨질하게 닳은 내 신발을 볼 때마다

신발 좀 버리라는 말을 노래처럼 해 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는 팬 놈만 패거든.”


알았다고 버린다고 말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내가 말했더니 K가 웃었다.


“청바지가 다섯 개 있어도 편한 놈만 무릎이 나오도록 입고, 어느 음식에 꽂히면 매일 그것만 먹어도 살 수 있거든.”


실제로 지난여름에는 콩국수에 꽂혀 일주일에 네 번을 먹은 적도 있었다.

재작년엔가는 K가 만들어주는 들기름막국수에 꽂혀 매일 먹느라 들깨 한 말을 기름을 짜 온 적도 있었다. 그 해에는 집에 애들이 와도 동생 식구가 왔을 때도 들기름 막국수만 먹었다. 



버렸어야 했는데 결국 오늘도 그 신발을 꿰어 신고 나왔다.

어쩌겠나.

가장 늘어지고 해진 신발이 내 발에는 가장 편하니.

헌신짝 버리기, 결코 쉽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 너 친구 없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