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창이던 무렵
동생네 집에 머물고 있던 엄마는 올케와 하루 종일 그 채널만 틀어 놓는다고 했다.
“언니, 난 요즘 트로트가 너무 좋아.”
올케는 그러면서 대상을 받은 가수부터
참가 가수들의 애틋한 사연들을 얘기하며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우리 집에 케이블 방송 채널이 나오지 않아서 이기도 하지만
나는 딱히 트로트가 좋은 줄을 모르겠어서 그냥 그러냐고 했다.
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방송 출신 가수들은 순식간에 지상파 방송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요즘, 오징어게임을 모르면 방송을 이해할 수 없듯이
그 무렵에는 그 가수들을 모르면 별에서 온 사람 취급을 받을 판이었다.
엄마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좋아할 뿐만 아니라 잘 부른다.
꽤 오랜 기간 동안 엄마의 애창곡은 [마포종점]이었는데
식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엄마의 그 노래로 시작을 했다.
밤 깊으은 마, 포 종점
갈 곳 없는 바암 전차아~(요 부분 바이브레이션이 매우 중요하다.)
비에 젖어 너도 섰, 고
갈 곳 어없느은 나도 서어어었다아~
어느 새 식구들 모두 떼창을 부르기 시작했지만
구성지면서도 간드러진 엄마의 목소리를 가리지는 못했다.
엄마는 한 달에 한 번 초등학교 동창 모임을 나가면
점심을 먹은 후 노래방에 가는 것이 고정된 일정이라고 했다.
한 시간에 만 원인데
한 번 가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계속 시간을 추가해 주는 곳이 있어서
거기만 간다고 했다.
다친 후 입원과 수술, 요양을 거치는 동안 모임도 못하는 와중에
코로나의 여파로 노래방이 문을 닫았다고 했다.
몸이 나으면 곧 모임도 하고 노래방에도 갈 수 있으리라던 기대가 무너지는 것을
엄마의 힘없는 목소리로 느낄 수 있었다.
“거기 없어졌으면 다른 노래방 가면 되지.”
“이제 모임에 나올 사람도 없어, 한 친구는 허리를 다쳐 꼼짝 못한대고, 다른 애는 풍이 와서 딸네 집으로 갔다나봐.”
“......”
엄마는 요즘 오래 전 드라마를 보는 재미에 빠졌다고 했다.
“뭐해요?”
“드라마 봐, 글쎄 자기가 낳은 딸을 전실 아들하고 결혼을 시켰는데 딸을 키워준 엄마가 그렇게~ 못살게 군다? 무슨 그런 에미가 다 있냐? 그래가지고 말이야 딸이 스트레스를 받아가지구...@#$%^&*(”
엄마의 얘기는 그로부터 한참동안 이어졌다.
엄마 덕분에 드라마 한 시즌을 다 본 것 같았다.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 드라마로 대체가 될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엄마 목소리는 생각보다 편하게 들렸다.
..
아홉시 뉴스가 끝나고 채널을 돌리니 가요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화면에 집중하지 않고 이 것 저 것 뒤적거리고 있는데
들어 본 적 있는 멜로디에 저절로 노래가 불러진다.
남 몰래 서러어어운 세월으은 가고
물결은 천버언 만 버언 밀려어오 느으으은데....
.
.
검게에 타버어린
흑산도~ 아아가씨...
“어라? 내가 이 노래를 왜 아는 거지?”
해애당, 화 피고 지이이는~
서어어엄 마 으으으을에~
철새따라아 차아자아온
초옹가악 서언새애앵님
열 아홉 살 촌새액시가 순저엉을 바쳐
사아랑한 그 이름은 총가악 선생님
서우울엘라앙 가지를 마오
가아지이르을 마아아아오~
네 다섯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어른들이 자꾸 노래를 시켰다.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노래말의 뜻도 모르면서
나는 섬마을 선생님을, 흑산도 아가씨를 불렀다.
엄마처럼 노래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엄마가 불렀던 노래들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다음에 엄마를 만나게 되면 같이 동백아가씨를 불러야겠다.
마포종점을 엄마처럼 흉내내봐야겠다.