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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Oct 12. 2023

돌아와서 다행이야.


그 식당은 입주를 위한 내부 수리를 할 때부터 독특했다.

보통은 공사 마무리 이 후 간판을 다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그 곳은 제일 먼저 간판부터 달아놓고는 그 것을 천막으로 꽁꽁 싸서 가려 놓았었다.

궁금증 유발을 의도했었다면 성공이지만 오픈 할 때까지 관심 받지 않기를 원한 것이었다면 완전한 실패다.

한 칸에 한 점포가 입주하는 것에 비해 그 집은 가운데 벽을 허물고 두 개 점포를 합쳐놓은 규모인데다 이층까지 올리는 모양으로 공사 기간도 꽤 오래 걸리고 있었다.

그 앞을 오고가는 사람들마다 한 번씩 기웃거림은 물론, 남 일에 관심 없는 K조차 


“뭐가 생기려고 그러나?”


라며 궁금증이 생겼으니 말이다.

자세히 따져 본 건 아니지만 얼추 석 달에 가까운 공사 기간을 걸쳐 지난 6월에 드디어 간판이 옷을 벗고 “짠” 하고 모습을 드러낸 그 곳은 중국식당이었다.

오픈 하고 일주일 쯤 지났을 때 점심을 먹으려고 그 집에 갔다.

식탁에 주문 결제 포스가 있었으나 고장이라며 메모지를 들고 와서 주문을 받았다.

중국집 음식 맛의 기준은 뭐니뭐니해도 자장 짬뽕이 아니겠냐며 하나 씩 주문했다.

아주 특별하지는 않아도 최소한 인근 자장면 집 보다는 나았다.

집에서 가깝고 새로 개업해서 깨끗하니 자장면은 여기로 먹으러 오면 되겠다고 했다.

그 다음 날에는 건물에 입주한 직장인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의 메뉴를 요일마다 지정한 시간표를 붙여 놓았다.

며칠 후엔가는 요리와 맥주를 세트로 묶어 할인을 한다는 천으로 만든 간판도 붙였다.

외부 디자인이 촌스럽다, 그래도 주변 분위기가 활발해진 것 같아 좋다, 등등 

K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한 마디 쯤 주고받고는 했는데

요리와 맥주를 묶은 메뉴를 홍보한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시점에 

굳게 닫힌 양쪽 출입문에 A4용지에 인쇄 된 ‘휴무’ 라는 글자가 붙었다.

7월을 지나고 있었으니 조금 이른 휴가를 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 주쯤 지났는데 그 곳에는 불이 켜지지도 않았고 휴무라는 글자는 여전히 붙어있었다.

한 달쯤 지났을 때에는 (전에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건지 모르지만) 홀의 의자들이 청소 대형으로 테이블위에 뒤집혀서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두 달, 석 달이 지나는 동안 어느 날은 도시가스 검침 안내 스티커가 붙은 날도 있었고 자세히 보니 양쪽 출입문 손잡이 옆에 모두 ‘폐문’이라는 형광색 아크릴판이 붙어있었다.

그렇게 기억날만한 맛은 아니었던 터라 자장면이 아쉬운 건 아니었지만

식당이 속한 방향에서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는 그 곳이 이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어쩐지 마음이 헛헛해지는 기분이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더위가 매우 느린 걸음으로 물러나고

그 곳이 자장면집이었는지 무감각 해졌을 무렵 

드디어 식당에 불이 켜졌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마치 호외를 돌리는 아이처럼 서둘러 집으로 뛰쳐 들어와


“00, 문 열었던데?”


단골도 아니었고 자장면을 엄청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집 나갔던 아들이라도 돌아온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내 모습이 순간 민망해졌다.

그 간의 궁금증과 약간의 우려를 감안하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어디 멀리 다녀 온 거냐고, 얼마나 기다린 줄 아냐고, 사장님 손 꼬옥 잡고 물어봐야겠지만 사실상의 재 오픈을 한 이후 아직 그 곳에 가 보지는 못했다. 

돌아왔으니 다행인거지.



어제는 거의 일 년 미뤄 두었던 펜트리 정리를 했다.


사람을 만나야 할 일이 생기면 가슴부터 두근거리고, 가능하면 약속이 깨지기를 바랐다.

집 밖에 나가기가 싫었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 글을 쓸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음식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그냥 멍하니 쳐다만 봤다.

말을 하기 싫었고 K가 무심하게 행동해도 화가 나지 않았다.

계획되어있던 여행이 귀찮게 여겨졌다.

무슨 일이 생겨서 자연스럽게 취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먹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 상황에서 탈출하려는 아무런 노력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이대로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얼마나 깊이 가라앉았을 때 였을까.

K2의 권유로 전문의를 찾았다. 짧은 상담과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내 마음인데 남이 고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되지 않았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 했다.


거의 일 년이 되어간다.

불쑥, 내 년 봄에는 런던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절에는 양쪽 어머니들을 뵈러 갔었다.

여름내 땀에 절어 세탁을 해도 냄새가 나는 티셔츠들을 버렸다.

어제는 K와 쇼핑을 갔다.

간절기 외투를 1+1 커플룩으로 하나씩 사고 카페에서 아포카토를 먹었다.

쇼핑몰을 활기차게 오고가는 사람들 속에 내가 있다는 게 안심이 되었다.

집에 와서 다용도실 문을 열었는데 기역자형 3단 선반 앞에서 놓일 자리를 못 찾고 널브러진 물건들이 거슬렸다.

모두 꺼내서 돋보기를 쓰고 유통기한을 확인하며 식재료를 정리하다가 작년에 사 놓았던 고춧가루 한 통이 그대로 상해서 못쓰게 되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거미줄에 잠식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를 마치고 밀린 빨래까지 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가볍다.


‘나, 돌아온 건가?’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시간이 갈수록 예측할 수 있는 일보다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 더 많아진다.

이 후에는 일 년보다 더 길게 우울증에 걸리게 될지도 모르고

친구가 떠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날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은

일단, 돌아왔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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