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년 전에
엄마는 수원에서 전철을 타고 세 시간 걸려 혼자 일산까지 다닐 수 있었다.
그 때는 나와 동생이 일산에 마을버스로 네 정거장 거리에 살고 있었다.
엄마는, 노인정에서 누가 주길레 집에 가져갔더니 새끼를 낳았더라며
구피 일부를 동생네 집에 가져왔다.
그런데 어쩐일인지 집에서보다 새끼를 더 자주 낳는다며
엄마는 신통해하는데 작은올케는 너무 많아 징그럽다고 했다.
하여 검정깨처럼 보이는 새끼 구피 한 소대가 우리집까지 왔다.
물고기는 알을 낳는거 아니냐고 했더니
- 몰라, 그런데 얘네들은 새끼를 낳더라고?
하며 물고기 밥은 손가락으로 한 꼬집 정도만 주면 되고
물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갈아주면 된다고 했다.
올케의 표현을 빌자면
새까만 점들 한 무더기가 둥실 떠올라서 보면
쬐꼬만 올챙이 처럼 생긴 것이 새끼였다고 했다.
그런데 웃긴건 그 새끼를 큰 놈들이 먹어 버린다고도 했다.
- 뭔말이여? 자기 새끼를 먹는다고?
- 사실 누가 낳은 새끼인지는 모르죠, 그런데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매번 새끼가 올라올 때마다 따로 떼어놓아야 해서
어항만으로는 부족해 안쓰는 그릇들까지 벌써 다섯 개 째라고 했다.
우리집에서 구피들은
몇 번 새끼를 낳았고
그 중 몇 마리는 원인불명 사망을 했으며
아마도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동안 낳은 새끼를 먹어 치웠을지도 모르겠다.
분리했던 새끼가 어느 정도 자란 후 합방(?)도 두어 번 해 주었다.
이제는 새끼의 엄마, 엄마의 엄마의 엄마를 분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구피가 자라는 동안
엄마는 자꾸 늙어갔다.
지하철 요금이 무료라서 참 좋다며
전철이 닿는 곳이면 어디라도 혼자서 다니던 엄마가 고관절을 다친것이 그 다음 해였다.
입원과 수술, 요양병원을 거치는 동안만 해도
엄마의 재활 의지는 활활 타올랐었다.
의사의 말대로만 하면 곧 다시 걸을 수 있고
전철을 타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엄마의 힘이 들어간 말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일 년 동안은 놀라울 정도로 회복이 빨랐다.
그런 건 노인네(?)나 사용하는 거라며 일찌감치 보행기를 치웠고
지팡이는 오히려 걸리적거린다며 의지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엄마는 혼자 노인정에도 가고
복지회관에도 조심스레 다시 갔으며
약을 타러 동네 병원에도 혼자 걸어서 다녀 온다고 했다.
그리고 작년
코로나로 노인정이 문을 닫았다.
와중에 살던 아파트에서 다른 단지 아파트로 이사도 했다.
엄마의 사회생활(?)의 통로가 모두 막혔다.
대쪽 같은 심성 탓에
행여 며느리 불편할까 싶어
매일 아침 아홉시면 출근했다 저녁 여섯시면 퇴근을 하던 곳이었다.
전철이 닿는 곳이면 수도권이 모두 내 영역이었던 엄마에게
두 평 남짓한 방만이 엄마의 세계가 되었다.
눈을 뜬 시간부터 잠을 잘 때까지 TV는 켜져 있었다.
-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또 어떻게 보내나 싶어, 아주 사는 게 지겨워.
전화기 속 엄마의 목소리는 어딘가 어눌한 것 같기도 하고 발음이 꼬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지난 여름, 코로나 이후 엄마는 최대 고비를 지나고 있는 것 같았다.
혀가 말려 들어가는 것 같고 말소리가 자꾸 이상해진다고 했다.
병원에 갔었는데 뇌로 가는 혈관이 좁아져서 그런거라고 했단다.
엄마의 모습은 만날 때마다 쇠약해 보였고
목소리는 통화를 할 때마다 힘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
- 며칠 전에는 작은 아들이 전화를 하더니 오늘은 네가 전화를 하니 참 좋다.
나는 잠시 얼떨떨했다.
엄마는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네가 전화를 해서 좋다거나, 네가 와서 기쁘다거나
네가 있어서 힘이 되었다거나
너를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거나...... 등등
하나 있는 딸에게 한 번도 다정한 말을 건넨 적이 없었다.
- 엄마가 그런 말을 다 하네?
어제 구피를 보다 엄마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던 참이었다.
엄마의 목소리에서 예전과는 다르게 생기가 느껴졌다.
발음도 또렷해진 것 같고 목소리도 맑다.
그 것은 마치 사 년전
엄마의 몸과 마음이 자유로울 때
구피를 가져와서 밥을 주고 물을 갈아주는 얘기를 할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목소리가 좋아진 것 같다고 했더니
병원을 바꿔서 그런지, 엄마도 그런것 같다고 했다.
- 엄마보러 언제 와? 언니한테 전화해서 잘....
엄마가 말을 하는 중에 배터리가 나갔는지 전화가 끊겼다.
큰아들과 함께 사는 엄마는 늘 긴장하고 사는 터라
엄마 보러 오려면 큰올케하고 먼저 얘기를 잘~ 하라는...
뭐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구피가 자라는 동안
엄마는 다시 예전의 목소리를 찾았다.
그 목소리를 오래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