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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Oct 09. 2023

K선생은 이제 무슨 낙으로 사나?


아침 식사를 보통 여섯 시에서 일곱 시 사이에 한다.

출근을 하거나 밭 매러 갈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

그나마 여섯 시에 아침을 먹는 것도 새벽 네 시면 눈이 떠진다는 K가 많이 참아준 시간이다.

퇴직 후 처음에는 출근물이 덜 빠져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벌써 오 년 차이니 새 물이 들어도 한참 전에 들었어야 할 터였다.

그러자니 나까지 덩달아 새벽밥을 먹느라 열 시쯤이면 슬슬 배가 고파지기 일쑤다. 

그런데 근래 들어 K가 자주 늦잠을 잔다.

몇 번인가 여섯 시 반을 넘기더니 어느 날은 일곱 시, 급기야 이틀 전에는 여덟 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아시안 게임이 K를 늦잠자게 만들었던 것이다.

모든 방송사 마다 스포츠 중계를 하느라 방송 시간도 뒤죽박죽이 되고 결편이 되거나 시간이 옮겨지는 바람에 그나마 있던 TV에 흥미를 잃은 나와는 달리

이 채널 저 채널 바꿔가며 우리 선수들이 출전하는 대부분의 경기를 보느라

K방에 TV하나 더 놓아드려야(?) 할 지경이었다. 


“그게 그래 재밌나?”

“그럼~ 우리나라가 참여하는데 응원이라도 해줘야지. 이게 다 애국이야.”

“.......”


아닌 게 아니라 오며 가며 흘깃, K 어깨 너머로 찔끔, 저녁 식사 후 잠자기 전 까지 같이 앉아있느라 본의 아니게 TV로 눈길이 향했을 때 우리 팀 점수가 올라가면 


“와! 잘한다!”


소리가 저절로 나오고 혹여 연거푸 점수를 잃으면


“에구에구 애만 쓰고 지겠네. 우짜 쓰까잉.”


라며 추임새가 방언 터지듯 나온다.

모름지기 스포츠 중계를 즐기려면 매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의연하게 기다릴 줄 아는 성품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 같다는 깨달음까지 얻었다.

배드민턴 경기를 볼 때였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랠리를 보다가 도저히 가슴이 쫄려서 못 보겠다고 했다.

탁구도 펜싱도 역도도 그랬다.

그래도 수영 경기 장면은 멋졌다.

우리 선수가 압도적으로 앞서는 상황이라서 이기도 하겠지만 물살을 가르며 쭉쭉 뻗어나가는 경기 장면에 내 마음이 다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이 건 쫄리지 않으면서 볼 수 있겠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K의 말에 화면을 보니 양궁 경기가 진행 중이었다.

언젠가 한 선수가 방송에서, 양궁을 좋아하는 이유를

‘상대선수나 판정의 변수가 없이 오직 자신의 기록에만 달려 있어서’라고 말했었다.

내가 스포츠든 게임이든, 을 즐기지 못하는 이유가 대상이 있는 경쟁을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와 비슷한 것 같아 공감이 됐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 선수의 화살은 연속 10점에 꽂히는 데 비해 우리선수의 것은 세 번 연속 9에 꽂힌다.


“우씨... 누가 양궁은 안 쫄린다고 했어.”


이제까지 봤던 경기 중 가장 조마조마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부상투혼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를 보면서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가 걱정이 됐고

실수를 한 선수를 보면서는 동료들한테 미안해서 기죽으면 어째, 하는 나와 달리

K는 


“에잇! 그 것도 못 넣냐?, 어라? 넋 놓고 있네?” 


라며 금방이라도 TV속으로 뛰어 들어갈 기세다.

축구와 치맥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인 채

우리 선수들의 선전으로 경기가 계속 이어지느라 

K가 치킨에 쏟아 부은 돈과 뱃속으로 쏟아 부은 맥주덕분에 

그의 배가 불룩해져 있었다.



안 본다고 하고도 집 안에 종일 켜져 있는 TV 덕분에 

결국 나도 각 종목을 대부분 구경은 한 셈이 됐다.

어제는 폐막식이 중계 되고 있었다.


“이제 K선생은 무슨 낙으로 사나?”


올림픽은 내년에나 열릴 테고 야구경기를 중계방송으로 보는 것은 즐기지 않는다고 하니

당장 다음 날부터 K가 뭘 할지 진심 궁금해서 물었다.


“아, 뭐 축구도 있고 국토 종단 걷기도 할 거고 패러글라이딩도 해야 하고 내가 아주 바빠.”

“머, 그... 그러면 다행이고.”


나도 참... 별 걱정을 다 했네

K선생은 다 계획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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