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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Oct 10. 2023

캘리포니아에서 일박



MZ세대란 1980~1990의 밀레니얼세대와 1990 중후반~2010년대 초반 생을 묶어 부르는 말이라고, 그리고는 한 세대라고 말하기에는 그 기간이 너무 길어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말까지 덧붙여 동생이 하는 설명을 두 번째 들은 것 같다.

그렇다고 그걸 기억해서 내가 또 MZ의 의미에 대해 남한테 설명할 수 있냐하면 그건 아니다.

89년생과 91년생, 우리 아이들이 그 기간에 속해있으니 나는 그냥 우리 애들 세대려니 한다.

386이라고 부르다가 어느 무렵 486이 되더니 그 다음에는 586이라고도 하고 펜티엄이라고도 했던 것 같기는 한데 686세대라는 말은 들어본 적 없으니 사실상 나는 세대를 이르는 용어에서조차 멀어진 세대가 되었다. 


K2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이폰 15가 난리라며 예약이 이미 끝났다는 얘기, 양쪽 할머니들 근황에 대한 얘기 등등 하다가 올해 12월로 예정 되었다가 어쩌면 눈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며 내년 3월로 연기한 생일 여행얘기로 옮겨갔다.


“날짜가 정확히 며칠이지?”

“글쎄 너무 미리 예약을 해 놔서 변경한 거만 알지 정확한 날짜가 기억이 안 나네?.... 

7일부터 10일까지네.”

“아 그래, 캘박해야겠다. 맞지 캘박.”

“오올~~~그런 말도 알아?”


소리는 내지 못하고 속으로 ‘훗’ 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요즘 자주 여는 어플에 각종 테스트에 참여하면 포인트를 주는 광고가 있다.

그런 광고는 대체 어디에 쓰이는 건지 모르지만

아이큐부터 한글 맞춤법능력, 자존감 테스트 등 오만가지 자가테스트 문항이 나온다.

그 중에 나의 MZ력은? 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거기에 캘박이란? 이라는 질문이 있었다.

다른 건 기억이 안 나는데 객관식 문항 중

‘캘린더에 박제’라는 문장과 ‘캘리포니아에서 일박’, 이라는 보기가 눈에 들어왔다.

캘린더 박제는 눈치로 때려잡은 것이고 캘리포니아에서 일박이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설렜다.

나의 MZ력 테스트 결과는 ‘시조새’로 나왔다.

어찌어찌 눈치로 넘겨짚은 한두 개를 빼고는 뭘 묻는 건지 질문조차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맨 마지막 문항에는 여자 아이돌 그룹 사진 네 컷 중에서 뉴진스를 찾으라고 했다.

전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하던 BTS 멤버들의 이름과 얼굴도 이제야 겨우 매치가 되는 수준인데

어떻게 뉴진스, 르세라핌을 알아볼 수 있겠나. (이러다 팬클럽에서 돌 날아올 수도...)  

TV에 아이돌 그룹이 나올 때마다 K는 말한다. 


“다 똑같이 생긴 것 같아. 누가 누군지 모르겠어.”


맞다, 그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얼굴이 작으며 노래를 잘하고 춤도 상큼하게 잘 춘다.


MZ세대 말을 다 아냐며 K2가 감탄을 하는 동안에도 그 세대의 말은 계속해서 바뀌거나 새로 만들어지고 있을 터다.

그 것은 흡사, 빠르게 올라가는 단톡방에서 내 말을 쓰다보면 이미 화제가 바뀌어 있는?

그런 상황과 비슷하다.


TV에 결혼 7년 차의 신중하고 섬세한 남편과 해맑고 긍정적이며 급한 성향의 아내가 나왔다.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남편은 둘 사이에 놓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는데

창밖에서 불꽃 피어오르자 해맑은 아내는 집중력을 잃고 불꽃을 보며 환호 한다.

다시 분위기를 돌려 대화를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드론으로 장식되는 화려한 밤바다 풍경에

아내가 새 된 소리를 지르자


“내가 얘기하잖아. 어딜 보니?”


같이 보던 K가 찔리는 구석이 있었는지 큭큭 웃으며


“누구랑 똑같네 똑같아.”


한다.

그 부부의 얘기는 새벽 세 시까지 이어졌다고 했는데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는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MZ의 언어를 안다고 해서 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각각의 논리가 다른데, 대화를 이어간다고 해서 양쪽이 만족한 해결점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K가 AB형의 성향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포기가 됐고

나는 I인데 그는 E라서 그런가보다 하니 조금 이해가 됐으며

결정적으로 이성적인 T와 감성적 성향이 강한 F의 차이라 생각하니 비로소 편해졌다.

조금 더 일찍, 남편이 내 말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기 전에 나와 달라서 그런 거라는 걸 알았으면 좋을 뻔했다.

MZ 언어를 몰라도 아이들과 대화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내 생각일 뿐인지 모르지만)



그나저나 캘박은 몰라도 

캘리포니아에서 일박은 자꾸 생각이 난다. 

이왕이면 일박이 아니라 삼십 박 쯤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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