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숙 Oct 14. 2023

사랑인 줄 알았는데 반찬이었어

시어머니는 아들들을 부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다.

거실과 주방의 경계가 없어진 신식 주방생활을 할 때에도

당신 아들들의 아들들조차 주방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놓으셨다.

이유는?

사내가 주방에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진다며.

덕분에 명절, 생일 등 집안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여자들은 오금이 저리도록 앉아서 빚는 만두를 K도 그의 형도 만들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 년 전, 조리교실에서 만두를 처음 만들어봤다는 K의 말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던 이유다.

다른 아들들은 모르겠고

어머니의 둘 째 아들인 K의 고추는 아직 안녕하신 것 같기는 하다.

그랬던 아들이 오늘 날 밑반찬을 만들고 심지어 김치까지 담근다는 것을 알면

시어머니는 뭐라고 하실까.

언젠가 아들이 요리를 배우러 다닌다는 말에


“에미는 좋겄다.” 


하셨다는 말씀이, ‘그래서 잘 됐네.’ 라는 마음이시리라 믿는다.


얼마 전에 <진미채는 사랑이야> 라고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누군가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일부러 만들어 준 것이 처음이라

고마운 마음도 진심이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계속 만들어 달라고 쐐기를 박는 사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느라 내가 좀 오버를 했던 모양이다.

한 번 쯤 제대로 편식 한 번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다른 반찬은 건드리지도 않고 진미채 접시만 바닥이 보일 때까지 공략한지 일주일이나 됐을까? 


“진미채만 먹니? 다른 반찬은 꺼내지도 말까?”


라고 한 번, 그리고 또 며칠 후


“와, 진미채 되게 좋아하네. 왜 그렇게 많이 먹어, 또 만들어야 되잖아.”


라고 K가 제동을 걸었다.

(세상에,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무안하고 창피했다.

그 순간 투명망토라도 있으면 쓰고 사라지고 싶었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이 후로 진미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사랑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것은, 그러니까...있으면 좋지만 만들기는 귀찮은, 그냥 반찬 중 하나일 뿐이었다.




오빠가, 로또와도 같다는 G시에 아파트 당첨이 돼서 최근 입주를 했다.

40분 거리였던 예전 집에 비해 거리가 반 정도 가까워졌다.

가까워졌으니 엄마도 자주 보러가고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온다는 조카손주(?) 재롱도 보러 갈 수 있겠다 싶었지만 조심스러워 이사한지 거의 두 달이 되어서 갔었다.

새 집이니 당연히 깨끗한데다 집 안 이곳저곳에 수납공간이 많아서 

거의 열 평정도 줄여 온 것이 표가 나지 않을 만큼 정돈이 잘 되어있었다.

G시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꼭 이십 년을 살았던 동네다.

사십 년이 넘은 도시라 재건축이 한창으로 예전의 모습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신기하게도 상가지역의 건물은 아직도 예전 그대로인 곳이 많았다.

그 곳에 가족이 살게 돼서 다시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띄엄띄엄 예전 생각이 나서 잠시 감회에 젖기도 했다.

오랫동안 수영을 하고 있던 올케는 그 사이 수영강습반에 등록을 했다고 했는데 

그 것이 G시가 아닌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있는 체육관이라고 했다.

규모도 크고 시설도 깨끗하며 강사진이 좋다는 정보까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아시안 게임에서 수영경기를 보면서 나도 수영을 할까 생각중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같은 시간에 하면 재밌겠다고 농담을 했는데

올케의 얼굴에 살짝 긴장의 빛이 어렸다.


집으로 와서 K와 저녁 산책을 하며 혼자 소리처럼 말했다.


“서로 편안한 관계라면 중간에서 만나서 소주 한 잔 하자고 할 수도 있고

두 부부 같이 산행도 하고 여행도 하고 수영도 같이 다녀도 좋을 텐데...오버지?“

“.......”


며느리는 며느리이고 사위는 사위이지

딸 같은 며느리, 아들 같은 사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듯 시누이는 시누이고 올케는 그냥 올케일 뿐

친구나, 친 자매가 될 수는 없다.

사람과의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사위를 이름으로 부르면서도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닐까 걱정이 되고

호수로 드라이브를 갔는데 그 동네가 아들이 사는 동네인 것을 알았을 때

불쑥 전화를 하게 될까봐 조심스럽다.

빈정상한 반찬은 안 먹으면 그만인데 사람은 안 만날 수 없으니 

적정 거리 유지를 위한 노력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폰님 잘 모시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