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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Oct 06. 2023

내 편 먹어준 사람


초등학교 때 조회시간이었다.

키가 너무 일찍 커버리는 바람에 앞줄에 앉아 본 적이 없었는데 조회시간 역시 거의 뒷줄에 서서 앞에 선 아이들의 뒤통수 구경만 하던 때였다.

특히 내 앞에 선 남자아이는 항상 털실 방울이 달린 털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 아이에게서는 늘 옥수수죽 같은 냄새가 났다. 

그 날도 조회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면서 보이지도 않는 앞 쪽을 향해 서 있었는데 두 줄 앞이 수런수런했다. 그 줄에는 약간의 장애가 있는지 말투나 행동이 어눌한 M이 있었다.

말이 거의 없는 아이였는데 인중에는 늘 누런 코가 맺혀있었고 입 주변에는 허옇게 버짐이 피어있어 어쩐지 추워 보인다고 생각했었다. 


“야, 너 오늘 세수 안했지?”

“......”


M의 앞줄에 있는 아이가 묻자 M은 웃는 건지 찡그린 건지 구분이 안 되는 얼굴로 멀뚱히 서있었다.

옆에 섰던 아이가 또 물었다. 


“눈곱 꼈어 너. 어우 더러워.”


보고 있기도 불편했지만 나서서 말릴 용기도 없어 그냥 눈길을 허공에 두고 있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와락 내리 누르듯이 쳤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저절로 ‘악’ 소리가 났다.


“야! 누가 내 동생한테 뭐라 그래. 너 네들은 얼마나 깨끗해서!”


말리지 못한 것도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만 놀린 애들은 따로 있는데 가만히 있다가 봉변을 당해 얼떨떨하면서 한 편 억울하더니 그 다음에는 서러웠다.

동생의 행색하고는 다르게 M의 언니라는 사람은 말끔하고 단정한 외모에 매우 야무져 보였다.


“니들 한 번만 더 우리 M 놀리면 가만 안 둔다.”


M의 언니가 으름장을 놓고 돌아섬과 동시에 조회가 시작했다.

언니를 눈길로 좇았지만 순식간에 아이들 사이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화끈거리는 어깨를 만지는데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M은 좋겠다. 저렇게 든든한 내 편이 있어서.’



그룹으로 만나는 친구 모임은 없고 한 명씩 속 얘기를 하는 친구는 있다.

극히 드문 상황으로 G시에 살 때 네다섯 살 위 언니들 셋과 자주 만나던 적이 있기는 했다.

사진 모임을 명분으로 만났는데 언제부터인가 사진은 뒷전이고 수다가 더 길어졌다.

동네 친구이다 보니 때로는 집에서 입던 옷차림으로 그냥 나갈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슬리퍼를 신고 나간 적도 있었다.

함께 하는 것도 참 좋구나 했었다.

그런데 C언니와 나 사이에 뭔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무책임한 말인지 모르지만 나는 영문을 몰랐고 C의 나를 향한 공격은 시간이 갈수록 강도를 더 했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때 나는 몹시 억울했고 그래서 답답했다. 

그냥 있을 수도 도망칠 수도 없어 마음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 때

초등학교 조회시간 때 M의 언니처럼, 나와 C사이에 나타나서 내 편을 들어준 사람이 B였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에서는 난생 처음 내 편이 생긴 것 같은 느낌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넷이 좋은 사이였지만 사실상 모른 척 해도 그만이었다.

더구나 B는 넷 중 남 일에 관심 없을 것 같은 사람 첫 번째처럼 보였다. 

맺고 끊음이 분명하고 싫고 좋음 또한 확실해서 때로는 

그의 사이다 같은 돌직구를 들을 때면 간접적으로 내 속이 다 시원할 때도 많았다.

B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르지만 내게 언니는 나랑 편먹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편먹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마음 든든한 일이다.

B에게서는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전화가 온다.

왜 연락도 안 하느냐고 타박하지도 않고, 속을 알 수 없을 만큼 표현에 서툴러도 나무란 적 없다. 

그렇게 벌써 이십 년이 되어간다. 

내 편이 있다고 섣부르게 설레발치지 않으려고 한다.

내 편에서 멀어질까 봐 미리 두려워하거나 조바심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지금처럼 천천히 가끔 자주 오래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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